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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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크로드 북로실크로드 북로는 이오-부유르해(지금의 신장 위구르 하미 지구 바르쿤하싸거 자치현 서북)-철륵부-투르크카간정 코스, 중앙노선은 코초-아그니-쿠차-코로-총령 코스, 남로는...)
(/* 실크로드 북로실크로드 북로는 이오-부유르해(지금의 신장 위구르 하미 지구 바르쿤하싸거 자치현 서북)-철륵부-투르크카간정 코스, 중앙노선은 코초-아그니-쿠차-코로-총령 코스, 남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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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에서 [https://www.wikidata.org/wiki/Q877381 고창(코초국, 高昌)<ref>고창 고성이라 불리는 곳으로 현재 투르판 시에서 남동쪽으로 46km에 위치함. 1940년 당 제국의 서역을 관할하는 주요 거점이 됨.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p44-45.</ref>]으로 떠나다.
 
**하미에서 [https://www.wikidata.org/wiki/Q877381 고창(코초국, 高昌)<ref>고창 고성이라 불리는 곳으로 현재 투르판 시에서 남동쪽으로 46km에 위치함. 1940년 당 제국의 서역을 관할하는 주요 거점이 됨.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p44-45.</ref>]으로 떠나다.
 
***고창 왕과 대립하다<ref>고창 왕은 현장이 남아서 자신의 국사가 되어 주길 바랬으나 현장은 구법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며 대립했으나 결국 한 달간의 체류 일정을 끝내고 고창 왕의 성대한 채비를 받고 무사히 떠났다.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p44-45.</ref>].
 
***고창 왕과 대립하다<ref>고창 왕은 현장이 남아서 자신의 국사가 되어 주길 바랬으나 현장은 구법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며 대립했으나 결국 한 달간의 체류 일정을 끝내고 고창 왕의 성대한 채비를 받고 무사히 떠났다.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p44-45.</ref>].
**하미에서 [https://zh.wikipedia.org/wiki/%E7%84%89%E8%80%86 옌치(焉耆)],[https://www.wikidata.org/wiki/Q1156662 카라샤르(Karashahr)]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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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에서 [https://zh.wikipedia.org/wiki/%E7%84%89%E8%80%86 옌치(焉耆)],[https://www.wikidata.org/wiki/Q1156662 카라샤르(Karashahr, 아그니국)]로 떠나다.
**옌치에서 [https://www.wikidata.org/wiki/Q1328546 쿠차<ref>쿠차는 당시 실크로드의 중요한 도시로 영토가 넓고 도성의 둘레만도 사방 17~18리나 되었음.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166. </ref>]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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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치에서 [https://www.wikidata.org/wiki/Q1328546 쿠차(龟兹, Kucha)<ref>쿠차는 당시 실크로드의 중요한 도시로 영토가 넓고 도성의 둘레만도 사방 17~18리나 되었음.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166. </ref>]로 떠나다.
 
***쿠차 왕의 호의를 받다.
 
***쿠차 왕의 호의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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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차에서 [https://www.wikidata.org/wiki/Q854333 토크막(쉬엽성, 托克马克, Tokmak)<ref>오늘날 이식쿨 호수 북서쪽으로 키르키스스탄.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p56.</ref]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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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돌궐의 대 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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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막에서 사마르칸트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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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9일 (월) 15:20 판

중국의역사와인물(강의) 페이지로 가기



현장(玄奘)

: 인도 여행 견문록 데이터 그래프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유미





목차

Contents


개요 생애 연보 데이터 참고문헌 주석



개요


당나라 시대 삼장법사[1]로 유명한 玄奘, Xuanzang(602-664)은 승려이고, 번역가[2], 여행가[3], 철학자, 그리고 교육자이다.

현장법사는 629년 당 太宗의 뜻을 거스르며 인도의 불교 성지를 순례하기로 결심하고 한밤중에 몰래 중국을 떠났으나, 645년 약 16년 만에 금의환향하여 당 태종으로부터 '나라의 보배'라는 칭송을 받은 인물이다.
특히 현장법사는 귀국한 후 당 태종에게 바친 보고서인 『大唐西域记』 (Records of the Western Regions)는 장안을 출발하여 인도로 가는 여행기로, 귀국 후 태종의 칙명을 받아 견문록으로 정리했다. 내용은 7세기 중앙 아시아 제국 및 인도의 불교 정세, 역사, 지리, 문화, 풍속 등을 기록했다.

본 연구는 현장법사의 인도 여정을 함께 따라 가며 그의 삶을 수록한 저서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를 중심으로 여행 중 주요 사건, 인물, 지리적 위치 간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데이터화하고 이를 그래프로 표현하고자 한다.



생애


생몰


602년에 출생해 664년 사망하다.

조부


현장의 조부 진강(陈康)国子博士[4]의 지위에 올랐다.

외조모


현장의 모친은 낙주(洛州)[5] 장사(长史)의 여식 송씨(宋氏)로 관료 집안의 규슈였다[6].

