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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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 생애와 업적 왜곡사건)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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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1907년
 
|출가= 1907년
 
|입적= 1938.05.29.(음력) </br> (세수74세, 법랍32세)  
 
|입적= 1938.05.29.(음력) </br> (세수74세, 법랍32세)  
|사찰= '''관음사''' </br> 제주도 제주시 아라일동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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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관음사''' </br> 제주도 제주시 아라일동 387 </br> (제주시 산록북로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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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 관음신앙 확신
 
|1901|| 관음신앙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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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해남 대흥사에서 유장스님을 은사로 청봉화상을 계사로 출가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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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해남 [http://www.daeheungsa.co.kr/home/main.asp  대흥사]에서 유장스님을 은사로 청봉화상을 계사로 출가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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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 대흥사 제주도 담당 포교사 취임.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로 부처님 오신 날 공식행사 개최
 
|1908 || 대흥사 제주도 담당 포교사 취임.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로 부처님 오신 날 공식행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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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 || 한라산 관음사 최초 창건(개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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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 || 한라산 [[제주 관음사|관음사]] 최초 창건(개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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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 법정사 창건
 
|1911 || 법정사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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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 || 불탑사 중창
 
|1913 || 불탑사 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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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 법정사 항일운동 주동자 강창규, 김연일, 방동화를 법정사로 이주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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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08268 법정사 항일운동] 주동자 [http://www.jeju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4056 강창규], [http://seogwipo.grandculture.net/seogwipo/dir/GC04601012?category=%EC%B0%B8%EA%B3%A0%EB%AC%B8%ED%97%8C&depth=3&name=%EC%88%98%ED%98%95%EC%9D%B8%EB%AA%85%EB%B6%80&search=%EC%88%98%ED%98%95%EC%9D%B8%EB%AA%85%EB%B6%80 김연일], [http://www.jeju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286 방동화]를 법정사로 이주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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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 법정사 항일운동 견인
 
|1918 || 법정사 항일운동 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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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 제주불교유치원 창설 추진
 
|1930 || 제주불교유치원 창설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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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 || 대흥사 제주포교소 고산 출장소 월성사 창건. 산천단 산신제단 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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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 || 대흥사 제주포교소 고산 출장소 [[제주 월성사|월성사]] 창건. [https://ncms.nculture.org/story-of-our-hometown/story/6585 산천단] 산신제단 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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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 산천단 한라산신제 복원.
 
|1933 || 산천단 한라산신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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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 || 제주중학강습원 주요설립자로 동참해 개교함
 
|1935 || 제주중학강습원 주요설립자로 동참해 개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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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 제주시 산록북로 660번지 일대 5만평을 관음사 부지로 등기완료.  고산 월성사 봉불식 거행. 제주도 관음사 일본 대판(大阪) 출장소 대각포교당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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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 제주시 산록북로 660번지 일대 5만평을 관음사 부지로 등기완료.  고산 [[제주 월성사|월성사]] 봉불식 거행. 제주도 관음사 일본 오사카(大阪) 출장소 대각포교당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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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 제주도 구좌읍 관음사 출장 포교소 설립
 
|1938 || 제주도 구좌읍 관음사 출장 포교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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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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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두옥(斗玉)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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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두옥(斗玉)문중|두옥문중(斗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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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지침||전법포교, 관음정진, 항일운동, 신여성 양성, 교육사업, 기근구제 등 대사회활동.
 
|수행지침||전법포교, 관음정진, 항일운동, 신여성 양성, 교육사업, 기근구제 등 대사회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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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제자 ||경우·대지월·화선·대혜·목련·성해·길만·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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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경우·대지월·화선·대혜·목련·[[성해스님(性海, 1889生, 비구니)|성해]]·길만·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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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재준(2)→우청(3)→두옥(斗玉, 4)→유장(宥藏, 5)→[[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蓬廬觀, 6)]]→화선(7), 대지월(7), [[성해스님(性海, 1889生, 비구니)|성혜(7)]]<ref>『한국비구니수행담록』과 『한국비구니명감』은 성해스님(性海)으로, 『한국의 비구니문중』은 성혜스님으로 되어 있다.</ref>, 길만(7), 원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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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및 공헌==
 
==활동 및 공헌==
 
=== 근대제주불교 최초 비구니===
 
=== 근대제주불교 최초 비구니===
[[File:223-01.jpg|섬네일|[봉려관스님] </br>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98]]
 
[[File:223-05.jpg|섬네일|[봉려관스님 비석 제막식] </br>사진출처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 104]]
 
[[File:223-02.jpg|섬네일|[옛 관음사 전경]</br>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100]]
 
[[File:11. 봉려관스님관음사2일주문.jpg|섬네일|[한라산 관음사 일주문] </br>사진출처 : 쉼,여행,템플스테이(인터넷 블로그) https://gotemplestay.tistory.com/755]]
 
[[File:제주관음사1.jpg|섬네일|[관음사 아미타불] </br>사진출처 : 쉼,여행,템플스테이(인터넷 블로그) https://gotemplestay.tistory.com/755]]
 
[[File:제주관음사4.jpg|섬네일|[관음사 ] </br>사진출처 : 쉼,여행,템플스테이(인터넷 블로그) https://gotemplestay.tistory.com/755]]
 
[[File:제주관음사2.jpg|섬네일|[관음사 대웅전] </br>사진출처 : 쉼,여행,템플스테이(인터넷 블로그) https://gotemplestay.tistory.com/755]]
 
[[File:제주관음사3.jpg|섬네일|[관음사 대웅전] </br>사진출처 : 쉼,여행,템플스테이(인터넷 블로그) https://gotemplestay.tistory.com/755]]
 
[[File:11. 봉려관스님관음사3수행하신해월굴.jpg|섬네일|[봉려관스님이 수행하신 해월굴] 사진출처 : 쉼,여행,템플스테이(인터넷 블로그) https://gotemplestay.tistory.com/755]]
 
  
봉려관(1865-1938)스님은 1865년 6월 14일(음) 제주 화북리에서 출생했으며, 부친은 안치복이고, 모친은 신씨이며, 차녀이다. 속명은 안려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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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1865-1938)스님은 1865년 6월 14일(음) 제주 화북리에서 출생했으며, 부친은 안치복이고, 모친은 신씨이며, 차녀이다. 속명은 안려관이다. </br>
 
1899년 집 앞을 지나던 비구로부터 관세음보살상을 건네받으면서부터 관음신앙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봉려관스님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관음기도에 열중하던 안려관을 식구들은 못마땅해 했고, 그래서 1901년 집을 나와 화북리 같은 마을에 거처를 마련해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혼자 살며 관음기도에 전념했지만, 또 동리 사람들이 몰려와 “다시는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말라”며 관세음보살상을 부수고 태워버렸고, 그리하여 또 다시 쫓기어 산천단으로 거처를 옮긴다. 산천단에 거처를 두고 불상을 구하려 다니던 안려관은 비양도에 불상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1901년 늦봄 비양도로 향했다.  </br>
 
1899년 집 앞을 지나던 비구로부터 관세음보살상을 건네받으면서부터 관음신앙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봉려관스님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관음기도에 열중하던 안려관을 식구들은 못마땅해 했고, 그래서 1901년 집을 나와 화북리 같은 마을에 거처를 마련해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혼자 살며 관음기도에 전념했지만, 또 동리 사람들이 몰려와 “다시는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말라”며 관세음보살상을 부수고 태워버렸고, 그리하여 또 다시 쫓기어 산천단으로 거처를 옮긴다. 산천단에 거처를 두고 불상을 구하려 다니던 안려관은 비양도에 불상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1901년 늦봄 비양도로 향했다.  </br>
목선에 의지해 비양도로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거의 전복되려 한 상황에서 안려관은 지성으로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였고, 깨어나 보니 비양도 바닷가 어느 집이었다.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확신을 한 안려관은 비양도에서 불상을 구하지 못하고 산천단 거처로 되돌아왔고, 관음신앙에 대한 확신을 갖고 관음정진에 더더욱 매진한다. 봉려관스님의 관음신앙은 향후 제주불자의 신앙관과 수행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br>
+
 
6년여를 제주 향촌을 다니면서 병자를 만나면 효능이 있는 약초를 알려주었고, 더불어 관음신앙도 전파하려 했지만 관음신앙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07년 9월 비단 염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구제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곧 출가의지를 내고 배를 타고 목포로 향했다. 목포에 도착해서 주변 여기저기를 돌아보던 중, 대흥사에 가면 계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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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선에 의지해 비양도로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거의 전복되려 한 상황에서 안려관은 지성으로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였고, 깨어나 보니 비양도 바닷가 어느 집이었다. </br>
해가 설핏할 때 대흥사에 도착한 안려관의 행색은 남루하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으며 몰골이 거지같아 주지스님이 한 번 보고는 더는 만나주지 않았다. 승려가 되고자 대흥사에 왔다고 말했지만, 2년의 행자생활을 하지 않아 계를 줄 수 없다는 답을 듣는다. 사중스님의 도움으로 며칠간 기거하면서 산중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이때 온 몸의 살이 곪아 썩어가는 스님을 보게 되었고, 민간요법으로 완쾌시킨다. 그러자 대흥사 스님들은 안려관을 달리 보았고, 온 산중이 이 일로 설왕설래했으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안려관에게 대중공사를 거쳐 수계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청신암에 계시던 비구니 유장을 은사로, 비구 청봉화상을 계사로 1907년 12월 8일 드디어 승려가 된다.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 비구니가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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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의 위신력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확신을 한 안려관은 비양도에서 불상을 구하지 못하고 산천단 거처로 되돌아왔고, 관음신앙에 대한 확신을 갖고 관음정진에 더더욱 매진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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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의 관음신앙은 향후 제주불자의 신앙관과 수행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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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여를 제주 향촌을 다니면서 병자를 만나면 효능이 있는 약초를 알려주었고, 더불어 관음신앙도 전파하려 했지만 관음신앙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07년 9월 비단 염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구제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곧 출가 의지를 내고 배를 타고 목포로 향했다. 목포에 도착해서 주변 여기저기를 돌아보던 중, 대흥사에 가면 계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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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설핏할 때 대흥사에 도착한 안려관의 행색은 남루하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으며 몰골이 거지같아 주지스님이 한 번 보고는 더는 만나주지 않았다. 승려가 되고자 대흥사에 왔다고 말했지만,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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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의 행자생활을 하지 않아 계를 줄 수 없다는 답을 듣는다. 사중스님의 도움으로 며칠간 기거하면서 산중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이때 온 몸의 살이 곪아 썩어가는 스님을 보게 되었고, 민간요법으로 완쾌시킨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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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대흥사 스님들은 안려관을 달리 보았고, 온 산중이 이 일로 설왕설래했으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안려관에게 대중공사를 거쳐 수계하기로 결정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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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신암에 계시던 비구니 유장을 은사로, 비구 청봉화상을 계사로 1907년 12월 8일 드디어 승려가 된다.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 비구니가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다.
  
