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육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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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명 : 월정사(月精寺) 육수암(六手庵)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8

월정사 육수암(六手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의 산내암자로 월정사의 월정교를 건너 오른쪽 가파른 길을 약 100여 미터 올라가면 얼굴을 내민다.
육수암은 본래 육수관음암이었다. 육수암 터는 월정사에서 육수골로 불리는 곳으로 원래 지금 절이 들어서 있는 위치에서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60년대에 여섯 비구니 스님들이 토굴을 짓고 공부하다가 1979년 탄허 스님이 새로 잡아 준 지금의 절터에 뇌묵(雷默) 스님이 법당을 세우고 육수암이라 이름지었다. 육수암 현판 글씨도 탄허 스님이 쓴 것이다. 1982년부터 칠보선원(七寶禪院)도 열었으며 1990년 요사채 건립불사를 하여 건평 120평의 2층 요사채를 세웠다. 1997년 단청과 요사채 불사를 다시 시작하여 1998년에 마쳤다. 육수암이라 이름한 것은 도량에 육수관음상(六手觀音像)을 주불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육수관음상은 자장율사가 월정사를 창건할 때 모신 불상이라고 한다. 월정사는 한국전쟁 때 크나큰 전화를 입었다. 당시 한암 큰스님이 지킨 상원사를 제외하고 모든 당우와 불상이 소실되었 는데, 오직 이 육수관음상만 한 스님이 업고 피난을 가서 무사했다. 전쟁이 끝나고 월정사에 모셨다가 육수암이 재건되면서 모시게 되었다.
뇌묵 스님이 육수암을 다시 짓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내력이 있다. 당시 월정사 주지 스님과 시자와 스님 이렇게 셋이서 육수골로 올라갔다. 마침 그곳은 여러 사람이 공부를 하고 나와 토방 집만 횡하니 비어 있었는데, 공간이 너무나도 협소했다. 이에 스님은 그 터에다 53평 규모의 선방을 짓기로 주지스님과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큰스님이 서울에서 내려오시더니 ‘거기에다 다리를 놓아야 건너다닐 게 아니냐.’고 하셨다. 그러면서 “거기에다가 선방만 덜렁 지어놓으면 그곳에 거주하는 비구니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되고, 겨울이면 또 조계골에서 내려오는 모진 바람을 어떻게 견디어 내려느냐?” 하시면서 “그러지 말고 조용히 거기서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님은 이에 굴하지 않고 불사를 시작했고 육수암을 완공했다.
본래 그 안에 옛날부터 터가 있었고 그곳에 계신 부처님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스님이 선방을 크게 지으려고 54평으로 설계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오래 전부터 스님은 그곳에 절을 지으려고 나무를 준비해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호우가 쏟아져 다음날 아침 나무가 모두 다 떠내려가고 말았다. 깜짝 놀란 스님들이 나무를 찾아서 하류로 내려가 보니 한 곳에 다 모여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단 한 개도 떠내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 824.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40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