부친


현장의 부친 진혜(陈惠)는 隋나라 초기에는 강릉(江陵)의 현령(县令)을 역임했으나, 말년에는 건강을 핑계로 은거하였다.

모친


현장의 모친은 은온교(殷溫嬌)이다.[7]

형제


4형제 중 둘째 형 장첩법사(长捷法师) 진소(陈素)를 따라 낙양의 정토사(净土寺)로 출가했다.

출가


615년 출가하여 승적에 이름을 올리고 현장(玄奘)이라는 법명을 얻다.

불교 경전 공부


615년부터 620년까지 낙양의 정토사(净土寺)에서 형과 함께 지내며 불교 경전을 공부하다.
경법사(景法师)에게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배우다[8].
엄법사(严法师)에게 『섭대승론(大般涅槃經)』을 배우다[9].


인도 여정을 준비


626년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다[10]

인도 여정의 출발


629년에 장안(长安)에서 출발하다.

현장은 602년에 출생했다.
현장은 664년 사망했다.
진강(陈康)은 현장의 조부이다. 진강(陈康)은 国子博士의 벼슬을 했다.
진혜(陈惠)는 현장의 부친이다.
진혜(陈惠)는 隋나라 초기에는 江陵의 县令의 벼슬을 했다.
진소(陈素)는 현장의 둘째형이다.
현장은 둘째 형 진소(陈素)를 따라 낙양의 정토사(净土寺)로 출가했다.
현장은 615년부터 620년까지 낙양의 정토사(净土寺)에서 형과 함께 지내며 불교 경전을 공부하다.
현장은 629년에 장안(长安)에서 인도로 출발했다.



경로



  1. 구법승과 황제
  2. 실크로드 북로의 오아시스
  3. 아시아의 교차로
  4. 인도의 초입에서
  5. 현자(賢者)와 도적 떼의 땅, 북인도
  6. 불교의 성지
  7. 날란다 승원과 그 주변
  8. 조사(祖師)와 석굴 승원, 그리고 복사(卜師)
  9. 중국으로의 귀로
  10. 중국으로의 귀국
  11. 마지막 나날들
  12. 현장의 유산




인도 여정의 시작




실크로드 북로[19]의 오아시스




615년


출가하여 현장(玄奘)이라는 법명을 받다.

618년


隋나라의 멸망으로 형과 함께 장안(长安)으로 피난을 가다.

622년


성도(成都)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다.

629년


장안(长安)에서 인도로 출발하다.

645년


인도에서 장안(长安)[23]으로 귀국하다.

602년 현장은 하남성(河南省)의 낙양(洛阳)에서 출생한다.
615년 현장은 출가하여 현장(玄奘)이라는 법명을 받다
618년 현장은 隋나라의 멸망으로 형과 함께 장안(长安)으로 피난을 가다.
622년 현장은 성도(成都)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다.
629년 현장은 장안(长安)에서 인도로 출발하다.
645년 현장은 인도에서 장안(长安)으로 귀국하다.
646년 현장이 『大唐西域记』를 작성하다.

데이터


Data Table




Network Graph




Timeline




Digital Atlas





참고문헌


오프라인 자료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张力生, 『玄奘法师年谱』, 宗教文化出版社, 2016.
杨廷福, 『玄奘年谱』, 中华书局社, 1988.


온라인 리소스


분류 설명
논문 김월회, 「‘놂游’으로서의 순례- ‘大長程 인문학’ 구축을 위한 현장법사의 西域 순례 다시 읽기」, 『중국문학』103, 한국중국어문학회, 2020년, 71-104쪽.
논문 조성금, 「水月觀音圖에 묘사된 玄奘法師 取經 圖像 一考」, 『중앙아시아연구』29, 중앙아시아학회, 2024년, 19-36쪽.
웹사이트 위키백과
웹사이트 歷代僧傳僧人的出行敍述
블로그 현장법사 브런치 시리즈
YouTube 현장법사 무엇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갔을까?
YouTube Docu上菜002:玄奘取經路線圖[24]
YouTube 玄奘之路
웹사이트 나무위키
웹사이트 위키데이터
웹사이트 Da-Tang xiyu ji 大唐西域記
블로그 실크로드, 현장(삼장법사) 인도 여정
블로그 현장(玄奘)^삼장(三藏) -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 西遊 루트
논문 언규, 「고전소설 『서유기』의 콘텐츠 브랜딩 전략」, 『글로벌문화콘텐츠』24, 글로벌 문화콘텐츠학회, 2016년, 241-268쪽.
논문 송윤미, 「동서 문화 교류에 의해 탄생된 인도 불상 고사 고찰—『대당서역기』를 통해서」, 『동서비교문학저널』30, 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 2014년, 99-121쪽.
논문 안혜진, 「영웅신화 원형으로 본 『西遊記』의 삼장법사: 영웅의 제자리 찾기」, 『비교문학』69, 한국비교문학회, 2016년, 199-228쪽.
웹사이트 大唐西域記序
논문 천득염·정지윤·신규나,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지역의 불탑형식- 大唐西域記의 기록과 현존 유구를 중심으로-」, 『건축역사연구』143, 한국건축역사학회, 2022년, 71-86쪽.
논문 송윤미, 「『대당서역기』의 스뚜빠(stūpa) 고사 고찰:실존 인물 유형의 고사를 중심으로 하여」, 『동서비교문학저널』29, 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 2013년, 145-168쪽.
논문 이용재, 「『大唐西域記』와 『往五天竺國傳』의 文學的 比較 硏究」, 『중국어문학논집』56, 중국어문학연구회, 2009년, 369-407쪽.
논문 송윤미, 「『大唐西域記』에 기재된 佛敎의 諸神 故事 考察」, 『한중언어문화연구』39, 한국중국언어문화연구회, 2009년, 265-298쪽.
중국영상 大唐著名高僧玄奘西行取经路线图
중국영상 伟大的行程,三维地图还原玄奘西天取经路线
웹사이트 Xuan Zang Pilgrimage Project - Route and POI
웹사이트 Map of the Travels of Xuanzang (629 AD - 645 AD) Journey to the West
웹사이트 TRAVELS OF XUANZANG(629 - 645 CE)
웹사이트 The Travel Records of Chinese Pilgrims Faxian, Xuanzang, and Yijing