 
===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다===
 
===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다===
 
1908년 1월 제주 산천단 거처로 되돌아온 승려 봉려관은 대흥사에서 모시고 온 불상을 모시고 조석으로 예불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관음정진에 전념한다. 1908년 4월 드디어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로 승려가 집전한 부처님 오신 날 공식행사를 무사히 마친다. 이는 200여 년간 지속되었던 제주불교암흑기를 마침내 끝내고 근대제주불교역사를 써 내려가는 순간이다.  </br>
 
1908년 1월 제주 산천단 거처로 되돌아온 승려 봉려관은 대흥사에서 모시고 온 불상을 모시고 조석으로 예불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관음정진에 전념한다. 1908년 4월 드디어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로 승려가 집전한 부처님 오신 날 공식행사를 무사히 마친다. 이는 200여 년간 지속되었던 제주불교암흑기를 마침내 끝내고 근대제주불교역사를 써 내려가는 순간이다.  </br>
1909년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 사찰인 한라산 관음사를 등짐을 져서 홀로 최초 창건한다. 봉려관스님은 한라산 관음사의 최초 창건주이고, 개산조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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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 사찰인 한라산 [[제주 관음사|관음사]]를 등짐을 져서 홀로 최초 창건한다. 봉려관스님은 한라산 관음사의 최초 창건주이고, 개산조이다.  </br>
봉려관스님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찰인 불탑사, 고관사(조천포구의 관음사), 법화사는 중창하고, 항일운동 근거지로 법정사를 창건하였으며, 포교요충지에는 백련사, 월성사, 성내포교당, 소림사, 대각포교당(일본) 등의 포교당을 창건해서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운다. 한라산 관음사는 수행중심 사찰이라 하겠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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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찰인 불탑사, 고관사(조천포구의 관음사), 법화사는 중창하고, 항일운동 근거지로 법정사를 창건하였으며, 포교요충지에는 백련사, 월성사, 성내포교당, 소림사, 대각포교당(일본) 등의 포교당을 창건해서 근대 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운다. 한라산 관음사는 수행중심 사찰이라 하겠다.  </br>
 
봉려관스님은 1926년 제주불교소녀단, 제주불교부인회를 창설해서 신여성 양성에 힘을 기우렸고, 제주도 각 지역포교당마다 염불회를 조직해서 매월 염불법회를 개최하도록 했으며, 매년 2월에는 다함께 모여 1주일 내지 보름간 염불수행에 전념하는 행사를 봉행해서, 염불정진으로 제주 전 지역을 하나로 묶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br>
 
봉려관스님은 1926년 제주불교소녀단, 제주불교부인회를 창설해서 신여성 양성에 힘을 기우렸고, 제주도 각 지역포교당마다 염불회를 조직해서 매월 염불법회를 개최하도록 했으며, 매년 2월에는 다함께 모여 1주일 내지 보름간 염불수행에 전념하는 행사를 봉행해서, 염불정진으로 제주 전 지역을 하나로 묶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br>
제주도 상권중심지에 창건한 성내포교당은 불교관련 행사는 물론 제주불교협회를 비롯해서 불교관련 단체들의 활동 거점지 역할을 했고, 불교의식에 의거한 결혼식을 거행하고, 일반사회단체의 거점지 등, 제주불교중흥에 막중한 역할을 해낸다. 이렇게 해서 근대제주불교를 중흥시킨 봉려관을 훗날 사람들은 ‘제주불교 중흥조’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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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상권중심지에 창건한 성내포교당은 불교관련 행사는 물론 제주불교협회를 비롯해서 불교관련 단체들의 활동 거점지 역할을 했고, 불교의식에 의거한 결혼식을 거행하고, 일반사회단체의 거점지 등, 제주불교중흥에 막중한 역할을 해낸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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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근대제주불교를 중흥시킨 봉려관을 훗날 사람들은 ‘제주불교 중흥조’라 부르고 있다.
  
 
===비구니 항일독립운동가===
 
===비구니 항일독립운동가===
1909년 7월 대흥사를 방문했던 봉려관은 당시 심적암에서 항일인사가 참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고, 이때 항일의지를 다진다. 제주로 되돌아온 봉려관은 항일운동 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항일을 도모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고, 그리하여 항일인사 은신처로 창건된 것이 바로 1911년 최초 창건한 법정사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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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7월 대흥사를 방문했던 봉려관은 당시 심적암에서 항일인사가 참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고, 이때 항일의지를 다진다. 제주로 되돌아온 봉려관은 항일운동 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항일을 도모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고, 그리하여 항일 인사 은신처로 창건된 것이 바로 1911년 최초 창건한 법정사이다.  </br>
1913년(또는 1914년) 한라산 영실 초막에서 차력훈련을 하며 지내던 강창규, 김연일, 방동화를 법정사로 이주시킨 후, 의식주는 물론 항일자금 조달,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보내주고, 위험에 처했을 때는 숨을 곳을 제공하는 등, 총만 들고 나가 싸우지 않았지 1918년 법정사항일운동을 견인시킨 주요한 역할을 해 낸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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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또는 1914년) 한라산 영실 초막에서 차력훈련을 하며 지내던 강창규, 김연일, 방동화를 법정사로 이주시킨 후, 의식주는 물론 항일자금 조달,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보내주고,위험에 처했을 때는 숨을 곳을 제공하는 등, 총만 들고 나가 싸우지 않았지 1918년 법정사항일운동을 견인시킨 주요한 역할을 해 낸다.  </br>
 
봉려관스님은 1918년 법정사항일운동 이후에도 방동화를 통해 항일자금을 제주도외 항일조직에게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대흥사에 가서 항일자금을 전달했다는 증언도 다수 있다.  </br>
 
봉려관스님은 1918년 법정사항일운동 이후에도 방동화를 통해 항일자금을 제주도외 항일조직에게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대흥사에 가서 항일자금을 전달했다는 증언도 다수 있다.  </br>
1918년 법정사항일운동이 발발한 후, 수감된 항일인사들이 감형될 수 있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리하여 조기 출감한 항일인사들은 봉려관스님에게 진 빚을 갚는다며 1926년 법화사 중창 시 함께 와서 거들었다고 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방동화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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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법정사항일운동이 발발한 후, 수감된 항일인사들이 감형될 수 있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리하여 조기 출감한 항일인사들은 봉려관스님에게 진 빚을 갚는다며 1926년 법화사 중창 시 함께 와서 거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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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방동화이다. </br>
 
1909년 항일을 결심한 봉려관스님은 1938년 입적할 때까지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았고, 후손의 증언에 의하면 봉려관스님이 갑자기 입적한 것은 항일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br>
 
1909년 항일을 결심한 봉려관스님은 1938년 입적할 때까지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았고, 후손의 증언에 의하면 봉려관스님이 갑자기 입적한 것은 항일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br>
 
제주여성항일운동가 고수선, 강평국, 최정숙 보다 먼저 항일운동을 하신 분이 바로 비구니 봉려관이다. 현재 비구니 항일운동가로서 공식적으로 거론된 분은 봉려관스님이 처음이고, 여성독립운동가 100인에도 선정되었다.
 
제주여성항일운동가 고수선, 강평국, 최정숙 보다 먼저 항일운동을 하신 분이 바로 비구니 봉려관이다. 현재 비구니 항일운동가로서 공식적으로 거론된 분은 봉려관스님이 처음이고, 여성독립운동가 100인에도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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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은 불교와 조국을 위해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사회단체와 연대해서 제주사회가 직면한 어려움 극복에도 앞장선다.  
 
봉려관스님은 불교와 조국을 위해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사회단체와 연대해서 제주사회가 직면한 어려움 극복에도 앞장선다.  
 
