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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의 특징'''== | =='''가옥의 특징'''== |
2023년 12월 11일 (월) 19:50 기준 최신판
가옥 소개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호 시대: 일제강점기 소재지: 서울 종로구 옥인1길 34
박노수가옥은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다. 1903년에 태어난 막내 딸 윤성섭은 김덕현과 혼인했다. 토지대장을 살펴보면 1938년 5월 19일에 소유주가 윤덕영에서 김덕현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시점에서 윤덕영이 사위에게 땅을 양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대지를 마련한 후 건물의 뼈대가 올라가는데, 지붕의 종도리에 쓴인 상량문에서도 1939년 5월 10일에 상량[2]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후 몇 번의 소유주가 바뀐 후 1973년 4월 4일에는 박노수 화백이 이 가옥을 사서 2011년까지 거주했다.
가옥의 특징
개항 이후 일본을 통해 서양 문물이 유입되면서 서구와 일본의 절충식 가옥이 들어오게 되었다. 특히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목조양식이 본격적으로 반입되었다. 이들은 양식의 접객 부분을 채용하고, 다다미방과 온돌방에서 양풍의 개폐 창을 사용하여 서양풍의 외관을 하는 등 절충식 주택 양상을 보였다.
박노수 가옥은 이러한 절충식 중복도형 주택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근대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건물로 지하층이 있는 2층 가옥이다. 1층은 온돌과 마루, 2층은 마루방 구조이고, 3개의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1층은 벽돌조이고, 2층은 목조이며, 지붕은 서까래를 올린 박공지붕이다. 특징적인 면은 일식 기와로 된 경사 지붕 아래 처마로 튀어나온 서까래이다. 일반적으로 일본 건축에서는 각형의 서까래를 쓰는데 박노수 가옥의 것은 그 단면이 둥글어서 대단히 한국적인 모티브로 보인다. 건물의 서쪽에는 아치형 포치를 달아 놓았다. 아치형 포치가 있는 출입구를 지나 나타나는 응접실은 격자무늬 창문들 너머로 뜰이 내다보이고 벽난로와 샹들리에가 설치되어 있는 프랑스풍이다.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지만, 4쪽 여닫이 문으로 연결되는 안방과거실의 개방적 공간구성은 전통건축의 안방과 대칭을 닮았다. 안방과 거실 사이에 접는 문이 있어 필요에 따라 공간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일본식 연회 공간인 쯔즈끼마자시키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는 일식과 양식이 절충된 모습이라 해석할 수 있다.
집 외부에는 박노수가 집을 사들인 이후 심은 대나무, 감나무, 배롱나무, 목련, 모란 등 다채로운 식물이 있다. 정원 곳곳에 각양각색의 정원석과 수석, 석등, 석상, 향로석, 해태상 등 화가가 직접 수집해서 배치한 조형물에서 그의 철학과 미감를 엿볼 수 있다. 또, 현관의 바닥과 징두리벽의 타일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관 중문 안쪽의 하얀 플라스터 벽체와 쪽마루널 역시 옛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가옥정원[3]
가옥의 역사
1912년 168번지 일대의 토지 윤덕영 소유
1938년 김덕현으로 소유권 이전
1939년 4월 20일 168번지 190평 규모로 토지 합병
1939년 5월 10일 상량
1939년 8월 4일 김덕현 168번지로 주소 이전
1959년 8월 7일 신보석으로 소유권 이전
1973년 4월 4일 박노수 화백으로 소유권 이전
1991년 5월 28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 1호 지정
2006년 10월 10일~2007년 8월 30일 산자이상 해체 후 번외 보수공사
2012년 3월 1일~2012년 5월 29일 박노수가옥 보수공사
2012년 5월 16일~2012년 11월 11일 박노수가옥 리모델링공사
2013년 9월 11일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개관
참고문헌
- 화필인생 박노수의 모던 타임즈 전시 서문
- 화필인생 박노수의 모던 타임즈 전시 팜플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