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섭-연안성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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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섭-연안성싸움
작가 박항섭
제작연도 1975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군사
분류 유화
소장처 전쟁기념관



개요

이정암이 지휘하는 의병과 주민들이 협동하여 연안성을 포위 공격하는 왜군을 격퇴하는 장면

설명

작품 소재

임진왜란 당시 이조참의로 재직중이던 이정암은 연안성에 들어가 의병 500명을 조직하고 왕세자로부터 초토사로 임명된 후 '적진에 임하여 패하여 물러가는 자는 참수한다'등의 8개항을 제시하고 의병을 조련하였다. 1592년 8월 28일부터 9월 2일에 걸쳐 왜장 구로다 나가사마(黑田長政)가 이끄는 왜병 5,000~6,000여명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연안성을 지켜냈다. 초토사 이정암은 대첩의 상보(詳報)를 올리지 않고 단지 "모일(某日)에 성을 포위했다가 모일에 풀고 갔다.(某日圍城某日解去)"라는 여덟 글자만 행재소에 전하였는데, 이 사실이 곧 알려져 초토사 이하 유공장병은 상직을 받고, 이정암은 본도 순찰사에 임명되었다.[1]

작품 구도

이정암은 나무를 쌓고 섶을 성문에 쌓아 올려 그 위에 앉아서 명령하기를, “적이 만약 성에 오르거든 즉시 나의 앉아 있는 곳을 불태우라.”하였다.[2]이와 같이 그림 왼편에 섶위에 서서 의병과 군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이정암의 모습과 성벽을 넘어온 적병들과 맨손과 돌, 농기구등으로 일대 혈전을 벌이고 있는 흰 옷을 입은 의병들이 그려져 있다. 의병들이 마른 나무와 섶에 불을 놓아 왜병을 공격하니 적이 진을 치고 있는 성 밖은 시뻘건 불길로 가득차 있다. 분충토벌(奮忠討賊충성을 다하여 적을 쳐부수자)이라 씌여진 깃발이 화면 중앙에 나부끼고 있다.

시각적 안내

오류: 그림이 잘못되었거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박항섭 박항섭-연안성싸움 A는 B를 그렸다. 1975년
이정암 연안성싸움 A는 B에 참가하였다. 1592년 08월
박항섭-연안성싸움 연안성싸움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박항섭-연안성싸움 연안성 A는 B을 배경으로 한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52년 08월 28일-1592년 09월 02일 이정암연안성싸움에 참가하였다.
1975년 박항섭가 박항섭-연안성싸움를 제작하였다.
1991년 12월 31일-1992년 12월 29일 육군가 박항섭-연안성싸움를 대여하였다.

그래프

참고문헌

  • 대한민국국회의원동우회, 『민족기록화 전승편』, 한국도서출판공사, 1981년.

주석

  1. "연안대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6.
  2. "『연려실기술』, 「제15권 선조조 고사본말」, 연안(延安)의 승전(勝戰)",online, 한국고전번역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