봉려관스님은 여성의 사회활동, 신여성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는데, 1925년 ‘제주여자청년회 창립총회’를 성내포교당에서 개최하도록 장소를 제공한다. 같은 해 ‘전 제주소년소녀 현상웅변대회’에 의연금을 출연하는 등 대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모습이다.  </br>
 
봉려관스님은 여성의 사회활동, 신여성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는데, 1925년 ‘제주여자청년회 창립총회’를 성내포교당에서 개최하도록 장소를 제공한다. 같은 해 ‘전 제주소년소녀 현상웅변대회’에 의연금을 출연하는 등 대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모습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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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경영난을 겪던 제주유치원을 성내포교당으로 들어오게 해서 다시 개원하도록 하였고, 1930년에는 불교유치원 창설을 위한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1927년 경영난을 겪던 제주유치원을 성내포교당으로 들어오게 해서 다시 개원하도록 하였고, 1930년에는 불교유치원 창설을 위한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더불어 당시 제주도는 중등학교 결핍으로 천여 명의 학생이 배움을 계속할 수 없는 사회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봉려관스님을 비롯해 제주불교협회가 만원을 출연하고, 해남 대흥사에서 만원을 보조받아 제주중학강습원을 마침내 개교한다.  </br>
 
더불어 당시 제주도는 중등학교 결핍으로 천여 명의 학생이 배움을 계속할 수 없는 사회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봉려관스님을 비롯해 제주불교협회가 만원을 출연하고, 해남 대흥사에서 만원을 보조받아 제주중학강습원을 마침내 개교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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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은 제주불교소녀단과 제주불교부인회를 창설해서 신여성운동에 앞장섰으며, 제주가 흉년으로 힘들어지자 기독교, 천주교 등 지도자와 함께 기근구제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회구호활동에도 앞장선다. 1925년 황폐해진 동수천을 수리하고 재건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봉려관스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고, 맞닥뜨린 어려움을 탓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신 분이다. 현재까지 제주불교역사를 되돌아보면, 봉려관스님을 뛰어넘는 업적을 남기신 분은 없다 할 수 있겠다.
 
봉려관스님은 제주불교소녀단과 제주불교부인회를 창설해서 신여성운동에 앞장섰으며, 제주가 흉년으로 힘들어지자 기독교, 천주교 등 지도자와 함께 기근구제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회구호활동에도 앞장선다. 1925년 황폐해진 동수천을 수리하고 재건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봉려관스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고, 맞닥뜨린 어려움을 탓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신 분이다. 현재까지 제주불교역사를 되돌아보면, 봉려관스님을 뛰어넘는 업적을 남기신 분은 없다 할 수 있겠다.
  
 
===입적이 남긴 의문===
 
===입적이 남긴 의문===
 
1938년 5월 29일(음) 오후, 공양주와 함께 관음사 주변으로 산책을 나섰던 봉려관스님은 식용버섯이 보이자 공양주에게 그 버섯을 채취해서 저녁에 대중스님들에게 국을 끓여 드리자고 하였고, 공양주가 국을 끓여 먼저 봉려관스님에게 한 그릇 드렸는데, 몇 수저 드시자마자 갑자기 쓰러지면서 바로 세연을 거두셨다. 공양주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갔고, 봉려관스님은 관음사에서 화장을 해서 산골 한 것으로 알려졌다. </br>
 
1938년 5월 29일(음) 오후, 공양주와 함께 관음사 주변으로 산책을 나섰던 봉려관스님은 식용버섯이 보이자 공양주에게 그 버섯을 채취해서 저녁에 대중스님들에게 국을 끓여 드리자고 하였고, 공양주가 국을 끓여 먼저 봉려관스님에게 한 그릇 드렸는데, 몇 수저 드시자마자 갑자기 쓰러지면서 바로 세연을 거두셨다. 공양주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갔고, 봉려관스님은 관음사에서 화장을 해서 산골 한 것으로 알려졌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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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관음사에서 화장을 마친 봉려관스님의 유골은 제주항아리에 담겨 관음사 주변 산에 묻혀 있었고, 제주 4.3이 끝나고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고서야 비로소 대지월의 유언을 받은 손상좌 인흥스님이 봉려관스님의 유골을 찾아 분쇄한 후, 관음사 대웅전 앞 쪽에 산골 한다.  </br>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관음사에서 화장을 마친 봉려관스님의 유골은 제주항아리에 담겨 관음사 주변 산에 묻혀 있었고, 제주 4.3이 끝나고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고서야 비로소 대지월의 유언을 받은 손상좌 인흥스님이 봉려관스님의 유골을 찾아 분쇄한 후, 관음사 대웅전 앞 쪽에 산골 한다.  </br>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관음사 개산조의 유골이 화장 후 산골조차 못하고 매장되었다가 10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산골 되어야 했을까! 게다가 봉려관스님은 생존 시 언론에 자주 노출되었지만, 유독 스님의 입적관련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또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스님이 입적하신 후의 일련의 상황들은 합리적 의문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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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관음사 개산조의 유골이 화장 후 산골조차 못하고 매장되었다가 10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산골 되어야 했을까! 게다가 봉려관스님은 생존 시 언론에 자주 노출되었지만, 유독 스님의 입적 관련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또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스님이 입적하신 후의 일련의 상황들은 합리적 의문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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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 원로들은 '''독버섯 국을 드시고 입적'''하셨다는 구술을 한다. 그러나 안광호(1915-1989)스님을 비롯해 문도들은 '''독이 든 버섯국을 드시고 입적(독살)'''하셨고, 항일운동 한 것이 들통이 나서 독살 당했다는 구술을 일관되게 한다.  </br>
 
제주불교 원로들은 '''독버섯 국을 드시고 입적'''하셨다는 구술을 한다. 그러나 안광호(1915-1989)스님을 비롯해 문도들은 '''독이 든 버섯국을 드시고 입적(독살)'''하셨고, 항일운동 한 것이 들통이 나서 독살 당했다는 구술을 일관되게 한다.  </br>
 
향후 봉려관스님 입적과 관련된 진실을 알 수 있는 문헌이 나오기를 희망할 뿐이다.
 
향후 봉려관스님 입적과 관련된 진실을 알 수 있는 문헌이 나오기를 희망할 뿐이다.
  
 
===봉려관스님 생애와 업적 왜곡사건===
 
===봉려관스님 생애와 업적 왜곡사건===
200여 년간 지속되었던 제주불교암흑기를 마침내 끝내고, 일제강점기에 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고 중흥시켰으며, 조국의 아픔도 도외시하지 않았고, 당시 제주도가 직면한 사회적 어려움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기여했던 봉려관스님의 생애와 업적은 당시 언론매체의 기사, 문인들의 기행문, 학자의 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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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년간 지속되었던 제주불교 암흑기를 마침내 끝내고, 일제강점기에 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고 중흥시켰으며, 조국의 아픔도 도외시하지 않았고, 당시 제주도가 직면한 사회적 어려움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기여했던 봉려관스님의 생애와 업적은 당시 언론 매체의 기사, 문인들의 기행문, 학자의 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대제주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인 비구니 봉려관의 업적은 2002년을 기점으로 네 사람에 의해 고의적이고 조직적으로 왜곡되어 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대담함은 사고의 범위를 넘어섰으며, 드디어 2017년 12월에는 근거문헌제시 없이 느닷없이 봉려관스님의 입적지까지 바꿔버리기에 이르렀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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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봉려관스님이 한라산 관음사 최초 창건주이자 개산조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조천포구에 있었던 고려시대 사찰 관음사(훗날 봉려관스님에 의해 고관사로 개칭)의 역사를 마치 한라산 관음사의 역사인양 가져다 기술하고는, 봉려관 스님을 한라산 관음사의 중창주로 간주하려는 눈속임까지 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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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대 제주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인 비구니 봉려관의 업적은 2002년을 기점으로 네 사람에 의해 고의적이고 조직적으로 왜곡되어 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대담함은 사고의 범위를 넘어섰으며, 드디어 2017년 12월에는 근거문헌제시 없이 느닷없이 봉려관스님의 입적지까지 바꿔버리기에 이르렀다. </br>
뿐만 아니라, 봉려관스님이 한라산 관음사의 최초 창건주이고, 개산조이고, 초대 주지라는 것은 근거문헌이 있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1914년 가솔을 거느리고 군인신분으로 제주에 들어와 훗날 봉려관의 권유로 승려가 된 비구를 초대주지라 한다. 그리고 1921년 처음 제주를 방문해서, 법회 또는 행사참석을 위해 제주를 오갔고, 훗날 친일승려에 이름을 올린 분을 관음사 최초창건증명법사라 하는 등, 웃지 못 할 일들이 지금도 제주도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한라산 관음사의 최초창건증명법사는 대흥사 조실 청봉화상이다. 해당사찰의 최초 창건주가 비구이든 비구니이든 성별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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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17년 두옥문도회, 사단법인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이 주축이 되어 봉려관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되찾아 드리기 위한 검증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근대제주불교역사의 정사(正史)를 찾아가는 학술세미나는 매년 개최되고 있다. 역사왜곡은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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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봉려관스님이 한라산 관음사 최초 창건주이자 개산조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조천 포구에 있었던 고려시대 사찰 관음사(훗날 봉려관스님에 의해 고관사로 개칭)의 역사를 마치 한라산 관음사의 역사인양 가져다 기술하고는, 봉려관 스님을 한라산 관음사의 중창주로 간주하려는 눈속임까지 한다.   
봉려관스님의 직계후손은 제주를 비롯해 부산, 대전, 담양, 경기도 등에서 사회복지활동과 전법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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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봉려관스님이 한라산 관음사의 최초 창건주이고, 개산조이고, 초대 주지라는 것은 근거 문헌이 있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1914년 가솔을 거느리고 군인 신분으로 제주에 들어와 훗날 봉려관의 권유로 승려가 된 비구를 초대주지라 한다. 그리고 1921년 처음 제주를 방문해서, 법회 또는 행사 참석을 위해 제주를 오갔고, 훗날 친일 승려에 이름을 올린 분을 관음사 최초 창건 증명법사라 하는 등, 웃지 못 할 일들이 지금도 제주도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한라산 관음사의 최초 창건 증명법사는 대흥사 조실 청봉화상이다. 해당사찰의 최초 창건주가 비구이든 비구니이든 성별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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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17년 두옥문도회, 사단법인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이 주축이 되어 봉려관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되찾아 드리기 위한 검증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근대 제주불교 역사의 정사(正史)를 찾아가는 학술 세미나는 매년 개최되고 있다. 역사 왜곡은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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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의 직계 후손은 제주를 비롯해 부산, 대전, 담양, 경기도 등에서 사회복지 활동과 전법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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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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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223-01.jpg|섬네일|'''봉려관스님''' </br>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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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223-05.jpg|섬네일|'''봉려관스님 비석 제막식''' </br>사진출처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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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223-02.jpg|섬네일|'''옛 관음사 전경''' </br>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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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봉려관스님사진2.jpg|섬네일|'''1열 오른쪽이 봉려관스님. 1930년대 중, 후반으로 추정''' </br> 사진제공: 혜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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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관음사오사카포교당봉불식.jpg|섬네일|'''제주 관음사 대판(오사카) 출장 대각포교당 봉불식''' </br> 출처 : 불교시보 제29호(193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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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고산포교당 봉불식.jpg|섬네일|'''제주 고산포교당 봉불식''' </br> 출처 : 불교시보 제27호(193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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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관음사주최강연회.jpg|섬네일|'''제주 관음사 주최의 심전개발 대강연회'''</br> 출처 : 불교시보 제21호(19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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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11. 봉려관스님관음사2일주문.jpg|섬네일|'''한라산 관음사 일주문''' </br>사진출처 : 다음 블로그, https://gotemplestay.tistory.com/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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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제주관음사1.jpg|섬네일|'''관음사 아미타불''' </br>사진촬영 : 김은희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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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제주관음사4.jpg|섬네일|'''관음사''' </br>사진촬영 : 김은희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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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제주관음사2.jpg|섬네일|'''관음사 대웅전''' </br>사진촬영 : 김은희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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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제주관음사3.jpg|섬네일|'''관음사 대웅전''' </br>사진촬영 : 김은희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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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11. 봉려관스님관음사3수행하신해월굴.jpg|섬네일|'''봉려관스님께서 수행하신 해월굴''' </br>사진촬영 : 김은희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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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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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 사이트 https://xn--zb0b74sn0d.org/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p. 96~107.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권. 뜨란출판사, 2007, pp. 96~107.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23.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23.
 
