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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5일 (목) 12:02 기준 최신판
중치막 | |
한자표기 | 中致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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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중치막[中赤莫], 듕치막 |
복식구분 | 의복 |
착용신분 | 왕, 왕세자, 왕세손, 문무백관 |
착용성별 | 남성 |
관련복식 | 갓, 세조대 |
목차
정의
중치막은 조선초기에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왕 이하 사대부, 일반 남성들이 받침옷이나 겉옷으로 착용하였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남성옷이다.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착용상황
의례용이나 외출시 받침옷으로 착용하고 평상복[편복]으로 착용하기도 하였다. 외출시에는 갓을 썼고 집안에서는 다양한 편복용 관모를 썼다.
형태
깃은 곧고 양옆이 트여있는 세자락의 옷으로, 소매가 넓고, 곧은 깃이 달려있다. 시대에 따른 중치막 형태의 대표적인 변화는 무의 유 ․ 무와 밑자락 너비의 변화이다. 사다리꼴이나 삼각형으로 좌우 길에 연결되어 있던 무가 17세기 말이 되면 밑자락이 좁아지면서 무가 필요 없게 됨에 따라 차츰 좁아지고 작아지다가 사라진다.
기타
조선 말기인 1884년(고종 21) 의복제도 개혁을 통해 넓은 소매 의복을 폐지될 때 함께 폐지되었다.[1] 중치막의 기록은 16세기 중후기의 기록에서 보이는데 이문건의 『묵재일기(黙齋日記)』와 오희문의 『쇄미록(瑣尾錄)』에서 확인되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나타난 중치막 기록은 영조(1776년)와 정조(1800년)의 습례(襲禮), 소렴의대(小斂衣襨), 대렴의대(大斂衣襨), 재궁의대(梓宮衣襨) 에 나타난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
중치막 | 왕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중치막 | 왕세자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중치막 | 왕세손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중치막 | 갓 | A는 B에 착용한다 |
중치막 | 의궤 |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