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기장 묘관음사
- 사찰명 : 월내(기장) 묘관음사(妙觀音寺)
- 주소 : 부산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 15
고려 말 태고(太古) 보우 선사(普愚禪師)가 중국의 석옥 청공 선사(石屋淸控禪師)로부터 임제종의 정통 법맥을 이어받은 후 열반(涅槃)의 미묘한 이치와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석가모니의 깨달음[正法眼藏]’을 스승과 제자가 계속 이어 갔다. 이러한 깨달음은 청허당(靑虛堂) 휴정(休靜)과 환성(喚醒) 지안(志安)을 거쳐 경허(鏡虛)~혜월~운봉(雲峰)~향곡(香谷)~진제(眞際)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묘관음사(妙觀音寺)는 바로 이 법맥을 지키고 이어 가는 사찰이다. 또한 묘관음사는 청담(靑潭), 성철(性徹), 서옹(西翁), 월산(月山) 등 당대의 선지식 승려들도 법을 위하여 몸을 잊고 처절히 수행 정진하던[爲法忘軀] 장소로서 한국 현대 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상 매우 불행한 시기였으나 불교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조선 시대 이래 억불(抑佛)의 한을 일시에 만회하려는 듯 승려 경허를 비롯해 수많은 선지식 승려들이 봇물 터지듯 출현하여 어려운 시기 고통에 신음하는 중생들을 제도하던 불교의 중흥기라 할 수 있다. 묘관음사는 경허와 혜월의 법맥(法脈)을 이은 운봉이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세계를 전쟁의 참화에 휩싸이게 하던 1941년에 창건하였다. 운봉이 입적(入寂)한 후에 법을 이어받은 제자인 향곡이 중창하였고, 조사선(祖師禪)의 높고 우뚝한 선풍을 선양하면서 30여 년간 수많은 수행승들이 묘관음사에 머물렀다. 1967년 승려 진제가 법을 이어받았다.
묘관음사 경내의 전각은 대웅전, 조사전, 삼성각, 종각 등이 있으며, 당우(堂宇)로는 길상선원(吉祥禪院), 심원당, 산호당, 법중대, 금모대, 행각료와 각종 편의시설이 있다. 또 묘관음사를 창건하고 중창한 승려 운봉과 향곡의 승탑이 모셔져 있다. 승려 향곡과 성철은 불교 정화 운동을 하던 봉암사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승려 향곡, 성철과 절친한 사이였던 청담의 딸인 묘엄이 쓴 책 『회색 고무신』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인연으로 성철은 묘관음사 길상선원에 머물면서 생식을 하고 장좌불와(長坐不臥)로 동안거(冬安居)를 하였다고 한다.
경내에 있는 ‘탁마정(琢磨井)’이라는 샘은 승려 향곡, 성철과 인연이 깊은 우물로 임제종의 종찰답게 수행과 관련된 일화를 가지고 있다. 두 스님이 수행을 하다가 더욱더 깊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한 스님이 다른 스님의 목덜미를 잡고 우물 속에 머리를 넣고 죽음의 직전까지 가는 극한의 상황을 연출하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두 스님의 수행이 얼마나 치열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이다.
※ 출처 : 부산역사문대전 묘관음사
- 지도 : 묘관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