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스님(海成, 1958生, 비구니)
해성(海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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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해성(海成) |
법호 | 은공(恩空) |
속명 | 방정숙 |
출생 | 1958.1.5 |
출가 | 1978년 |
입적 | |
사찰 | 광림사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 273-2)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해성(海成)스님은 명식(明植)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불교의 자비·평등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사회복지에 전념하였으며 특히 청각장애인에 대한 복지에 힘쓴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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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 충남 온양 출생 |
1978 | 보현사에서 [[|명식(明植)스님]명식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83 | 동국대학교 선학과 졸업 |
1986 | [http://www.beomeo.kr/ 범어사}에서 자운(慈雲)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86 | 삼선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
1988 |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전화 카운슬러대학 17기 수료 |
1990 | 원심회 수화교육 기초, 회화반 수료 |
1991 |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연화복지학원 수료 |
1993 | 청각장애인의 배움터 연화복지학원 개원 |
1993 | 장애우 권익문제연구소 장애우대학 5기 수료 |
1995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수료 |
1997 | 불교방송 ‘거룩한 만남’ 진행 |
1999~2004 | 광림사 주지 및 연화복지학원 원장 청각장애인 수화 법회 및 상담, 운전교육 |
2002 | 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기공학과 석사과정 졸업 |
2003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회복지학과 재학 |
2004 |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대표이사 |
2020 | 서울 송파구 석촌동 [광림사] 주지 |
기타사항
문중 | 법기(法起)문중 |
수행지침 | 불교의 자비·평등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소외된 이웃, 특히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에 적응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심어주며, 그들이 자립능력을 배양하여 참다운 인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살행 실시 |
생활신조 |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
저서 및 작품 | 『자비의 수화교실』 (불광출판사, 1999)
『하얀 고무신』, 지식과사람들, 2018 『어머니의 풍경 소리』, 도반, 2021 |
상훈 |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장 외 다수 |
특기 | 수화통역 |
취미 | 동양화 및 음악 감상 |
활동 및 공헌
출가
해성(海成)스님은 1958년 음력 1월 5일 충남 온양에서 아버지 방기상과 어머니 강필화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온양이며, 이름은 방정숙이다.
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찍이 수행의 길로 들어서 1978년 보현사에서 명식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그 후 1983년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였고, 1986년 조계종 범어사 단일계단 제7회 비구니계를 수지하였으며, 같은 해 삼선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하였다. 2002년에는 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2004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회복지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논문 〈불교에 나타난 복지사상과 장애인에 관한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수학과 불사
출가 후 스님은 운문사 강원과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대산 지장암으로 돌아와 재무 소임을 맡았다. 그러던 중 전라남도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서 사찰을 지켜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당시 스님은 중국 유학과 천일지장기도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속에 운문사 강원과 중앙승가대학교의 많은 대중스님들이 발우를 펴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스님에게 누군가가 스님 자리라면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닌가. ‘꿈에 스님을 만나면 부처님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많은 스님들이 법석을 여는 꿈을 꾸다니….’
스님은 꿈이 천진암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직감하고 천진암을 제2의 고향으로 삼기로 작정, 천진암으로 내려가 불사에 혼신을 다하였다. 천진암은 고려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었으나 당시에는 낡은 법당과 허물어져가는 요사채만으로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은 천일지장기도를 하면서 건물을 보수하고 부족한 생활용수를 보충하기 위해 지하수를 개발했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이용했던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었으며, 천진암 입구의 도로를 확장하고 포장한 후 법당과 삼성각과 요사채를 보수하여 천진암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또한 호남에 비구니 선원이 거의 없는 사실이 안타까워 파도처럼 밀려오던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고 1996년 10월 15일 삼천일 지장기도 불사 회향을 하면서 호남에 첫 비구니 선원인 천진암 백암선원(白岩禪院)을 개원하고 그 해 첫 동안거를 열었다.
은사와 상좌의 입적
1995년 가을, 갑작스럽게 존경하던 은사스님이 입적했고 다음해인 1996년에는 꽃다운 나이의 제자를 떠나보냈다. 이에 정안스님은 생사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스님은 3년만 열심히 정진하면 생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람 수호와 포교 의무를 일단 접어둔 채 천진암은 제자에게 일임하고, 지장암은 권속에게 부탁한 후 오로지 참선 수행에만 몰입하였다.
오대산 지장암 면모 일신
스님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부와 일상생활이 둘이 아니며 자신이 머물고 있는 처처가 다 배움터요, 행하는 모든 일이 공부 아님이 없다는 자각이 분명해졌다. 이에 스님은 지장암으로 돌아왔고 5년간 상상을 초월하는 커다란 화두와 직면하게 되었다.
나날의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화두, 곧 육신을 죽일 것인가, 설자리를 버릴 것인가, 마음을 죽일 것인가 등등이 꼬리를 물고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님은 공동체 삶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에피스드를 수행의 재료로 삼아 어려움을 통해 겸손을, 가난한 살림살이를 통해 감사를 배웠다고 한다.
또한 북방 최초의 비구니 선원이라는 명성에 조금이라도 부응할 수 있도록 지장암 내 기린선원을 정비하여 많은 대중이 살 수 있게끔 조건을 갖추는데 공헌했다.
사찰
- 보덕사(☎ 041-353-9306):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207-36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뜨란출판사, 2007, pp. 459~463.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31.
- 오대산 기린선원 남대 지장암 [홈페이지], http://namdaejja.webbit.kr/
- 월정사 지장암 감원 정안스님 입적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475
- 佛心도 반해버린 산 병풍과 계곡 물소리, 백암산 천진암 [자비화 카페], https://cafe.daum.net/squirrel4u/Bpz4/4288?svc=cafeapi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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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淨岸)스님 | 본항목 | 정안스님(淨岸, 1951~2014) | 淨岸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안스님(淨岸,_1951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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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淨岸)스님 | 봉래(蓬萊)문중 | ~의 일원이다 |
정안(淨岸)스님 | 혜종(慧宗)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에서 출가하다 |
정안(淨岸)스님 | 희찬(喜燦)스님(1919~1983; 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정안(淨岸)스님 | 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 |
정안(淨岸)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중창하다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 |
주석
사교 [1]
- ↑ 여러 설이 있으나 보통 능엄경,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의 4과목을 강원에서는 4교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