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카타르
카타르 국 (State Of Qatar) | |
인구 | 2,258,283명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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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11,607㎢ |
언어 | 아랍어 |
정부 | 군주제 |
통화 | 리얄 (QAR) |
GDP | 전체 $182억 / 1인당 $102,943 |
HDI | 0.834 (36위, 2012년 조사) |
국제전화 | +974 |
도메인 | .qa |
이름 및 위치
카타르국(아랍어: دولة قطر 다울라트 카따르, 약칭 카타르)는 중동에 있는 입헌 군주국이며 수도는 도하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및 아랍에미리트와 가깝다. 이민 노동자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2대 1 정도이다. 대다수가 아랍어를 쓰며, 영어도 제2공용어다. 1940년 석유가 발견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급속히 현대화되었다. 1971년 독립 되었으며, 국제연합(UN)과 아랍 연맹에 가입했다. 모든 농경지가 국유이며,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정부에서 관장한다. 최근 차츰 민간 부문의 경제 참여를 확대하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1인당 GNP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간략역사
카타르는 10세기경 여러 아라비아 작가들의 문학작품에 처음 등장한다. 18세기에 멀리 아라비아 반도 서단과 북단 지역에 살던 할리파족(알할리파)이 카타르 북서부 앗주바라로 이주해오자 여기에 위협을 느낀 페르시아인들은 1783년 카타르를 침략했다. 할리파족은 이들에 맞서 싸워 이 지방에서 페르시아인들을 몰아낸 후 본거지를 바레인 섬으로 옮겨 마침내 독립국 바레인을 세우고 앗주바라 주변지역을 바레인 영토로 선포했다. 그후 바레인 토후들과 카타르에 있는 이름뿐인 국민들 사이에 불화가 심해져 1867년에 전면적인 전쟁이 일어났다. 이 기간중에 바레인인들은 아부다비 토후의 협조를 얻어 카타르를 향해 진격했으며, 도하 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다음해에 카타르 지역의 정치적 불안과 해적 행위의 빈발을 염려한 영국이 카타르 지배 가문의 후손인 무하마드 이븐 타니 알 타니를 토후로 앉혔으며, 무하마드는 자신과 이웃 나라의 분쟁 해결에 관한 모든 문제를 영국 판무관에게 일임한다는 협정에 서명했다. 오스만 제국은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 지역의 명목상 종주국으로서 1871년부터 카타르에 군대를 주둔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이러한 시도는 무력충돌만을 불러왔으며, 1893년의 전투에서는 토후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페르시아 만에 대한 투르크 제국의 영향력은 사라졌으며, 1916년 11월에는 트루셜스테이츠(지금의 아랍에미리트)를 본보기로 카타르가 영국의 보호국이 된다는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와 함께 여러 세기 동안 심각한 문제가 되어온 해적 행위도 사실상 완전히 사라졌다. 이무렵 카타르 경제는 거의 전적으로 진주 채취, 어업, 낙타 사육에 바탕을 두었지만 1940년 석유가 발견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급속히 현대화되었다. 카타르는 1971년 영국이 페르시아 만 지역에서 물러나자 이웃한 바레인과 함께 트루셜코스트 7개국과 합류하여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을 세우기로 합의했으나 결성 직전 따로 독립하기로 결정했다. 카타르는 1971년 9월 독립 주권국이 되었으며, 국제연합(UN)과 아랍 연맹에 가입했다.
