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호헌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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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의 대통령 간선제가 민주주의 원리를 위반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1987년 12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86년부터 직선제 개헌 요구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6년 1월 16일 국정연설을 통해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개헌을 유보하는 방침을 발표했고, 그에 대응해 신한민주당(신민당)은 1986년 2월 12일 1000만 개헌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여론화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미 직선제 개헌은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에 따라 1986년 7월 30일 여야 합의로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발족해 헌법 개정 협상을 진행하지만,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은 의원내각제를 선호하고, 야당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면서 대립과 갈등이 반복되었다.

전두환 정부는 1986년 하반기에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건국대점거농성사건 등 용공조작 사건들을 연이어 만들어냈다. 그 와중에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박종철 학생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과 폭행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각계에서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시국 혼란을 이유로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여야 합의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 간선제인 현행 헌법을 유지하고 1988년 3월에 정부를 이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4·13 호헌조치는 장기집권을 우려하는 전국민의 저항을 불러일으켰으며,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