* 전국비구니회, 『한국의 비구니의 수행과 삶』, 예문서원, 2007년, pp. 343-366
 
* 전국비구니회, 『한국의 비구니의 수행과 삶』, 예문서원, 2007년, pp. 343-366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26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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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p. 261~262.
* 혜달스님, 『봉려관-근대 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다』, 조계종출판사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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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혜달 스님, 제주의 여성리더 봉려관(Bongnyeogwan, an Eminent Female Leader of Jeju), 봉려관 불교문화연구소, 사)봉려관선양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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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달스님, 『봉려관-근대 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다』, 조계종출판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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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달스님, 「봉려관과 근대 제주불교 지평의 확장」, 『한마음연구』 제11집(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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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달스님, 「「정구용 대구복심법원 판결문」에 나타난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 『불교문예연구』 제22집(2023)
 
* 윤필, 이향순, 『고마워요 봉려관』, 북뱅크 (2020년) (동화책)  
 
* 윤필, 이향순, 『고마워요 봉려관』, 북뱅크 (2020년)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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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봉려관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2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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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투데이, ‘제주불교 중흥조’ 안봉려관 스님 재조명 세미나 (2011년)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126
 
* 제주불교신문, 『사진으로 보는 제주불교 100년』, (2013년) https://www.earticle.net/Article/A155819   
 
* 제주불교신문, 『사진으로 보는 제주불교 100년』, (2013년) https://www.earticle.net/Article/A155819   
* 다음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2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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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스님 행적비 제막 (2012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9802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스님 행적비 제막 (2012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9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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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보신문,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 스님 항일운동 조명한다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119  
*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 스님 항일운동 조명한다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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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 [불교항일운동, 그 현장] (19) 항일운동 지원한 봉려관 스님 (2019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171
* 제주불교 중흥 ‘봉려관 스님’ 동화책 출간 (2020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7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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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제주일보, 제주 불교계 항일운동가 '봉려관', 창작 뮤지컬 초연 (2019년) http://www.jejuilbo.net/news/articleView.html?idxno=128343
* '보천교의 난’에서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2020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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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 제주불교 중흥 ‘봉려관 스님’ 동화책 출간 (2020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7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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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보천교의 난’에서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2020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360  
 
* 법보신문, “유구한 전통의 한국 비구니승단, 묻혀선 안 될 불교사의 반쪽” (2021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334
 
* 법보신문, “유구한 전통의 한국 비구니승단, 묻혀선 안 될 불교사의 반쪽” (2021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334
* 민중과 민족의 아픔 보듬은 ‘봉려관 스님’ (2021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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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 민중과 민족의 아픔 보듬은 ‘봉려관 스님’ (2021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087  
*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 신화의 섬 제주도 자복미륵 (2021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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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보신문, 제주불교 이끈 봉려관 스님 생애 다시 밝혔다(2021년)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912
* [2021년 5월호] 비구니 봉려관, 제주 불교를 시작하다 / 전현자 https://cafe.daum.net/mobuddhism/Ochq/597?q=%ED%95%9C%EA%B5%AD%ED%98%84%EB%8C%80%EB%B9%84%EA%B5%AC%EB%8B%88%EC%97%B0%EA%B5%AC%EC%86%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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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 신화의 섬 제주도 자복미륵 (2021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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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불교, 봉려관스님 행적을 찾아 떠나는 힐링체험 평가회 열려 (2021년) http://www.jeju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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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불교, [인터뷰]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혜달 스님 (2021년)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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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현대불교, [2021년 5월호] 비구니 봉려관, 제주 불교를 시작하다 / 전현자 https://cafe.daum.net/mobuddhism/Ochq/597?q=한국현대비구니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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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TN, 우리가 몰랐던 항일운동가 봉려관스님 생애 [혜달스님의 다다붓다 몰아보기] (2022년) https://www.youtube.com/watch?v=2j0yjARqn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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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불교, “봉려관 스님, 독립자금 마련 위해 소종 만들어” (2022년) https://www.jeju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3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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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제주불교 개척 봉려관 스님, 어느 그릇에도 담아낼 물같은 존재”(2022년)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20523/113558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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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TN, [BTN 특집 다큐] 왜곡된 근대 제주불교사를 다시 써내려가다! [고마워요 봉려관] (2022년) https://www.youtube.com/watch?v=eSXApeEFT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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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TN, 법정사 유적지에 봉려관 스님의 이름이 없는 이유? [혜달스님의 다다붓다 38회] (2022년) https://www.youtube.com/watch?v=-T9zsRZ3m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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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드라인제주, 안봉려관 스님의 일화, 뮤지컬 '아라리의 꿈' 발표를 기다리며 (2022년) https://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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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제주불교 개척 봉려관 스님, 어느 그릇에도 담아낼 물같은 존재”(2022년)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20523/113558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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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보신문, 기억해야 할 그 이름 ‘봉려관’(2022년)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13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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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불교, 봉려관, 근대 제주불교 중흥 이끈 선각자(2023년) https://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9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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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음연구(논문), 봉려관과 근대 제주불교 지평의 확장 (2023년)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989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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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신문, 근대 제주불교역사 진실 찾는 '학술의 장' 펼친다 (2024년)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419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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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불교, “법정사 항일무장투쟁의 근저에는 봉려관스님의 발자취 스며있어”(2024년) https://www.jeju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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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S, 혜달스님, 관음사 ‘김석윤 창건주’ 설 반박...봉려관이 개산조(2024년) https://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07658
  
 
==시맨틱 데이터==  
 
==시맨틱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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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션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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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두옥(斗玉)문중|두옥문중(斗玉)]] || ~의 일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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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두옥(斗玉)문중|두옥문중(斗玉)]] || ~의 일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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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유장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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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유장(宥藏)스님|유장스님(宥藏)]] || ~의 수계제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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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해남 대흥사]] || ~에서 출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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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해남 대흥사(대둔사)]] || ~에서 출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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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청봉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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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청봉세영(淸峯世英)|청봉스님(淸峯)]]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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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 관음사]]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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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항일독립운동]] || ~에 참여하다 || 성명 : 안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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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 성내포교당]]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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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 관음사]]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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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 법정사]]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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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 불탑사]] || ~을(를) 중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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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서귀포 법정사]]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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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 고관사]] || ~을(를) 중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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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 법화사]] || ~을(를) 중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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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 고관사]] || ~을(를) 중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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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 월성사]]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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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서귀포 법화사]] || ~을(를) 중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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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 백련사]]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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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 월성사]]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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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 소림사]]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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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불교부인회]] || ~을(를) 설립(건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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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여자청년회 창립총회]] || ~을(를) 지원하다 || 성내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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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일본 오사카 대각포교당]] || ~을(를) 설립(건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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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불교소녀단]] || ~을(를) 건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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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제주 구좌포교소]] || ~을(를) 창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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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중학강습원]] || ~의 주요 설립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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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蓬廬觀)스님]] || [[독립운동가]] || ~중 일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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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일본오사카 대각포교당]] || ~을(를) 창건하다 ||
 
|}
 
|}
  
 
==지도==
 
==지도==
* '''제주 관음사''' : 제주도 제주시 산록북로 660(아라1동 387) 관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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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관음사''' : 제주도 제주시 아라일동 387 (제주시 산록북로 660)
{{ 구글지도 | 위도= 33.491623 | 경도=126.532397 | 줌=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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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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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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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비구니 | 대한민국(한국) 주요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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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구니 인물사전 데이터 아카이브|대한민국(한국) 비구니 인물사전 데이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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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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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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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석==
 
