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정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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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기동 봉정암은 대웅전과 요사채(선방 겸용), 산신각으로 구성돼 크진 않지만, 아담하고 조용하다. 멀리 북한산의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 등이 조망된다. </br> | + | 서울 구기동 봉정암은 대웅전과 요사채(선방 겸용), 산신각으로 구성돼 크진 않지만, 아담하고 조용하다. 멀리 북한산의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 등이 조망된다. </br> |
뜰 중앙에 서 있는 나무가 유명한 보리수다. 지금 한창 염주알처럼 생긴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나무에는 '염주나무'라는 팻말이 달려 있다. 인도에서 어렵게 구해왔다고 하는데, 보리수 하나만 구경해도 다리품을 판 가치는 충분하다. </br> | 뜰 중앙에 서 있는 나무가 유명한 보리수다. 지금 한창 염주알처럼 생긴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나무에는 '염주나무'라는 팻말이 달려 있다. 인도에서 어렵게 구해왔다고 하는데, 보리수 하나만 구경해도 다리품을 판 가치는 충분하다. </br> | ||
1970년 음력 2월 창건주 성관(性觀)스님은 칼바람을 맞으며 절터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헤매다 종로구 구기동, 지금의 세검정에 오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첩첩산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너무나 험하고 심난하여 수덕사 혜암 노스님과 천안 광덕사 지산스님 두 분을 모시고 터를 보여 드렸더니 '너무 좋은 절터다.’ 하시며 “공부하면 도인이 날 것이고, 기도하면 성취하며, 부자로 살 생각 말고 정진하여 훌륭한 불도량으로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봉정암' 이라는 절 이름까지 미리 지어주셨다. </br> | 1970년 음력 2월 창건주 성관(性觀)스님은 칼바람을 맞으며 절터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헤매다 종로구 구기동, 지금의 세검정에 오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첩첩산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너무나 험하고 심난하여 수덕사 혜암 노스님과 천안 광덕사 지산스님 두 분을 모시고 터를 보여 드렸더니 '너무 좋은 절터다.’ 하시며 “공부하면 도인이 날 것이고, 기도하면 성취하며, 부자로 살 생각 말고 정진하여 훌륭한 불도량으로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봉정암' 이라는 절 이름까지 미리 지어주셨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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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성관스님(性觀, 1940生, 비구니)]], [https://v.daum.net/v/20070802105617090 세계일보(2007. 8. 2.)] 도심속 산사 ①서울 구기동 봉정암 | ※ 출처 : [[성관스님(性觀, 1940生, 비구니)]], [https://v.daum.net/v/20070802105617090 세계일보(2007. 8. 2.)] 도심속 산사 ①서울 구기동 봉정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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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지도 ''' : [https://map.kakao.com/?q=종로구_구기동_167-1 구기동 봉정암] | + | * ''' 지도 ''' : [https://map.kakao.com/?q=종로구_구기동_167-1 구기동 봉정암]</br></br> |
+ | [[분류 : 사찰]] |
2024년 5월 8일 (수) 21:28 기준 최신판
- 사찰명 : 구기동(서울) 봉정암(鳳頂庵)
- 주소 : 서울 종로구 구기동 167-1
서울 구기동 봉정암은 대웅전과 요사채(선방 겸용), 산신각으로 구성돼 크진 않지만, 아담하고 조용하다. 멀리 북한산의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 등이 조망된다.
뜰 중앙에 서 있는 나무가 유명한 보리수다. 지금 한창 염주알처럼 생긴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나무에는 '염주나무'라는 팻말이 달려 있다. 인도에서 어렵게 구해왔다고 하는데, 보리수 하나만 구경해도 다리품을 판 가치는 충분하다.
1970년 음력 2월 창건주 성관(性觀)스님은 칼바람을 맞으며 절터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헤매다 종로구 구기동, 지금의 세검정에 오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첩첩산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너무나 험하고 심난하여 수덕사 혜암 노스님과 천안 광덕사 지산스님 두 분을 모시고 터를 보여 드렸더니 '너무 좋은 절터다.’ 하시며 “공부하면 도인이 날 것이고, 기도하면 성취하며, 부자로 살 생각 말고 정진하여 훌륭한 불도량으로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봉정암' 이라는 절 이름까지 미리 지어주셨다.
은사 혜능(慧能)스님의 논 다섯 마지기를 파니 그때 돈으로 60만원을 받았는데 절터의 땅값도 60만원이었다. 그때부터 신도의 반연도 없는 곳에 땅을 사서 어렵게 불사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출처 : 성관스님(性觀, 1940生, 비구니), 세계일보(2007. 8. 2.) 도심속 산사 ①서울 구기동 봉정암
- 지도 : 구기동 봉정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