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순스님(芝順, 1913生, 비구니)
지순(芝順)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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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지순(芝順) |
법호 | |
속명 | 박지순(朴芝順) |
출생 | 1913.08.17. |
출가 | 1939년 |
입적 | 2006.10.22. (세수 94세, 법랍 67세) |
사찰 | 보문동 미타사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3가 51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지순스님은 출가이후로 평생 절 밖을 나서지 않고 탑골승방 미타사를 지키며 백여 명이 넘는 아이를 길러내신 대한민국 사회복지의 선구자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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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 | 경기 수원 출생 |
1939 | 서울 탑골승방 미타사에서 유명(有明)스님을 은사로 출가 |
수원 용주사에서 대련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
1941 | 종흔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도감, 원주 소임 | |
2006. 10.22 | 입적(세수 94세, 법랍 67세) |
문중 | 보문동 미타사 탑골문중 |
수계제자 | 원호(元胡)・보명(寶明)・송현・나원 |
활동 및 공헌
출가
"평생을 이곳에만 있었어요. 특별히 한 일은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이 좋아서 아직까지 이렇게 절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탑골 승방으로 알려진 서울 보문동 미타사에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구니 노스님이 있다. 출가 이후 평생 동안 산문 밖 출입을 하지 않은 스님, 그가 바로 지순(芝順)스님이다. 스님은 세수 90세가 넘도록 잔병 하나 없이 정정했다. 1913년 수원에서 태어난 지순스님은 건강이 좋지 않았던 고모의 요양 길에 함께 미타사를 방 문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불교와의 첫 인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약했던 고모가 숨을 거두자 스님은 생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출가를 결심했다. 지순스님은 1939년 유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수원 용주사에서 대련스님을 계사로 사미니 계를 수지했고, 1941년 종흔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고모의 죽음을 통해 죽음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발심하고 출가 하게 됐지요. 이제 죽음이 무엇인지 알 나이가 되니 그때 가졌던 의심과 초발심이 얼마나 소중하게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나태해지면 항상 그때 그 마음을 생각합니다.”
평생 ‘인간방생’ 실천한 사회복지의 선구자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지순스님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험난한 현대사를 겪으면서 부모를 잃거나 버림받은 아이들을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두 명씩 데려다 키운 것이 100여 명이 넘었다. 복지 정책이 체계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절, 지순스님은 남보다 먼저 ‘인간 방생’을 실천했던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순스님은 '아이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모두 잘 자라주어서 너무 감사하다.'며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할머니가 되어 손자와 함께 찾아 올 때면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평생 탑골승방을 지킨 미타사 신장(神將)
지순스님이 미타사 산문을 나선 것은 평생 딱 한번 뿐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은사스님이신 유명스님의 명령 아닌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사찰에서 돌보고 있던 3~4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지순스님은 혼자 절을 지키고 있는 은사스님이 걱정되어 한 달 만에 다시 절로 돌아왔다. 유명스님은 그동안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절을 굳건히 지켰고, 지순스님은 은사스님의 이런 모습에 평생 사찰을 지키는 신장이 되겠다고 서원했다고 한다. 1954년 유명스님은 전쟁 동안 겪은 고초로 열반에 들고 말았는데, 이후 지순스님은 한 번도 절문을 나서지 않았다. “평생을 이곳에서만 있었어. 특별히 한 일도 없고 그냥 부처님이 좋아서 아직까지 이렇게 절을 지키고 있을 뿐이야.” 부처님에게 약속한 서원을 지키다 보니 지순스님은 다른 스님들처럼 선방이나 강원을 가지 못 했다. 산문 밖을 한 번도 나가지 않은 지순스님을 만나러 사람들이 찾아오면, “난 큰스님이 아닙니다. 나보다 훨씬 덕이 높으신 스님들이 많으니 그런 스님을 찾아가보세요.”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세수 90세가 넘도록 지순스님은 노구를 이끌고 하루에 천주 염주를 수십 차례 돌리며 조석예불과 포행을 빼놓지 않았다. 또 속옷이나 양말을 상좌들에게 맡기지 않고 손수 세탁하는 등 수행자의 여여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입적
지순 스님은 탑골승방 미타사의 신장이 되어 산문을 지키다가 2006년10월22일 세수 94세, 법랍 67세로 입적했고 10월24일 영결식을 하고나서야 산문을 나섰다. [출처] 요사채 (다음 카페; https://cafe.daum.net/ybdongmoon/2Ip3/458) 수계제자로는 원호(元胡)·보명(寶明)·송현·나원스님이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470~475.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537
- 요사채 (다음 카페; https://cafe.daum.net/ybdongmoon/2Ip3/458)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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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순(芝順)스님 | 본항목 | 지순스님(芝順, 1913~2006) | 芝順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지순스님(芝順,_1913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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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순(芝順)스님 | 보문동 미타사 탑골문중 | ~의 일원이다 |
지순(芝順)스님 | 유명(有明)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지순(芝順)스님 | 탑골 미타사 | ~에서 출가하다 |
지순(芝順)스님 | 대련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지순(芝順)스님 | 종흔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지도
- 보문동 미타사(☎ 02-923-1738):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3가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