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명량대첩
명량대첩 | |
작가 | 김기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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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연도 | 1975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군사 |
분류 | 유화 |
소장처 | 독립기념관 |
개요
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불과 12척으로 명량에서 왜군 130여척을 맞아 싸워 그중 31척을 격파하는 장면
설명
작품 소재
명량대첩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 9월 16일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명량(울돌목: 전라남도 진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이다. 1597년 7월 원균이 거느린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왜수군에게 대패하여, 보유한 전선(戰船)은 배설이 탈출시킨 12척에 불과하였다. 여기에 일반 백성들이 나중에 가져온 한 척을 더한 13척의 전선으로 130여척의 왜수군을 맞이하여 좁은 수로의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적을 격파하여, 왜군의 서해 진출을 차단함으로써 해상권을 장악하고 정유재란의 대세를 조선군에게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게 하였다.[1]
작품 배경
황색바탕에 두마리의 용이 어울려 있고 불꽃 모양의 적색 기술이 달려 있는 교룡기(交龍旗)가 휘날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림 아래쪽에 그려진 전선은 이순신이 타고 있는 지휘선으로 왜선을 향해 화포를 직사로 발포하고 있다. 또한 우현 귀퉁이에는 휘하 장수들을 부를 때 사용되는 청색 바탕에 흰 무늬의 북두칠성이 그려진 초요기(招搖旗)가 나부끼고 있어, 조선 수군이 왜 수군의 위세에 눌러 크게 동요하자, 이순신이 초요기를 높이 들게 하여 중군장 미조첨사 김응성과 거제현령 안위를 불러 꾸짖고 싸움을 독려하는 장면임을 알 수 있다. 명량해협의 거센 파도를 흰 색상 검은 색등 과감한 원색을 이용하여 표현하였고 전체적인 색의 사용과 묘사가 일반 기록화와는 구별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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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김기창 | 김기창-명량대첩 | A은 B을 그렸다 | 1975년 |
김기창-명량대첩 | 명량대첩 | A은 B을 소재로 삼았다 | 1597년 09월 16일 |
김기창-명량대첩 | 이순신 | A은 B을 소재로 삼았다 | |
김기창-명량대첩 | 울돌목 | A은 B을 배경으로 한다 | |
김기창-명량대첩 | 구루지마 미치후사(來島通總) | A은 B를 소재로 삼았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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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 김기창이 김기창-명량대첩를 제작하였다. |
1998년- | 독립기념관이 김기창-명량대첩를 대여하였다 |
1597년 09월 16일 | [[이순신]이 명량대첩에 참가하였다 |
그래프
참고문헌
- 대한민국국회의원동우회,『민족기록화, 전승편』, 한국도서출판공사,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