<references/>
 
<references/>
*작성자: 혜달(사단법인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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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비구니스님]]
==다른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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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180px"  |[[각림스님(覺棽, 1927生, 비구니) | 각림스님(覺棽, 1927년생)]] || style="width:200px"  |[[묘관스님(妙觀, 1936生, 비구니) | 묘관스님(妙觀, 1936년생)]] || style="width:180px"  |[[선경스님(禪敬, 1904生, 비구니) | 선경스님(禪敬, 1904년생)]] || style="width:180px"  |[[일광스님(一光, 1899生, 비구니) | 일광스님(一光, 1899년생)]] || style="width:180px"  |[[지형스님(志炯, 1947生, 비구니) | 지형스님(志炯, 194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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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심스님(覺心, 1936生, 비구니) | 각심스님(覺心, 1936년생)]] || [[묘관스님(妙觀, 1948生, 비구니) | 묘관스님(妙觀, 1948년생)]] || [[선광스님(善光, 1949生, 비구니) | 선광스님(善光, 1949년생)]] || [[일선스님(一禪, 1952生, 비구니) | 일선스님(一禪, 1952년생)]] || [[지호스님(智毫, 1956生, 비구니) | 지호스님(智毫, 195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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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환스님(戒環, 1953生, 비구니) | 계환스님(戒環, 1953년생)]] || [[백졸스님(百拙, 1936生, 비구니) | 백졸스님(百拙, 1936년생)]] || [[성법스님(性法, 1929生, 비구니) | 성법스님(性法, 1929년생)]] || [[자은스님(慈恩, 1943生, 비구니) | 자은스님(慈恩, 1943년생)]] || [[탁연스님(卓然, 1949生, 비구니) | 탁연스님(卓然, 194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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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월스님(觀月, 1904生, 비구니) | 관월스님(觀月, 1904년생)]] || [[범조스님(梵早, 1941生, 비구니) | 범조스님(梵早, 1941년생)]] || [[성수스님(性樹, 1948生, 비구니) | 성수스님(性樹, 1948년생)]] || [[자현스님(慈賢, 1896生, 비구니) | 자현스님(慈賢, 1896년생)]] || [[탄형스님(呑炯, 1948生, 비구니) | 탄형스님(呑炯, 194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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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우스님(光雨, 1926生, 비구니) | 광우스님(光雨, 1926년생)]] || [[법능스님(法能, 1932生, 비구니) | 법능스님(法能, 1932년생)]] || [[성원스님(性源, 1918生, 비구니) | 성원스님(性源, 1918년생)]] || [[재현스님(在玄, 1946生, 비구니) | 재현스님(在玄, 1946년생)]] || [[해성스님(海成, 1958生, 비구니) | 해성스님(海成, 195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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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호스님(光毫, 1915生, 비구니) | 광호스님(光毫, 1915년생)]] || [[법륜스님(法倫, 1948生, 비구니) | 법륜스님(法倫, 1948년생)]] || [[성월스님(性月, 1947生, 비구니) | 성월스님(性月, 1947년생)]] || [[재호스님(宰毫, 1938生, 비구니) | 재호스님(宰毫, 1938년생)]] || [[해운스님(海雲, 1920生, 비구니) | 해운스님(海雲, 192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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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룡스님(金龍, 1892生, 비구니) | 금룡스님(金龍, 1892년생)]] || [[법성스님(法性, 1914生, 비구니) | 법성스님(法性, 1914년생)]] || [[성일스님(性一, 1944生, 비구니) | 성일스님(性一, 1944년생)]] || [[재홍스님(在洪, 1931生, 비구니) | 재홍스님(在洪, 1931년생)]] || [[해주스님(海住, 1951生, 비구니) | 해주스님(海住, 195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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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탄스님(亘坦, 1885生, 비구니) | 긍탄스님(亘坦, 1885년생)]] || [[법성스님(法惺, 1938生, 비구니) | 법성스님(法惺, 1938년생)]] || [[성주스님(性主, 1825生, 비구니) | 성주스님(性主, 1825년생)]] || [[적조스님(寂照, 1942生, 비구니) | 적조스님(寂照, 1942년생)]] || [[행원스님(行願, 1928生, 비구니) | 행원스님(行願, 192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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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묵스님(雷默, 1919生, 비구니) | 뇌묵스님(雷默, 1919년생)]] || [[법성스님(法性, 1940生, 비구니) | 법성스님(法性, 1940년생)]] || [[성주스님(性住, 1938生, 비구니) | 성주스님(性住, 1938년생)]] || [[정관스님(靜觀, 1945生, 비구니) | 정관스님(靜觀, 1945년생)]] || [[허경스님(虛鏡, 1440生, 비구니) | 허경스님(虛鏡, 144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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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인스님(能忍, 1944生, 비구니) | 능인스님(能忍, 1944년생)]] || [[법용스님(法涌, 1936生, 비구니) | 법용스님(法涌, 1936년생)]] || [[성주스님(性珠, 1946生, 비구니) | 성주스님(性珠, 1946년생)]] || [[정덕스님(正德, 1933生, 비구니) | 정덕스님(正德, 1933년생)]] || [[현각스님(玄覺, 1935生, 비구니) | 현각스님(玄覺, 193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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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인스님(能仁, 1946生, 비구니) | 능인스님(能仁, 1946년생)]] || [[법운스님(法雲, 1927生, 비구니) | 법운스님(法雲, 1927년생)]] || [[성지스님(聖智, 1926生, 비구니) | 성지스님(聖智, 1926년생)]] || [[정률스님(廷律, 1963生, 비구니) | 정률스님(廷律, 1963년생)]] || [[현묵스님(炫默, 1932生, 비구니) | 현묵스님(炫默, 1932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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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각스님(大覺, 1914生, 비구니) | 대각스님(大覺, 1914년생)]] || [[법운스님(法雲, 1937生, 비구니) | 법운스님(法雲, 1937년생)]] || [[성진스님(性眞, 1896生, 비구니) | 성진스님(性眞, 1896년생)]] || [[정명스님(淨明, 1940生, 비구니) | 정명스님(淨明, 1940년생)]] || [[현성스님(賢星, 1945生, 비구니) | 현성스님(賢星, 194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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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스님(大英, 1903生, 비구니) | 대영스님(大英, 1903년생)]] || [[법인스님(法印, 1930生, 비구니) | 법인스님(法印, 1930년생)]] || [[성총스님(聖叢, 1944生, 비구니) | 성총스님(聖叢, 1944년생)]] || [[정명스님(正明, 1954生, 비구니) | 정명스님(正明, 1954년생)]] || [[현수스님(賢秀, 1943生, 비구니) | 현수스님(賢秀, 1943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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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스님(大愚, 1949生, 비구니) | 대우스님(大愚, 1949년생)]] || [[법일스님(法一, 1904生, 비구니) | 법일스님(法一, 1904년생)]] || [[성타스님(性陀, 1934生, 비구니) | 성타스님(性陀, 1934년생)]] || [[정목스님(正牧, 1960生, 비구니) | 정목스님(正牧, 1960년생)]] || [[현정스님(玄定, 1948生, 비구니) | 현정스님(玄定, 194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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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은스님(大恩, 1852生, 비구니) | 대은스님(大恩, 1852년생)]] || [[법전스님(法田, 1927生, 비구니) | 법전스님(法田, 1927년생)]] || [[성탄스님(性坦, 1911生, 비구니) | 성탄스님(性坦, 1911년생)]] || [[정묘스님(靜妙, 1941生, 비구니) | 정묘스님(靜妙, 1941년생)]] || [[현진스님(玄眞, 1934生, 비구니) | 현진스님(玄眞, 1934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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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행스님(大行, 1926生, 비구니) | 대행스님(大行, 1926년생)]] || [[법전스님(法典, 1945生, 비구니) | 법전스님(法典, 1945년생)]] || [[성현스님(聖賢, 1927生, 비구니) | 성현스님(聖賢, 1927년생)]] || [[정성스님(定星, 1940生, 비구니) | 정성스님(定星, 1940년생)]] || [[현진스님(玄眞, 1937生, 비구니) | 현진스님(玄眞, 193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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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현스님(大玄, 1916生, 비구니) | 대현스님(大玄, 1916년생)]] || [[법종스님(法宗, 1945生, 비구니) | 법종스님(法宗, 1945년생)]] || [[세등스님(世燈, 1926生, 비구니) | 세등스님(世燈, 1926년생)]] || [[정수스님(貞守, 1939生, 비구니) | 정수스님(貞守, 1939년생)]] || [[현찬스님(賢讚, 1934生, 비구니) | 현찬스님(賢讚, 1934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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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현스님(大玄, 1957生, 비구니) | 대현스님(大玄, 1957년생)]] || [[법진스님(法眞, 1942生, 비구니) | 법진스님(法眞, 1942년생)]] || [[소림스님(昭林, 1937生, 비구니) | 소림스님(昭林, 1937년생)]] || [[정수스님(淨洙, 1941生, 비구니) | 정수스님(淨洙, 1941년생)]] || [[현행스님(賢行, 1928生, 비구니) | 현행스님(賢行, 192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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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스님(德修, 1922生, 비구니) | 덕수스님(德修, 1922년생)]] || [[법천스님(法泉, 1944生, 비구니) | 법천스님(法泉, 1944년생)]] || [[수옥스님(守玉, 1902生, 비구니) | 수옥스님(守玉, 1902년생)]] || [[정심스님(定心, 1918生, 비구니) | 정심스님(定心, 1918년생)]] || [[혜경스님(慧鏡, 1924生, 비구니) | 혜경스님(慧鏡, 1924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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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운스님(德雲, 1942生, 비구니) | 덕운스님(德雲, 1942년생)]] || [[법형스님(法衡, 1921生, 비구니) | 법형스님(法衡, 1921년생)]] || [[수인스님(守仁, 1779生, 비구니) | 수인스님(守仁, 1779년생)]] || [[정심스님(正心, 1925生, 비구니) | 정심스님(正心, 1925년생)]] || [[혜광스님(慧光, 1940生, 비구니) | 혜광스님(慧光, 194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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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광스님(度光, 1952生, 비구니) | 도광스님(度光, 1952년생)]] || [[법홍스님(法弘, 1943生, 비구니) | 법홍스님(法弘, 1943년생)]] || [[수인스님(守仁, 1899生, 비구니) | 수인스님(守仁, 1899년생)]] || [[정안스님(正眼, 1950生, 비구니) | 정안스님(正眼, 1950년생)]] || [[혜근스님(慧根, 1935生, 비구니) | 혜근스님(慧根, 193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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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문스님(道門, 1942生, 비구니) | 도문스님(道門, 1942년생)]] || [[법희스님(法喜, 1887生, 비구니) | 법희스님(法喜, 1887년생)]] || [[수진스님(守珍, 1916生, 비구니) | 수진스님(守珍, 1916년생)]]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스님(淨岸, 1951년생)]] || [[혜돈스님(慧頓, 1949生, 비구니) | 혜돈스님(慧頓, 194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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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상스님(道常, 1937生, 비구니) | 도상스님(道常, 1937년생)]] || [[법희스님(法希, 1930生, 비구니) | 법희스님(法希, 1930년생)]] || [[수진스님(修眞, 1950生, 비구니) | 수진스님(修眞, 1950년생)]] || [[정운스님(淨雲, 1954生, 비구니) | 정운스님(淨雲, 1954년생)]] || [[혜등스님(慧燈, 1946生, 비구니) | 혜등스님(慧燈, 