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
정의
건축물 정보
용두사(龍頭寺)
-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 이전으로 추정
현재는 절이 소실되어 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 특징: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었던 고려시대 제8대 현종 관련 사찰이다.
- 사건: 거란과 몽고의 침입 등 잦은 병란으로 폐사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
용두사지 철당간
정의
건축물 정보
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
- 역사적 시대: 고려 시대- 962년(광종 13)
-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 특징: 국보 제41호로 용두사 터에 세워졌던 철 당간이다.
- 용두사지 철당간은 현재 지름 46~39cm, 높이 65cm 정도의 철통 20개를 쌓아 13.1m 높이로 보존되어 있다.
이 당간은 불기(佛旗)를 꽂거나 용머리, 보륜(寶輪) 등을 장식하여 신성한 가람이 있는 곳임을 표시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그려진 깃발을 통해 부처님의 위싱과 공덕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철당간으로는 계룡산 갑사와 안성 칠장사(七長寺)의 것뿐인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원래 30층이었던 원형 철통은 현재 20층밖에 없으며, 아래에서 세 번째 철통 외면에는 당간기(幢竿記)가 새겨져 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즉, 전염병에 걸렸던 김예종(金芮宗)의 일가가 당간 조성의 원력(願力)을 세워 병이 나은 뒤 김예종·김희일(金希一) 형제가 힘을 합쳐서 조성한 것이다. [2]
일화
용두사지 철당간에는 두 가지의 관련된 일화가 존재한다.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팔도를 순례하던 연등사 주지 혜원이 청주 고을을 지나다가 하룻밤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용두사에 들어가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워라.” 하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급히 용두사 주지스님을 만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던 중 혜원이 혼자 우암산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청주 고을을 살펴보다가 어느 날 밤중에 고을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그 길로 내려와 용두사 경내에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3]
관계
출처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9227&cid=46648&categoryId=46648
-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44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두사
- ↑ http://www.grandculture.net/cheongju/toc/GC00202635 디지털청주문화대전「주성과 용두사지 철당간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