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접근을 통한 변화 - 신동방정책 및 신독일정책
p. 24
1970 독일연방공화국은 소비에트연방 및 폴란드와 조약을 체결한다.
1971 서구열강과 소비에트연방 사이에 "베를린 관련 전승 4개국 조약(Viermächteabkommen über Berlin)"이 체결된다.
1972 서독과 동독은 "기본조약(Grundlagenvertrag)"을 체결한다.
1973 서독과 동독은 UN 회원이 된다.
M1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진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게토에 세워진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총리의 이 행위는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곧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나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여, 독일이 수백 만 명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사죄하고자 했다."
동유럽 이웃국가들과의 갈등 1945년 이후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단 한계의 평화조약도 채결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독일연방공화국은 독일제국이 국제법 상 1937년 당시의 국경을 유지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평화조약을 통해서만이 독일의 영토상실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독일은 오더-나이세(Oder-Neiße)-국경을 폴란드의 서쪽 경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폴란드 정부는 이 국경을 인정하라고 요구하였다. 왜냐하면 오더-나이세(Oder-Neiße)-경계 동쪽에는 주로 폴란드인들이 거주하고 독일인들은 추방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폴란드 및 1945년 폴란드가 소비에트연방에 양보해야 했던 폴란드 지역에서 많은 폴란드인들이 서쪽으로 이주하였다. 즉, 과거 독일의 동부지역에 속하는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동독은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와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슐레지엔, 폼메른, 동프로이센 및 수데텐란트로부터 독일인들을 추방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반면 독일연방공화국은 추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동유럽 국가에 남은 독일인들이 언어나 문화적으로 소수로서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1950년 이후 2백만명 이상의 독일 동포들이 독일로 돌아왔다.
"독일 문제": 독일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동서 갈등으로 서독은 점점 더 서구열강에, 동독은 점점 더 소비에트연방과 동블록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1960년대 말 소비에트연방과 미국 두 열강 사이의 긴장이 완화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 결과 독일의 문제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서독의 많은 정치인들은 독일의 동서 분단이 지속되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69년 연방하원 선거 후 사민당(SPD)과 자민당(FDP)이 사회주의-자유주의 성향의 연정을 구성하였고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SPD)가 연방총리, 발터 셸(Walter Scheel, FDP)이 외교장관이 되었다. 이 정권은 새로운 동방정책 및 독일정책을 추진하였다.
p. 25
모스크바 및 바르샤바 조약
우선 소비에트연방과의 관계가 재정립될 필요가 있었다. 1970년 8월 독일연방공화국과 소비에트연방은 "모스크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유럽 내 모든 국경을 존중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는 오더-나이세(Oder-Neiße)-국경과 동서독 간 경계에 대한 존중도 포함하였다. 동블록의 주도적 국가와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폴란드와의 협상도 가능해졌다. 폴란드에서는 2ㅊ 세계대전과 독일 점령 시기에 대한 기억이 과거에도 그랬고 여전히 생생하다. 그럼에도 1970년 12월에 "바르샤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 역시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국경을 존중하겠다는 내용을 포괄하고 있었다. 빌리 브란트 총리는 서독의 첫 총리로서 폴란드를 방문하였다.
베를린과 동독 서독이 소비에트연방과 폴란드와 협상을 하는가 하면, 나머지 세 승전국은 베를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소비에트연방과의 힘든 협상 끝에 1971년 9월 "베를린 관련 전승 4개국 조약(Viermächteabkommen über Berlin)"이 체결되었다. 소비에트연방은 베를린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허용하기로 하고 특히 서베를린과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의 특수한 관계를 인정하기로 하였다. 그 대신 서방 승전국들은 서베를린이 향후에도 서독의 공식 연방주가 되지 않는 것에 동의해주었다. 1973년 6월에는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Vertrag über die Grundlage der Beziehungen zwischen der Bunderepublik Deutschland und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ck)"이 발효되었다. 이 "기본조약"은 서독이 동독을 동등한 국가로서 인정하는 조약이었다. 그러면서도 양 독일 간의 관계가 "특수한 관계"이며 동서독은 서로에게 외국이 아니라는 입장은 그대로 유지한 조약이었다. 그 결과 본(Bonn)과 동베를린에는 대사관이 설치 될 수 없었고, 동독과 서독의 "상주 대표부"가 설치되었다. 동독을 독립된 국가로서 인정함으로써 1973년 양 독일은 133번째 그리고 134번째 가입국으로서 UN에 가입하였다.
독-독 기후 M2 독일의 웨더하우스 (캐리커처, 1984년) 웨더하우스 좌측 뒤쪽에 소비에트연방의 권력가였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Leonid Breschnew), 오른 쪽에는 미국의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이다.
두 국가, 한 민족 접근 정책은 서독에 독일민족의 일부만 살고 있다는 서독의 기본적인 인식에는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모든 독일인들 즉, 동독에 사는 독일인들을 포함한 독일인들은 자유선거를 통해 독일의 최종적인 형태에 대해서 직접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서독의 입장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독일은 두 국가이지만,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된다는 것이었다. 동독에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1949년 제정된 동독의 헌법은 여전히 독일은 하나의 국가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헌법 제11조에는 "독일은 분할될 수 없는 민주적 공화국이다"라고 명시되어있다. 1968년 이 헌법 내용이 수정되었다. 수정 후 헌법 제1조에서 "동독은 독일 민족의 사회주의 국가이다"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6년 후 이 조항이 다시 "동독은 노동자와 농민의 사회주의 국가이다"로 수정되었다.