194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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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성스님(道成, 1922生, 비구니) | 도성스님(道成, 1922년생)]] || [[법희스님(法熺, 1952生, 비구니) | 법희스님(法熺, 1952년생)]] || [[수현스님(修賢, 1940生, 비구니) | 수현스님(修賢, 1940년생)]] || [[정원스님(正圓, 1939生, 비구니) | 정원스님(正圓, 1939년생)]] || [[혜명스님(慧明, 1917生, 비구니) | 혜명스님(慧明, 191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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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연스님(道鍊, 1911生, 비구니) | 도연스님(道鍊, 1911년생)]] || [[보각스님(普覺, 1904生, 비구니) | 보각스님(普覺, 1904년생)]] || [[수현스님(修賢, 1941生, 비구니) | 수현스님(修賢, 1941년생)]] || [[정인스님(正忍, 1946生, 비구니) | 정인스님(正忍, 1946년생)]] || [[혜문스님(慧門, 1930生, 비구니) | 혜문스님(慧門, 193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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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원스님(道圓, 1904生, 비구니) | 도원스님(道圓, 1904년생)]] || [[보각스님(寶覺, 1938生, 비구니) | 보각스님(寶覺, 1938년생)]] || [[수환스님(修還, 1950生, 비구니) | 수환스님(修還, 1950년생)]] || [[정일스님(淨日, 1934生, 비구니) | 정일스님(淨日, 1934년생)]] || [[혜소스님(慧沼, 1931生, 비구니) | 혜소스님(慧沼, 193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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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준스님(道準, 1900生, 비구니) | 도준스님(道準, 1900년생)]] || [[보명스님(寶明, 1946生, 비구니) | 보명스님(寶明, 1946년생)]] || [[순희스님(順姬, 1917生, 비구니) | 순희스님(順姬, 1917년생)]] || [[정행스님(淨行, 1902生, 비구니) | 정행스님(淨行, 1902년생)]] || [[혜안스님(慧眼, 1912生, 비구니) | 혜안스님(慧眼, 1912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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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헌스님(度憲, 1939生, 비구니) | 도헌스님(度憲, 1939년생)]] || [[보명스님(寶明, 1954生, 비구니) | 보명스님(寶明, 1954년생)]] || [[신전스님(信典, 1934生, 비구니) | 신전스님(信典, 1934년생)]] || [[정화스님(淨華, 1922生, 비구니) | 정화스님(淨華, 1922년생)]] || [[혜안스님(慧眼, 1923生, 비구니) | 혜안스님(慧眼, 1923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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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훈스님(道勳, 1933生, 비구니) | 도훈스님(道勳, 1933년생)]] || [[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 | 보문스님(普門, 1938년생)]] || [[연호스님(蓮湖, 1930生, 비구니) | 연호스님(蓮湖, 1930년생)]] || [[정화스님(貞和, 1923生, 비구니) | 정화스님(貞和, 1923년생)]] || [[혜옥스님(慧玉, 1901生, 비구니) | 혜옥스님(慧玉, 190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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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근스님(東根, 1951生, 비구니) | 동근스님(東根, 1951년생)]] || [[보선스님(普善, 1946生, 비구니) | 보선스님(普善, 1946년생)]] || [[영수스님(暎修, 1941生, 비구니) | 영수스님(暎修, 1941년생)]] || [[종수스님(宗秀, 1922生, 비구니) | 종수스님(宗秀, 1922년생)]] || [[혜운스님(慧雲, 1911生, 비구니) | 혜운스님(慧雲, 191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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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스님(東城, 1913生, 비구니) | 동성스님(東城, 1913년생)]] || [[보영스님(普暎, 1937生, 비구니) | 보영스님(普暎, 1937년생)]] || [[영운스님(靈雲, 1946生, 비구니) | 영운스님(靈雲, 1946년생)]] || [[종수스님(鍾修, 1922生, 비구니) | 종수스님(鍾修, 1922년생)]] || [[혜원스님(慧圓, 851生, 비구니) | 혜원스님(慧圓, 85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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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현스님(東玄, 1945生, 비구니) | 동현스님(東玄, 1945년생)]] || [[보원스님(普願, 1944生, 비구니) | 보원스님(普願, 1944년생)]] || [[영원스님(盈圓, 1949生, 비구니) | 영원스님(盈圓, 1949년생)]] || [[종식스님(宗植, 1944生, 비구니) | 종식스님(宗植, 1944년생)]] || [[혜은스님(慧隱, 1937生, 비구니) | 혜은스님(慧隱, 193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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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희스님(東熙, 1945生, 비구니) | 동희스님(東熙, 1945년생)]] || [[보인스님(寶仁, 1924生, 비구니) | 보인스님(寶仁, 1924년생)]] || [[영춘스님(永春, 1894生, 비구니) | 영춘스님(永春, 1894년생)]] || [[종실스님(宗實, 1951生, 비구니) | 종실스님(宗實, 1951년생)]] || [[혜일스님(慧日, 1919生, 비구니) | 혜일스님(慧日, 191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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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선스님(萬善, 1883生, 비구니) | 만선스님(萬善, 1883년생)]] || [[보현스님(普賢, 1934生, 비구니) | 보현스님(普賢, 1934년생)]] || [[예순스님(禮順, 1587生, 비구니) | 예순스님(禮順, 1587년생)]] || [[지광스님(志光, 1934生, 비구니) | 지광스님(志光, 1934년생)]] || [[혜일스님(慧日, 1947生, 비구니) | 혜일스님(慧日, 194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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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선스님(萬善, 1906生, 비구니) | 만선스님(萬善, 1906년생)]] || [[보화스님(普和, 1933生, 비구니) | 보화스님(普和, 1933년생)]] || [[운달스님(雲達, 1942生, 비구니) | 운달스님(雲達, 1942년생)]] || [[지명스님(智明, 1921生, 비구니) | 지명스님(智明, 1921년생)]] || [[혜전스님(慧田, 1929生, 비구니) | 혜전스님(慧田, 192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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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선스님(萬善, 996生, 비구니) | 만선스님(萬善, 996년생)]] || [[본각스님(本覺, 1952生, 비구니) | 본각스님(本覺, 1952년생)]] || [[원오스님(圓悟, 1933生, 비구니) | 원오스님(圓悟, 1933년생)]] || [[지문스님(志門, 1958生, 비구니) | 지문스님(志門, 1958년생)]] || [[혜종스님(慧宗, 1930生, 비구니) | 혜종스님(慧宗, 193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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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성스님(萬性, 1897生, 비구니) | 만성스님(萬性, 1897년생)]] || [[본공스님(本空, 1907生, 비구니) | 본공스님(本空, 1907년생)]] || [[원표스님(圓表, 1951生, 비구니) | 원표스님(圓表, 1951년생)]] || [[지성스님(志性, 1939生, 비구니) | 지성스님(志性, 1939년생)]] || [[혜주스님(慧珠, 1925生, 비구니) | 혜주스님(慧珠, 192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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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길스님(明吉, 1931生, 비구니) | 명길스님(明吉, 1931년생)]] ||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 |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년생)]] || [[월혜스님(月慧, 1895生, 비구니) | 월혜스님(月慧, 1895년생)]] || [[지순스님(芝順, 1913生, 비구니) | 지순스님(芝順, 1913년생)]] || [[혜준스님(慧俊, 1935生, 비구니) | 혜준스님(慧俊, 193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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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륜스님(明倫, 1937生, 비구니) | 명륜스님(明倫, 1937년생)]] || [[불필스님(不必, 1937生, 비구니) | 불필스님(不必, 1937년생)]] || [[육년스님(六年, 1906生, 비구니) | 육년스님(六年, 1906년생)]] || [[지연스님(知衍, 1947生, 비구니) | 지연스님(知衍, 1947년생)]] || [[혜춘스님(慧春, 1919生, 비구니) | 혜춘스님(慧春, 191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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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스님(眀星, 1931生, 비구니) | 명성스님(眀星, 1931년생)]] || [[상근스님(祥根, 1872生, 비구니) | 상근스님(祥根, 1872년생)]]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스님(六文, 1946년생)]] || [[지오스님(智悟, 1955生, 비구니) | 지오스님(智悟, 1955년생)]] || [[혜해스님(慧海, 1921生, 비구니) | 혜해스님(慧海, 192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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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수스님(明洙, 1925生, 비구니) | 명수스님(明洙, 1925년생)]] || [[상덕스님(常德, 1951生, 비구니) | 상덕스님(常德, 1951년생)]] || [[윤호스님(輪浩, 1907生, 비구니) | 윤호스님(輪浩, 1907년생)]] || [[지우스님(至牛, 1935生, 비구니) | 지우스님(至牛, 1935년생)]] || [[회선스님(會善, 1926生, 비구니) | 회선스님(會善, 192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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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심스님(明心, 1947生, 비구니) | 명심스님(明心, 1947년생)]] || [[상덕스님(常德, 1952生, 비구니) | 상덕스님(常德, 1952년생)]] || [[은영스님(恩榮, 1910生, 비구니) | 은영스님(恩榮, 1910년생)]] || [[지원스님(知元, 1931生, 비구니) | 지원스님(知元, 1931년생)]] || [[효성스님(曉星, 1898生, 비구니) | 효성스님(曉星, 189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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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안스님(明岸, 1941生, 비구니) | 명안스님(明岸, 1941년생)]] || [[상덕스님(尙悳, 1925生, 비구니) | 상덕스님(尙悳, 1925년생)]] || [[응민스님(應旼, 1923生, 비구니) | 응민스님(應旼, 1923년생)]] || [[지원스님(智圓, 1938生, 비구니) | 지원스님(智圓, 1938년생)]] || [[효성스님(曉惺, 1927生, 비구니) | 효성스님(曉惺, 192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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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오스님(明悟, 1916生, 비구니) | 명오스님(明悟, 1916년생)]] || [[상락스님(常樂, 1928生, 비구니) | 상락스님(常樂, 1928년생)]] || [[인성스님(仁成, 1901生, 비구니) | 인성스님(仁成, 1901년생)]] || [[지원스님(智願, 1942生, 비구니) | 지원스님(智願, 1942년생)]] || [[효성스님(曉星, 1948生, 비구니) | 효성스님(曉星, 194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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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완스님(明完, 1937生, 비구니) | 명완스님(明完, 1937년생)]] || [[상륜스님(相侖, 1929生, 비구니) | 상륜스님(相侖, 1929년생)]] || [[인완스님(仁完, 1930生, 비구니) | 인완스님(仁完, 1930년생)]] || [[지인스님(智因, 1937生, 비구니) | 지인스님(智因, 1937년생)]] || [[효천스님(曉天, 1941生, 비구니) | 효천스님(曉天, 194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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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주스님(明珠, 1904生, 비구니) | 명주스님(明珠, 1904년생)]] || [[상원스님(相源, 1939生, 비구니) | 상원스님(相源, 1939년생)]] || [[인정스님(仁貞, 1899生, 비구니) | 인정스님(仁貞, 1899년생)]] || [[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 | 지행스님(智行, 1941년생)]] || [[효탄스님(曉呑, 1955生, 비구니) | 효탄스님(曉呑, 195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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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6일 (금) 05:02 기준 최신판



