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응지수(관응혜응)(觀應智首(觀應慧應))
- 법호·법명 : 관응지수(觀應智首: 1910~2004), 관응혜응(觀應慧應 : 1910~2004)
- 생애·업적
스님은 1910년 9월 17일 경북 상주에서 출생 했다. 속명은 전재영(全在英)이며 법명이 혜응이고 법호가 관응이다.
1929년 5월 12일, 광주 남장사에서 탄옹정혜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34년 유점사에서 대교를 마치고 1936년 3월 15일 선학원에서 일봉(一鳳) 스님을 계사로 모시고 비구계를 수지했다.
1938년 동국대 전신인 불교전문학교를 졸업 한 후 일본으로 도일, 1942년 일본 용곡(龍谷) 대학을 졸업했다. 1959년 조계사 주지, 1961년 동국학원 이사를 엮임했으며 1965년에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에서 6년 결사를 성만했다.
조계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비구, 대처의 분규에 염증을 느껴 조용히 머물 곳을 물색하던 중 찾은 곳이 천축사 무문관이었다. 스님은 6년 동안 완전히 외부와 차단되어 부처님의 6년간 설산 고행을 본받으면서 면벽참선했다.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 박차고 나오는 것은 곧 자신의 거짓된 껍질을 완전히 부수어 내외가 명철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스님은 말했다.
또한 스님은 재가자들을 향한 법문에서 화두만이 견성의 길이 아니라고 했다. 어느 집이든 문이 있으면 들어가는 것이지 어느 쪽 문만 사용한다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어느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현대불교신문》에서 말한 적이 있다.
스님은 강사로서도 이름이 높아 김룡사 강원 강사 이래 10여 년간 강사 생활을 했다. 특히 유식학(唯識學)에 조예가 깊다.
스님은 1980년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로 납자들을 제접했다. 1981년부터 82년까지 직지사 천불선원 조실로 지냈다.
직지사 중암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스님은 2004년 2월28일(음력2월9일) 오후7시 이곳에서 당신의 한 생을 마감했다. 세수 95세. 법랍 75년.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 619
※ 참고 : 관응스님은 법명이 선원총람에는 혜응(慧應)스님으로, 불교신문은 지수(智首)스님으로 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