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현문(慧庵玄門)
- 법호·법명 : 혜암현문(惠菴玄門)
- 생애·업적
혜암현문(惠菴玄門, 1886∼1985)스님은 1886년 1월5일(음력은 1885년 12월 21일) 황해도 배천군 해월면 해암리에서 태어났다. 부친 최사홍(崔四弘) 선생과 모친 전주 이 씨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세속의 이름은 최순천(崔順天). 본관은 강릉.
11세에 부친상을 당한 후 이듬해 수락산 흥국사에서 삭발했다. 은사는 보암(保菴)스님. 계사는 금운(錦雲)스님. 이때 받은 법명이 현문(玄門)이다. 17세에 모친마저 별세한 후 스님은 운수행각에 나섰다.
스님은 1908년 23세의 나이에 양산 통도사 내원선원에서 처음 안거를 한 이후 참선수행에 전념했다. 당시 내원선원 조실 성월(性月)스님이 “선방의 밥은 썩은 밥이 아니다”고 한말에 더욱 분발하여 정진했다. 1911년 해담(海曇)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은 후 만공(滿空).혜월(慧月).용성(龍城)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공부에 몰두했다. 이무렵 오대산 상원사 주지와 태백 정암사 주지 소임을 잠깐 보았다.
혜암스님은 1929년 수덕사 조실 만공스님에게 전법게를 받았다. 이때 만공스님이 혜암이란 법호를 내렸다. 이로써 스님은 만공스님의 법맥을 이은 법제자가 되어‘경허.만공의 선풍’을 세상에 보였다.
1956년 수덕사 조실로 추대된 혜암스님은 20여 년간 후학을 지도했다. 1984년 덕숭총림 개설시 초대 방장으로 추대되어 사부대중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 혜암스님은 1985년 5월 19일(음력은 3월30일) 수덕사 염화실에서 열반에 들었다. 원적에 들기 전에 “모든 존재는 변화하여 고정된 실체가 없으니, 허망한 것도 아니고 허망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는 내용의 마지막 가르침을 남겼다. 스님의 세수 101세, 법납 89세였다.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천명을 다한 스님의 별칭은‘장수도인(長壽道人)’이었다.
혜암스님은 1976년 그동안의 법어를 모은 <선관법요(禪關法要)>를 발간했으며, 1980년에는 <선문촬요(禪門撮要)>를 직접 편역(編譯)해 후학들에게 지남(指南)을 보여주었다.
※ 출처 : 불교신문(2009.04.22) 54. 혜암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