정의

봉려관(蓬廬觀)스님은 근대 제주불교 최초의 비구니로서 근대 제주불교를 중흥시켰으며 항일독립운동과 사회활동에 헌신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865 제주도 화북리에서 출생
1899 관음신앙을 처음 받아들임
1901 관음신앙 확신
1907 해남 대흥사에서 유장스님을 은사로 청봉화상을 계사로 출가수계
1908 대흥사 제주도 담당 포교사 취임.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로 부처님 오신 날 공식행사 개최
1909 한라산 관음사 최초 창건(개산조)
1911 법정사 창건
1913 불탑사 중창
1914 법정사 항일운동 주동자 강창규, 김연일, 방동화를 법정사로 이주시킴
1918 법정사 항일운동 견인
1919 ~ 제주 한림에서 서귀포까지 백인화보살과 함께 6-7개 사찰을 창건했지만 일본경찰에 의해 바로 철거당함
1924 관음사 중창불사 낙성. 제주불교협회 발기인으로 참여. 대흥사로부터 1,000원, 범종 340근을 희사 받아 성내포교당으로 운반
1925 성내포교당 창건. 성내포교당 관세음보살상 개금불사 회향. 성내포교당에서 보살계법회 개최. 성내포교당에서 제주여자청년회 창립총회 개최. 전 제주소년소녀웅변대회 개최에 의연금 출연.
1926 제주불교소녀단, 제주불교부인회를 창립해서 신여성 양성. 관음사 산남 포교소 서귀포 법화사 중창. 관음사 동북 포교소 백련사 창건.
1927 경영난을 겪던 제주유치원을 성내포교당에서 다시 개원
1930 제주불교유치원 창설 추진
1932 대흥사 제주포교소 고산 출장소 월성사 창건. 산천단 산신제단 중창.
1933 산천단 한라산신제 복원.
1935 제주중학강습원 주요설립자로 동참해 개교함
1937 제주시 산록북로 660번지 일대 5만평을 관음사 부지로 등기완료. 고산 월성사 봉불식 거행. 제주도 관음사 일본 오사카(大阪) 출장소 대각포교당 창건.
1938 제주도 구좌읍 관음사 출장 포교소 설립
1938 음력 5월 29일 한라산 관음사에서 입적(세수 74세, 법랍 32)
문중 두옥문중(斗玉)
수행지침 전법포교, 관음정진, 항일운동, 신여성 양성, 교육사업, 기근구제 등 대사회활동.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경우·대지월·화선·대혜·목련·성해·길만·원만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재준(2)→우청(3)→두옥(斗玉, 4)→유장(宥藏, 5)→봉려관(蓬廬觀, 6)→화선(7), 대지월(7), 성혜(7)[1], 길만(7), 원만(7)

활동 및 공헌

근대제주불교 최초 비구니

봉려관(1865-1938)스님은 1865년 6월 14일(음) 제주 화북리에서 출생했으며, 부친은 안치복이고, 모친은 신씨이며, 차녀이다. 속명은 안려관이다.
1899년 집 앞을 지나던 비구로부터 관세음보살상을 건네받으면서부터 관음신앙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봉려관스님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관음기도에 열중하던 안려관을 식구들은 못마땅해 했고, 그래서 1901년 집을 나와 화북리 같은 마을에 거처를 마련해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혼자 살며 관음기도에 전념했지만, 또 동리 사람들이 몰려와 “다시는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말라”며 관세음보살상을 부수고 태워버렸고, 그리하여 또 다시 쫓기어 산천단으로 거처를 옮긴다. 산천단에 거처를 두고 불상을 구하려 다니던 안려관은 비양도에 불상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1901년 늦봄 비양도로 향했다.

목선에 의지해 비양도로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거의 전복되려 한 상황에서 안려관은 지성으로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였고, 깨어나 보니 비양도 바닷가 어느 집이었다.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확신을 한 안려관은 비양도에서 불상을 구하지 못하고 산천단 거처로 되돌아왔고, 관음신앙에 대한 확신을 갖고 관음정진에 더더욱 매진한다.
봉려관스님의 관음신앙은 향후 제주불자의 신앙관과 수행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6년여를 제주 향촌을 다니면서 병자를 만나면 효능이 있는 약초를 알려주었고, 더불어 관음신앙도 전파하려 했지만 관음신앙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07년 9월 비단 염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구제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곧 출가 의지를 내고 배를 타고 목포로 향했다. 목포에 도착해서 주변 여기저기를 돌아보던 중, 대흥사에 가면 계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해가 설핏할 때 대흥사에 도착한 안려관의 행색은 남루하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으며 몰골이 거지같아 주지스님이 한 번 보고는 더는 만나주지 않았다. 승려가 되고자 대흥사에 왔다고 말했지만,
2년의 행자생활을 하지 않아 계를 줄 수 없다는 답을 듣는다. 사중스님의 도움으로 며칠간 기거하면서 산중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이때 온 몸의 살이 곪아 썩어가는 스님을 보게 되었고, 민간요법으로 완쾌시킨다.
그러자 대흥사 스님들은 안려관을 달리 보았고, 온 산중이 이 일로 설왕설래했으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안려관에게 대중공사를 거쳐 수계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청신암에 계시던 비구니 유장을 은사로, 비구 청봉화상을 계사로 1907년 12월 8일 드디어 승려가 된다.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 비구니가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다.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다

1908년 1월 제주 산천단 거처로 되돌아온 승려 봉려관은 대흥사에서 모시고 온 불상을 모시고 조석으로 예불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관음정진에 전념한다. 1908년 4월 드디어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로 승려가 집전한 부처님 오신 날 공식행사를 무사히 마친다. 이는 200여 년간 지속되었던 제주불교암흑기를 마침내 끝내고 근대제주불교역사를 써 내려가는 순간이다.
1909년 근대제주불교역사 상 최초 사찰인 한라산 관음사를 등짐을 져서 홀로 최초 창건한다. 봉려관스님은 한라산 관음사의 최초 창건주이고, 개산조이다.

