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문지
언문지 | |
한자명칭 | 諺文志 |
---|---|
로마자명칭 | Eonmunji |
영문명칭 | A study book about Hunminjeongeum |
작자 | 유희 |
간행시기 | 1824년 |
기탁처 | 진주유씨 서파후손가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c123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3.4×21.8㎝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책 |
표기문자 | 한자, 한글 |
목차
정의
유희(柳僖, 1773~1837)가 지은 훈민정음에 관한 연구서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유희는 훈민정음을 ‘언문(諺文)’이라 표기하고, 훈민정음이 원나라 파스파(Phags-pa, 八思巴) 문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였다. 이 책은 서(序), 초성례(初聲例), 중성례(中聲例), 종성례(終聲例), 전자례(全字例)로 구성되어 있다. 초성례에서는 초성으로 쓰이는 25자모를 제시하고 도표로 작성하였다. 중성례에서는 중성(모음)의 15가지 형태를 설정하며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종성례에서는 7개의 종성을 설정하였다. 전자례에서는 초성 25자, 중성 15자, 종성 7자를 설정한 근거와 학설을 요약·집성하였다. 종래 한자음 위주의 연구 방법을 지양하고, 우리말 위주로 문제에 접근한 첫 연구서이다. [1]
『언문지』의 구성
『언문지』는 서문, 초성례, 중성례, 종성례, 전자례의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부분마다 첫 번째는 참고문헌의 내용을 나열하고, 그 뒤에 자신이 “교정(校定)”한 규범들을 “유씨교정ㅇㅇ(柳氏校定某某)”라는 형식으로 곁들였다. 또한 이 교정 부분 아래에 교정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마지막 단위의 전자례(全字例)에서는 초․중․종성을 조합하여 생성되는 글자(음절)의 숫자를 계산해 놓았다. 이는 복합적인 한자음을 바로잡고, 한자를 바르게 표기하기 위한 한글의 음운체계를 정리하려는 시도이다. [2]
유희의 『언문지』 저술 배경
유희의 스승인 정동유(鄭東愈)는 조선 양명학 학자 정제두(鄭齊斗)의 제자 이광려(李匡呂)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들은 강화학파(江華學派)라 불리며 조선 후기의 운학 연구를 주도하였다. 강화학파는 양명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양명학은 당대 민족과 민족이 처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었고, 역사와 국토 언어 등의 연구를 민족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조선 후기의 국학 연구가 상당히 진척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성리학자들은 양명학을 사문난적(斯文亂賊)[3]으로 취급했다. 특히 조선의 정치사를 통해 사문난적은 정적을 제거하는 명분이었다. 따라서 당시 양명학자들은 성리학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국어학 연구에 치중하여 국어학 연구에 업적을 남긴 이가 많다. 동시에 유희가 언문을 연구하는 서적을 저작한 것은 난립한 언문의 표기를 바로잡는것은 양명학의 격물(格物)[4])의 이치와도 상통하는 것이다.
"스승이신 정동유(鄭東愈)선생은 격물(格物)에 빼어난 분으로 일찍이 내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언문이 오묘하다는 것을 아는가 무릇 글자의 소리로써 글자의 소리를 전하니 이것이 변하면 저것도 따라서 변하게 되어 옛날과 오늘날의 음을 협운(叶韻)하여 자주 어긋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언문으로 주(註)를 하게 되면 그것 글자의 음을 오랫동안 전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진실함 즉 본래의 한자음을 잃는다고 걱정하겠는가 하물며 문장은 반드시 간결하고 오묘함을 숭상하는데 간결하고 오묘함으로써 정감을 통하면 잘못 보는 것을 금할 수 없다 언문으로 주고 받으면 만에 하나도 의심되는 바가 없으니 그대는 부녀자가 배운다는 이유로 그것(諺文)을 홀시하지 말라”……이에 나는 정동유 선생과 더불어 검토하고 연구하였다 이미 수개월이 되었으니 돌아와 책 한 권을 짓고 《『언문지』諺文志)》라 이름하였다.
25px | 鄭丈東愈工格物 嘗語不佞 子知諺文妙呼 夫以字音 此變彼隨變 古叶今韻 屢舛宜也若註以諺文 傳之久遠 寧失眞爲慮 況文章必尙簡奧 以簡奧通情 莫禁誤看 諺文往復 萬無一疑 子無以婦女學忽之……乃不佞與講辨 旣數月 歸著一書 名諺文志) | 25px |
출처: "언문지" 서문 |
지식 관계망
-->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유희 | 언문지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824년 |
훈민정음 | 언문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정동유 | 유희 | A는 B의 스승이다 | |
유희 | 강화학파 | A는 B에 속해있다 | |
유희 | 최세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화동정음통석운고 | 언문지 | A는 B의 모델이다 | |
언문지 | 문통 | A는 B에 포함된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824년 | 유희가 언문지를 저술하였다. |
1938년 | 조선어학회에서 활자본으로 정식 간행되었다. |
1974년 | 한양대학교 부설 국학연구원(國學硏究院)에서 영인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2258 | 127.054364 | 언문지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 한글팀 언문지 01 서문.jpg
언문지 서문
- 한글팀 언문지 02 본문.jpg
언문지 본문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42쪽. 해설문 속의 각종 링크 정보는 기록유산스토리사업팀에서 추가.
- ↑ 신수영, 「《언문지(諺文志)》의 체제와 유희(柳僖)의 언어관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 유교에 반대하는 선비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했던 말이나, 조선 중기 이후 당쟁이 격렬해지자 배타적으로 사용되었다
- ↑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라는 뜻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정경일. 『한국운서의 이해』, 아카넷, 2002
- 최현배, 『고친 한글갈』, 정음사, 1961
- 강신항, 『국어학사』, 보성문화사, 1979
- 유창돈, 『언문지주해』, 신구문화사, 1958
- 강윤호, 「언문지」, 『한국의 명저』, 현암사, 1969
- 논문
- 김민수, 「유희의 전기」, 『도남조윤제박사회갑기념논문집』, 신아사, 1964
유용한 자료
- '언문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