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솔사 미륵암
- 사찰명 : 다솔사(多率寺) 보안암(普安庵, 미륵암(彌勒庵))
- 주소 : 경남 사천시곤양면 무고리 산43
보안암은 원래 서봉사(栖鳳寺)에 딸린 비구니 수행처로 있다가 서봉사가 폐사되고 다솔사(多率寺)에 귀속되었다고 한다. 일명 미륵암(彌勒庵)으로 불리기도 하며 그 창건은 명확하지 않고 현재의 보안암은 1947년 5월 비구니 백연화(白蓮花)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보안암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면 가정(豫亭) 이곡(李穀)이 1336년(충숙왕 복위 5)에 집필한 『서봉사사적(栖鳳寺事蹟) 』에 "신라 신문왕 4년(684) 신문왕의 두 왕자가 의명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2년간 머물면서 서봉사를 중창하고자 김해군 일(鎰)과 그 부인 홍씨와 합작해 100만 냥을 내어 서봉사를 짓고 그 남쪽 고개(천령天嶺) 위에 석굴(보안암 석굴)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석굴은 용화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석감을 쌓고 그 안에 미륵 석상을 경건히 조각해 봉안하고 미륵 석상을 산도깨비와 귀신 모양을 한 기단이 지키고 있다."라고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1657(효종 8) 년에 최응천(崔應天)이 쓴 『서봉사기(栖鳳寺記)』에도 미륵암, 봉암암(鳳岩庵), 직조암(直照庵) 등 동•서•남의 삼암(三庵)은 서봉사에 속한 암자로서 미륵암에는 '장육석불(丈六石佛)'이 봉안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문화재청 자료나 안내판에 고려시대로 적시한 보안암 석굴의 창건 연대를 신라시대로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사천 다솔사 보안암 석굴(普安庵 石窟)은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석실 규모는 동서 2.9m, 남북 3.5m, 높이 2.45m이며, 고려시대 말에서부터 조선시대 초기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외형은 판상(板狀)의 사암질 활석을 단층식으로 쌓아올린 분묘형태이며, 평면은 방형이다.
석굴의 입구에는 ‘彌勒殿(미륵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목조전실(木造前室)을 지나서 2m 정도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석실이 있다. 석실중앙에 자연석을 대좌로 하여 결가부좌한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 안치되어 있다.
본존의 뒤쪽 좌우에는 각 8구씩 16나한좌상(羅漢坐像)이 배치되어 있다. 이 석굴은 인공으로 조성한 것으로 규모나 평면형태, 봉안한 불상 등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경주 석굴암과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또한, 이 석굴은 반대편 쪽에 있는 하동군 북천면 이맹산의 석굴사원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출처 :
산좋아 산간다 사찰여행, 다솔사 보안암 석굴(多率寺 普安庵 石窟)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솔사 보안암 석굴
- 지도 : 다솔사 보안암(미륵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