봉려관스님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찰인 불탑사, 고관사(조천포구의 관음사), 법화사는 중창하고, 항일운동 근거지로 법정사를 창건하였으며, 포교요충지에는 백련사, 월성사, 성내포교당, 소림사, 대각포교당(일본) 등의 포교당을 창건해서 근대 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운다. 한라산 관음사는 수행중심 사찰이라 하겠다.
봉려관스님은 1926년 제주불교소녀단, 제주불교부인회를 창설해서 신여성 양성에 힘을 기우렸고, 제주도 각 지역포교당마다 염불회를 조직해서 매월 염불법회를 개최하도록 했으며, 매년 2월에는 다함께 모여 1주일 내지 보름간 염불수행에 전념하는 행사를 봉행해서, 염불정진으로 제주 전 지역을 하나로 묶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제주도 상권중심지에 창건한 성내포교당은 불교관련 행사는 물론 제주불교협회를 비롯해서 불교관련 단체들의 활동 거점지 역할을 했고, 불교의식에 의거한 결혼식을 거행하고, 일반사회단체의 거점지 등, 제주불교중흥에 막중한 역할을 해낸다.
이렇게 해서 근대제주불교를 중흥시킨 봉려관을 훗날 사람들은 ‘제주불교 중흥조’라 부르고 있다.

비구니 항일독립운동가

1909년 7월 대흥사를 방문했던 봉려관은 당시 심적암에서 항일인사가 참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고, 이때 항일의지를 다진다. 제주로 되돌아온 봉려관은 항일운동 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항일을 도모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고, 그리하여 항일 인사 은신처로 창건된 것이 바로 1911년 최초 창건한 법정사이다.
1913년(또는 1914년) 한라산 영실 초막에서 차력훈련을 하며 지내던 강창규, 김연일, 방동화를 법정사로 이주시킨 후, 의식주는 물론 항일자금 조달,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보내주고,위험에 처했을 때는 숨을 곳을 제공하는 등, 총만 들고 나가 싸우지 않았지 1918년 법정사항일운동을 견인시킨 주요한 역할을 해 낸다.
봉려관스님은 1918년 법정사항일운동 이후에도 방동화를 통해 항일자금을 제주도외 항일조직에게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대흥사에 가서 항일자금을 전달했다는 증언도 다수 있다.
1918년 법정사항일운동이 발발한 후, 수감된 항일인사들이 감형될 수 있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리하여 조기 출감한 항일인사들은 봉려관스님에게 진 빚을 갚는다며 1926년 법화사 중창 시 함께 와서 거들었다고 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방동화이다.
1909년 항일을 결심한 봉려관스님은 1938년 입적할 때까지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았고, 후손의 증언에 의하면 봉려관스님이 갑자기 입적한 것은 항일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제주여성항일운동가 고수선, 강평국, 최정숙 보다 먼저 항일운동을 하신 분이 바로 비구니 봉려관이다. 현재 비구니 항일운동가로서 공식적으로 거론된 분은 봉려관스님이 처음이고, 여성독립운동가 100인에도 선정되었다.

대사회활동

봉려관스님은 불교와 조국을 위해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사회단체와 연대해서 제주사회가 직면한 어려움 극복에도 앞장선다. 봉려관스님은 여성의 사회활동, 신여성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는데, 1925년 ‘제주여자청년회 창립총회’를 성내포교당에서 개최하도록 장소를 제공한다. 같은 해 ‘전 제주소년소녀 현상웅변대회’에 의연금을 출연하는 등 대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모습이다.

1927년 경영난을 겪던 제주유치원을 성내포교당으로 들어오게 해서 다시 개원하도록 하였고, 1930년에는 불교유치원 창설을 위한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더불어 당시 제주도는 중등학교 결핍으로 천여 명의 학생이 배움을 계속할 수 없는 사회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봉려관스님을 비롯해 제주불교협회가 만원을 출연하고, 해남 대흥사에서 만원을 보조받아 제주중학강습원을 마침내 개교한다.

봉려관스님은 제주불교소녀단과 제주불교부인회를 창설해서 신여성운동에 앞장섰으며, 제주가 흉년으로 힘들어지자 기독교, 천주교 등 지도자와 함께 기근구제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회구호활동에도 앞장선다. 1925년 황폐해진 동수천을 수리하고 재건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봉려관스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고, 맞닥뜨린 어려움을 탓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신 분이다. 현재까지 제주불교역사를 되돌아보면, 봉려관스님을 뛰어넘는 업적을 남기신 분은 없다 할 수 있겠다.

입적이 남긴 의문

1938년 5월 29일(음) 오후, 공양주와 함께 관음사 주변으로 산책을 나섰던 봉려관스님은 식용버섯이 보이자 공양주에게 그 버섯을 채취해서 저녁에 대중스님들에게 국을 끓여 드리자고 하였고, 공양주가 국을 끓여 먼저 봉려관스님에게 한 그릇 드렸는데, 몇 수저 드시자마자 갑자기 쓰러지면서 바로 세연을 거두셨다. 공양주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갔고, 봉려관스님은 관음사에서 화장을 해서 산골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관음사에서 화장을 마친 봉려관스님의 유골은 제주항아리에 담겨 관음사 주변 산에 묻혀 있었고, 제주 4.3이 끝나고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고서야 비로소 대지월의 유언을 받은 손상좌 인흥스님이 봉려관스님의 유골을 찾아 분쇄한 후, 관음사 대웅전 앞 쪽에 산골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관음사 개산조의 유골이 화장 후 산골조차 못하고 매장되었다가 10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산골 되어야 했을까! 게다가 봉려관스님은 생존 시 언론에 자주 노출되었지만, 유독 스님의 입적 관련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또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스님이 입적하신 후의 일련의 상황들은 합리적 의문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제주불교 원로들은 독버섯 국을 드시고 입적하셨다는 구술을 한다. 그러나 안광호(1915-1989)스님을 비롯해 문도들은 독이 든 버섯국을 드시고 입적(독살)하셨고, 항일운동 한 것이 들통이 나서 독살 당했다는 구술을 일관되게 한다.
향후 봉려관스님 입적과 관련된 진실을 알 수 있는 문헌이 나오기를 희망할 뿐이다.

봉려관스님 생애와 업적 왜곡사건

200여년간 지속되었던 제주불교 암흑기를 마침내 끝내고, 일제강점기에 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고 중흥시켰으며, 조국의 아픔도 도외시하지 않았고, 당시 제주도가 직면한 사회적 어려움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기여했던 봉려관스님의 생애와 업적은 당시 언론 매체의 기사, 문인들의 기행문, 학자의 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대 제주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인 비구니 봉려관의 업적은 2002년을 기점으로 네 사람에 의해 고의적이고 조직적으로 왜곡되어 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대담함은 사고의 범위를 넘어섰으며, 드디어 2017년 12월에는 근거문헌제시 없이 느닷없이 봉려관스님의 입적지까지 바꿔버리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봉려관스님이 한라산 관음사 최초 창건주이자 개산조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조천 포구에 있었던 고려시대 사찰 관음사(훗날 봉려관스님에 의해 고관사로 개칭)의 역사를 마치 한라산 관음사의 역사인양 가져다 기술하고는, 봉려관 스님을 한라산 관음사의 중창주로 간주하려는 눈속임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봉려관스님이 한라산 관음사의 최초 창건주이고, 개산조이고, 초대 주지라는 것은 근거 문헌이 있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1914년 가솔을 거느리고 군인 신분으로 제주에 들어와 훗날 봉려관의 권유로 승려가 된 비구를 초대주지라 한다. 그리고 1921년 처음 제주를 방문해서, 법회 또는 행사 참석을 위해 제주를 오갔고, 훗날 친일 승려에 이름을 올린 분을 관음사 최초 창건 증명법사라 하는 등, 웃지 못 할 일들이 지금도 제주도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한라산 관음사의 최초 창건 증명법사는 대흥사 조실 청봉화상이다. 해당사찰의 최초 창건주가 비구이든 비구니이든 성별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본다.

결국 2017년 두옥문도회, 사단법인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이 주축이 되어 봉려관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되찾아 드리기 위한 검증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근대 제주불교 역사의 정사(正史)를 찾아가는 학술 세미나는 매년 개최되고 있다. 역사 왜곡은 범죄다. 봉려관스님의 직계 후손은 제주를 비롯해 부산, 대전, 담양, 경기도 등에서 사회복지 활동과 전법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 자료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봉려관(蓬廬觀)스님 본항목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1938) 蓬廬觀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봉려관스님(蓬廬觀,_1865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봉려관스님(蓬廬觀) 두옥문중(斗玉) ~의 일원이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유장스님(宥藏) ~의 수계제자이다
봉려관스님(蓬廬觀) 해남 대흥사(대둔사) ~에서 출가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청봉스님(淸峯)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봉려관스님(蓬廬觀) 항일독립운동 ~에 참여하다 성명 : 안려관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 관음사 ~을(를) 창건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 성내포교당 ~을(를) 창건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서귀포 법정사 ~을(를) 창건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 불탑사 ~을(를) 중창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 고관사 ~을(를) 중창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서귀포 법화사 ~을(를) 중창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 월성사 ~을(를) 창건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 백련사 ~을(를) 창건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 소림사 ~을(를) 창건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여자청년회 창립총회 ~을(를) 지원하다 성내포교당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불교부인회 ~을(를) 건립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불교소녀단 ~을(를) 건립하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제주중학강습원 ~의 주요 설립자이다
봉려관스님(蓬廬觀) 일본오사카 대각포교당 ~을(를) 창건하다

지도

  • 제주 관음사 : 제주도 제주시 아라일동 387 (제주시 산록북로 660)



다른 비구니 스님

지식관계망




주석

  1. 『한국비구니수행담록』과 『한국비구니명감』은 성해스님(性海)으로, 『한국의 비구니문중』은 성혜스님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