p. 26
M3 빌리 브란트 - 신동방정책과 신독일동책을 추진한 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는 1913년 뤼벡에서 출생하여 이미 청년시절 사민당(SPD)에 가입하였다.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 한 이후 브란트는 독일을 떠나야 했고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주로 노르웨이에서 거주하였다.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서베를린에서 의장과 시장(1957-1966년)으로 선출되면서부터였다. 1964년에는 사민당(SPD)의 연방대표가 되었고, 1966년에는 독일의 외교장관으로 임명되었고, 1969년에는 사민당 최초의 총리가 되었다. 동독과의 화해 정책을 펼친 빌리 브란트는 197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3년 후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동독의 첩자로 밝혀지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브란트는 존경 받는 인물로서 1992년 사망하기 전까지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M4 1970년 8월 12일 체결된 모스크바 조약 내용
제2조: 독일연방공화국과 소비에트연방은 모든 분쟁을 평화로운 수단으로 해결하고 폭력을 이용한 위협과 폭력 사용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제3조: 양국은 유럽의 평화는 현재의 국경을 인정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양국은 현재와 미래에 조약 체결 시점을 기준으로 한 유럽 국가들의 국경을 인정하며, 폴란드의서쪽 국경으로서 오더-나이세(Oder-Neiße)-국경 및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사이의 국경을 인정한다.
하인리히 보덴지크(Heinrich Bodensieck): Die Deutsche Frage seit dem Zweiten Weltkrieg. Stuttgart 1985, p. 97
M5 1972년 12월 21일 체결된 기본조약의 내용
조약 체결 쌍방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현실과 민족문제를 비롯한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의 서로 다른 견해를 존중하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의 협력이 두 국가의 주민들의 복지를 증진하리라는 바람에서, 그에 필요한 조건을 마련하고자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제1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이웃국가로서 정상적인 우호 관계를 발전시킨다.
제4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둘 중 어느 한쪽도 양쪽을 국제적으로 대표하거나 양 국가를 대표하여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6조: 양국은 각자의 권력이 각자의 영토 내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양국은 국내외적 사안에 있어서 상대방의 독립과 자주성을 존중한다.
출처: 잉고 폰 뮌히(Ingo von Münch) 발행: Dokumente des geteilten Deutschland. Bd. 2, Stuttgart 1974, p. 301
M6 동방조약에 관한 국내 정치권의 분쟁
기민/기사당(CDU/CSU) 의원 중 대부분은 연방하원 표결 시 기권하거나 반대표를 던졌다.
p. 27
바이에른주는 연방헌법재판소에 제소하기도 하였다. 바이에른의 주정부는 기본조약이 기본법에 위배된다는 입장이었다.
독일연방공화국의 최고법원은 판결문에서 모든 헌법기관은 "통일 달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바이에른주가 제기한 소송은 "어떤 수단으로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또는 적어도 그 목표에 접근할 것인지" 여부는 연방정부의 소관이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야당인 기민/기사당(CDU/CSU)이 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연방주들은 다음과 같은 공동의 입장을 밝혔다:
모스크바 조약 체결로 독일민족의 자주적 통일이 위협을 받게 되었고, 동독이 독립국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고 군사분계선이 국경으로 확정되었다. - 조약이 오더-나이세(Oder-Neiße)-국경을 폴란드의 서쪽 국경으로서 최종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Heinrich Bodensieck: Deutschland-Politik der Bundesrepublick Deutschland. Stuttgart 19815, p. 114
M7 드레스덴(동독) 출신의 한 19세 소녀의 의견이다
"독일의 통일이요? 청소년들은 그 문제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아요. 분단은 주어진 현실일 뿐이지요. "독일"이라는 주제는 "분디스(Bundis)"(서독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를 만날 일이 있을 때에만 대화의 주제가 됩니다. 서독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 주로 외국에서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갈 수 있는 나라에서 말이죠.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또는 불가리아에서요. 처음에는 서독 사람들이랑 우리랑 완전히 다를 거라 생각했어요. 분디스들은 훨씬 자유롭고 자신감 있어 보일 뿐 아니라 우리 "초니스(Zonis)"보다 훨씬 이기적인 사람들 같아 보여요. 그러나 친해지고 나면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요. 우선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연대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축구경기를 비롯한 운동 경기가 열리면 (동독이 출전하지 않은 경우) 우리는 당연히 "독일"편을 듭니다. 과거 독일영토였던 지역을 여행할 때도 일종의 독일민족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이 지역이 모두 독일 땅이었다니! 정말 넓고 큰 나라였었구나… 라고 감탄하게 되죠."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 1988년
[?] 동방조약 미국과 소비에트연방 간 긴장완화의 일환으로 서독은 1970년 소비에트연방 및 폴란드와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 체결 당사자들은 무엇보다 무력사용 금지 및 기존의 국경의 불가침성 특히 오더-나이세(Oder-Neiße)-국경 및 동서독 간 국경의 인정을 약속하였다. 동방조약들은 2년 후 동서독 간 기본조약 체결을 가능케 하였다.
기본조약 1972년 체결된 동서독 간 조약이 기본조약이다. 이 조약의 목표는 양 독일의 우호적인 이웃국가 관계 형성, 동등한 관계 형성, 상호 독립성과 자립성 존중, 상대방의 영토의 불가침성 인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양측 수도인 본과 동베를린에는 "상주 대표부"가 설치되었다. 기본조약은 동서독간 여행기회를 확대하였는데, 특히 서독에서 동독으로의 여행을 확대하였다. 동독에서 서독으로의 여행기회는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
질문과 심화 탐구 제안 (1) 1970-1972년 체결된 조약의 내용들을 정리하라. 이 조약들과 기존의 정책은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가? (VT, M1, M4, M5) (2) 신동방정책과 신독일정책의 수립 동기와 이러한 정책에 대한 반응을 정리하라. (VT, M1, M3, M5) (3) M2의 캐리커처와 M7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동서독의 태도 차이를 설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