지리
대체로 평평한 지형은 동쪽에서 중부 석회암 고원을 향해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서부 연안을 따라 높이가 40m에 이르는 구릉들이 솟아 있으며, 동부 연안의 북쪽 끝에는 몇 개의 낮은 벼랑이 있다. 남부지역은 대부분 바람에 날려온 모래로 뒤덮여 있으며, 특히 남동부지역은 사구가 지형의 중심을 이룬다.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돌과 모래로 뒤덮인 불모지로서 사구, 건조한 평지대, 염분이 침착된 평지를 이룬다. 카타르에 속한 많은 섬과 산호초들 가운데, 도하에서 동쪽으로 97km 떨어진 페르시아 만의 할룰은 카타르에 있는 3개 해저유전에서 나는 원유의 집유·저장지로서 큰 몫을 한다. 여름은 덥고 습하며 겨울은 온화하다. 7~8월에는 한낮의 기온이 40℃까지 오르며 습도가 85%를 웃도는 반면, 습기가 덜한 겨울에는 기온이 10~20℃에 머물며 밤에는 서늘하다. 연강우량은 평균 50~75㎜이다. 경작지는 총국토면적의 1%가 채 안 되며, 목초지로 적합한 땅 역시 5% 미만이다. 유일하게 식생을 찾아볼 수 있는 북부지역에는 새로 관개된 농경지가 있으며, 150여 종에 이르는 사막식물들이 비가 내리는 봄에 이곳에서 잠시 꽃을 피운다. 동물로는 가젤영양류·뜀쥐·사막쥐·게르빌루스쥐·산토끼·고슴도치 등의 포유동물과 양서류와 파충류에 속하는 도마뱀붙이류·사막왕도마뱀·모래땅아가마 등이 서식한다. 광물질이 많은 지하수는 음료수로 적합하지 않아 오늘날에는 바닷물을 증류시킨 증류수로 식수 공급의 절반 이상을 충당하고 있다. 메마른 사막지역에서 농경이 시작된 것은 20년이 채 안 되며, 깊은 지하샘을 이용한 관개농업으로 과일과 채소 같은 작물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바다에 접해 있으나, 기후는 몹시 건조한 사막 기후가 나타난다. 일최고 기온은 53~55도를 기록하고 있다.
사회
주민
카타르에는 원래 아라비아 반도 중부지역에서 온 유목민들이 정착해 살았으나 지금은 이민 노동자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도시에 거주하며 인구는 카타르 원주민 20%, 원주민을 제외한 아랍인 25%, 남아시아인 34%, 이란인 16%, 기타 5%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2대 1 정도이다. 국민 대다수가 아랍어를 쓰며, 영어도 제2공용어로 두루 사용한다. 카타르인들은 원주민이든 이주민이든 대부분 수니파 이슬람교에 속하는 와하비파의 교리를 따르지만 이웃나라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엄격하지는 않다. 이슬람교도가 아닌 사람은 허가를 받고 주류를 구입할 수 있으며, 종교 지도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 방송이 들어와 있다.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전통적인 보수주의가 지배하고 있어 1980년대초에는 여성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생기기도 했으나 경제적인 필요와 내국인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까닭에 여성들은 다른 아라비아 국가 여성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를 누리는 편이다. 수도인 도하는 조그마한 어촌에서 번화한 도심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총인구의 약 2/3가 거주한다. 그밖에도 1939년 카타르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2개의 항구도시, 서부 연안 두칸 근처의 지크리트와 동부 연안의 무사이드(움사이드)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문화
카타르인들은 지금까지 베두인 전통을 굳게 지키고 있다. 베두인족의 여러 가지 전통은 주민들의 삶 속에 아주 생생하게 살아 남아 있다. 남자들은 전통 의상 '아바'를 입으며, 집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드문 여자들이 외출하는 경우 검은 베일과 얼굴 가리개를 쓴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적인 전통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상당한 갈등을 빚고 있다.
종교
7세기 들어온 이슬람교가 국교지만, 아랍에미리트, 오만과 함께 아라비아 반도 국가 중에서 기독교회 건축이 허용된 몇 안 되는 나라이다. 종교 비율은 이슬람이 79%(대부분 수니파), 기독교가 7%(카타르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이 4%, 개신교가 2.5%, 정교회가 0.5% 등)이고, 힌두교 등 인도 종교가 14%를 차지한다. 2008년 카타르 역사 최초로 15만 명의 기독교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가톨릭교회가 건립되었다.