주석


  1.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에 두루 통달해서 얻은 별칭임.
  2. 평생에 걸쳐 1338권의 불경을 번역함.
  3. 629년부터 645년까지 5만리(약 1만 6000km)를 여행함.
  4. 현재의 국립대학 부학장 또는 교무처장에 해당함.
  5. 현재의 낙양(洛阳)임.
  6.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27.
  7.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24
  8.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52.
  9.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53.
  10.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p26.
  11. 출처:rarebooksocietyofindia.org
  12. 출처:현장의 사리탑이 있는 서안 근교 興敎寺(흥교사) 비석 탑본.
  13. 감숙성(甘肃省)의 마지막 중요 도시로 오늘날의 무위시(武威市)에 해당하고, 현장은 사막 너머 몽골과 타클라마칸 사막의 타림 분지에 이르는 대상로(队上路)의 시작점인 양주에서 한 달간 머물렀음.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p29.
  14. 당나라는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변방 국경이 정세가 불안하여 '국경출입 금지령'이 반포되어 있었고, 현장이 양주에 도착하자마자 양주의 최고 도독 이대량은 현장의 출국 기도를 보고 받고 그에게 출국을 단념시켜 장안으로 귀환하도록 강제 명령을 내렸으나 현장은 수배조치에 따르지 않고 국경을 빠져나갈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음.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74.
  15.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두 제자인 혜림(慧琳)과 도정(道整)을 보내 현장이 양주를 떠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함, 그러나 후에 도정은 과주에서 돈황(敦煌)으로 떠나고, 혜림스님은 성격이 나약하고 겁이 많아 현장이 그를 돌려보내고 홀로 여행함.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74, 83.
  16. 하서주랑(河西走廊)의 서쪽은 옥문관(玉门关)으로 실크로드의 주요한 시작점.
  17. 그러나 석반타는 서쪽 길이 너무 위험하고 자칫 그 일에 연루될까 두려운 나머지 현장을 죽이려 시도하였고, 현장은 혼자서 늙은 말 한 필과 서쪽 여행을 계속함.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100.
  18.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동쪽에 위치함, 오아시스 왕국 하미는 한족 왕조가 파견한 군대가 주둔하던 곳이었으나 수말당초의 혼란 이후 종주권이 돌궐에게 넘어갔다 중국에 귀곡된 것은 현장이 이 왕국을 떠난 몇 달 후였음.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p42.
  19. 실크로드 북로는 이오-부유르해(지금의 신장 위구르 하미 지구 바르쿤하싸거 자치현 서북)-철륵부-투르크카간정 코스, 중앙노선은 코초-아그니-쿠차-코로-총령 코스, 남로는 선선-우전-주구파-타쉬쿠르간-총령 코스임.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77.
  20. 고창 고성이라 불리는 곳으로 현재 투르판 시에서 남동쪽으로 46km에 위치함. 1940년 당 제국의 서역을 관할하는 주요 거점이 됨.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p44-45.
  21. 고창 왕은 현장이 남아서 자신의 국사가 되어 주길 바랬으나 현장은 구법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며 대립했으나 결국 한 달간의 체류 일정을 끝내고 고창 왕의 성대한 채비를 받고 무사히 떠났다. 샐리 하비 리긴스, 신소연·김민구 역, 『현장법사』, 민음사, 2010, p44-45.
  22. 쿠차는 당시 실크로드의 중요한 도시로 영토가 넓고 도성의 둘레만도 사방 17~18리나 되었음. 첸원중, 임홍민 역, 『현장 서유기』, 에버리치홀딩스, 2010, p166.
  23. 지금의 서안(西安)임.
  24. 대당서역기의 텍스트 파일을 다큐스카이에 업로드 한 후 중국역사지도집에서 당나라 지도를 클릭하면 현장이 장안을 떠나 인도에 도달 하는 전체 여정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