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漢巖)스님
- 법호·법명 : 한암중원(漢巖重遠, 1876~1951)
- 생애·업적
서릿발 같은 수행과 인자한 성품으로 부처님 향기를 전한 한암스님은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방기순 선생, 모친은 선산 길씨였다. 속명은 중원(重遠). 서당에서 <사략>을 배우다 “천황씨(天皇氏)와 반고씨(盤古氏) 이전에는 누가 있었는가”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22세 되던 해 금강산 장안사에서 행름(行凜)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신계사 보운암에서 열린 강회(講會) 도중 <보조국사 수심결>을 읽고 눈이 열렸다.
이 무렵 장안사 해은암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일체무상을 느낀 뒤 도반 함해(含海)스님과 남쪽으로 향했다. 합천 해인사에서 경허스님에게 “원선화(遠禪和)의 공부가 개심(開心)의 경지에 올랐다”는 인가를 받고 법제자가 됐다.
1904년 봄. 통도사 선원 조실로 추대된 후 6년간 수좌들을 지도하고 석담(石潭)스님의 지도를 받았다. 묘향산 내원암, 금선대, 평북 맹산군 우두암, 금강산 장안사에서 수행하고 건봉사 조실로 추대됐다. 47세 되던 1923년 서울 봉은사 조실이 됐다. 일제의 조선불교 말살정책과 식민지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오대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는 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긴 스님은 27년간 산문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1934년 12월 조선불교선리참구원 부이사장으로, 1935년 3월 조선불교 선종의 종정으로 선출됐다. 1941년 조선불교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됐다. 해방 후 종정에서 물러났지만 1948년 석전스님의 입적으로 교정(敎正)에 추대됐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지만 상원사를 떠나지 않았다. 위법망구의 정신으로 국군의 상원사 소각을 막았다.
1951년 3월21일(음력 2월14일) 오전에 좌탈입망했다. 법납 54세. 세수 75세. 희찬스님, 희섭스님, 범룡스님, 평등성 보살 등이 스님의 다비를 치렀다. 같은 해 49재일을 맞아 부산 묘각사에서 봉도법회를 봉행했다. 가르침을 받은 제자로 효봉.탄옹.보문.고암.탄허.난암.서옹.월하.자운.동성.영암.석주.고송.지월.보산.범룡.희찬.희섭.비룡.도원.보경.보광스님(無順) 등이 있다.
※ 출처 : 불교신문(2008.02.29 18:04) ⑧ 한암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