경제
모든 농경지가 국유이며, 대부분의 경제활동 역시 정부에서 관장하고 있다. 민간 부문은 일정한 범위 내의 상업과 청부업에 국한되어왔으나 요즈음은 차츰 민간 부문의 경제 참여를 확대하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증가율만큼 빠르게 늘어나지는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석유산업 부문이 GNP의 약 1/3, 정부세입의 4/5 이상을 차지한다. 척박한 땅으로 알려져왔으나 1970년대에 상당한 농업 발전을 이루어 채소 생산량이 국내 수요의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고, 계절에 따라서는 일부 잉여 생산물을 수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가공식품과 미가공식품을 수입하는 실정이다. 어업 생산물은 국내 시장에만 공급된다. 카타르의 석유 생산량은 세계총생산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석유 매장량은 한정되어 있으며, 1980년대에는 원유 총생산량의 변동이 심했다. 매장된 석유가 고갈되면서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의해 장기적으로는 천연 가스가 카타르 경제의 토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국내 산업의 원료와 수출용 액화 가스 생산의 원료로서 가스 사용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왔다. 4개 유전의 천연 가스 생산은 원유가 고갈되면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다른 유전들 가운데 광대한 해저 북부유전(Northwest Dome이라고도 함)에 매장된 막대한 양의 천연 가스를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1939년 서부 연안의 두칸 마을 부근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산업발전에 필요한 석유 수입을 얻기 시작했다. 무사이드에서는 석유와 천연 가스 개발로 주요산업이 빠르게 발전하여 1973년에 비료 공장에서 암모니아·요소비료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1978년에는 제강 공장이 세워졌다. 오늘날 무사이드에는 2개의 정유 공장이 가동중이며, 카타르 석유화학 공장이 있다. 그밖의 주요산업시설로는 제분 공장과 시멘트 공장이 있다. 오늘날 카타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노동력 가운데 약 90%가 외국인이다. 관료·교육·의료·기술직 등이 현재 외국인력으로 채워져 있으나 정부에서는 카타르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문맹을 몰아내 내국인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카타르는 금융업에 제한이 없으므로 일찍부터 페르시아 만 지역의 금융 중심지로 자리잡아왔다. 정부와 국민이 중앙은행인 카타르국립은행의 주식을 동일 비율로 소유하고 있다. 경제 발전에 맞추어 도로와 하수처리시설을 개량해왔는데, 이들은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기보다는 이미 있는 도로망을 개선하는 정책을 폈다. 도하에서 살와 근처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으로 이어지는 105km의 간선도로가 사우디아라비아 도로망과 연결되어 차량 편으로 지중해 및 유럽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여러 개의 공항이 있으며, 도하 국제공항에는 많은 외국 항공사들이 취항하고 있다. 수출량은 연간 수입량의 거의 2배에 가깝다. 수출품은 주로 원유(전체 수출품의 약 90%)와 액화 가스, 소량의 강철과 채소이며, 수입품은 기계·차량·공산품·식품·가축·화학약품·화학제품 등이다. 일본·영국·프랑스·독일 등이 주요 교역 상대국이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정부는 1971년 9월 카타르가 독립하자마자 카타르를 승인, 1974년 4월 19일에 국교를 수립하였다. 1976년부터 대한민국의 건설업체가 진출하였고, 양국은 1984년 4월 경제기술무역협력에 관한 협정, 1999년 4월에 투자보장 협정, 외무부 간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국인은 대사관 가족을 포함해 약 480명이 살고 있다. 서울 올림픽 때 12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현재 카타르 항공이 인천 - 도하 직항편을 새벽에 운항하고 있다.
※ 위의 내용은 주카타르대한민국대사관, 두산백과, 위키백과 등에서 얻은 정보에 기반함
바깥고리
연계 정보
관계 | 대상 문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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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s | 교육제도:카타르 | 카타르 교육과정, 2016년 조사 보고 |
uses | 교과서목록:카타르 | 카타르 사회과 교과서 총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