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장조(峰霞長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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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명 : 봉하장조(峰霞長照)

1887년 4월6일 전북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 565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박노일(朴魯一) 선생, 모친은 김씨(金氏)였다. 본관은 순천. 속명은 박장조(朴長照). 1902년(15세) 장성 백양사 운문암에서 호명(浩溟)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같은 해 7월15일 호운(皓雲)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고, 여섯 해가 흐른 1908년(21세) 4월15일 합천 해인사에서 호은(虎隱)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다. 이후 대선(大禪,1918년).중덕(中德,1923년).대덕(大德,1929년).종사(宗師,1932년).대종사(大宗師,1939년) 법계를 수지했다. 1954년까지 52안거를 성만했다.
1897년 고창군 상하면 강숙에서 이낙현 선생에게 통사를, 박치권 선생에게 사서삼경을 공부했다. 출가후 백양사.해인사.범어사.구암사 등에서 내전을 익히고, 광성의숙과 불교중앙학림에서 외전을 배웠다. 순창 구암사에서는 석전스님에게 염송과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지도 받았다.
1921년 2월부터 1930년 초까지 백양사 강사로 후학을 지도했으며 고창 상원사 주지, 장성 백양사 법무(法務).감무(監務) 등의 소임을 보았다. 해방 후인 1945년 12월 백양사 주지로 취임한 후 고창 선운사 주지, 정광학원 대표이사, 불교전남종무원장, 영광 불갑사 주지 등을 지냈다. 백양사 주지 소임은 28년이나 보았다.
노년에 몸이 쇠약해진 스님은 1974년 3월 나주 심향사로 주석처를 옮겼다. 1978년 8월28일(음력) 오전. 추석이 지난 지 보름 가까이 지났다. 노스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들과 신도들이 찾아왔다. 스님은 방문을 활짝 열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쇠진해질 대로 쇠진해져 상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작은 미소’를 비추었다. 그날 오전 11시 스님은 조용히 원적에 들었다. 아무 말씀도 남기지 않았다. 세수 92세. 법납 77세였다.
영결식과 다비는 5일장으로 백양사에서 거행됐으며, “사리, 그거 뭐하는 것이 다냐”라는 유훈에 따라 사리는 수습하지 않았다. 현재 스님의 비와 부도는 백양사 부도전에 모셔져 있다. 상좌로 보륜성오(普輪性悟).동환금명(東煥錦明).범일성관(梵日性寬)스님과 최웅호(崔雄鎬) 예비역 군승을 두었다.

[출처 및 참고자료] 불교신문 ⑪ 봉하장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