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식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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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식언해
한자명칭 火砲式諺解
로마자명칭 Hwaposik eonhae
영문명칭 A Korean translation of Hwaposik which is an instruction manual of guns and gunpowder manufacturing.
작자 이서
작성시기 1635년
간행시기 조선후기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3-311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3.3×21.8㎝
판본 목판본
수량 1冊
표기문자 한글, 한자



정의

이서인조 대에 각종 총포의 사용법과 화약 제조법을 기술하여 간행한 『화포식(火砲式)』의 한글 언해본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이서(李曙, 1580-1637)인조(仁祖) 대에 각종 총포의 사용법과 화약 제조법을 기술하여 간행한 『화포식(火砲式)』의 한글 언해본이다. 책의 내용은 먼저 제반 총통(銃筒)의 일반적인 용약법(用藥法)을 기술한 다음 천자총통(天字銃筒), 지자총통(地字銃筒), 별황자총통(別黃字銃筒), 대완구(大碗口) 등 각종 화약병기의 용약법과 발사물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중신기화차>에는 현대 다연장로켓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중신기전 1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중신기화차주자총통 50문을 탑재할 수 있는 화차 등이 수록되어 있다. 본 장서각 소장본은 책 후반부에 『신전자취염초방언해(新傳煮取焰硝方諺解)』가 합철되어 있고, 책 끝에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발문이 실려 있는데, 1685년(숙종 11)에 황해 병영(黃海兵營)에서 중간한 목판본이다. 이 책은 조총류(鳥銃類)를 수록하지 않은 점과 사거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당시에 사용된 화약병기의 종류와 용약법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본 간의 비교를 통해 17세기 국어 표기법의 변화과정을 엿볼 수 있다.[1]

화포식언해 판본에 대해서

『화포식언해』는 본래 최명길의 발문에 언급된 것처럼, 처음부터 『신전자취염초방언해(新傳煮取焰硝方諺解)』와 합철되어 간행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화포식언해』는 제본 상태에 따라서 약 5가지로 압축 된다.[2] 첫 번째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와 합철된 판본이다. 이 책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서강대학교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장서각에 보존된 것은 『신전자취염초방언해』 권 말 최명길 발문 끝에 숭정8년(1635) 간행 간기만 붙어 있어 이 시기 초간본으로 보인다. 서강대에 소장된 것은 끝에 한 장을 더 추가하여 1685년에 다시 간행한 즉 중간본임을 알 수 있다.[3] 두 번째 형태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 앞에 필사본인 『매화법』이 추가된 것이 있다. 『매화법』 필사 시기는 정확하지 않고 합철된 『신전자취염초방언해』가 있으니 위와 같은 1685년 형태라 볼 수 있겠다.[4] 세 번째 형태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 뒤에 『신전자초방』이 추가된 본이다. 이 『신전자초방』의 기록은 『비변사등록』의 기록에서 1796년 5월 12일 기사로 밝혀지고 있어 간행 년도를 1796년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판본과 비교해 보아도 내용이 워낙 비슷하며, 『신전자취염초방언해』 끝에 ‘監校官副司果金益粲’란 부분이 희미하게 남아있어 후대보다는 1685년 중간본으로 보는 것이 확실하겠다. 이 소장본은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5] 네 번째 형태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 대신 『신전자초방』이 합철된 것이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이 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 책의 상태나 함께 묶인 『신전자초방』의 간기(刊記)를 보아도 후대에 따로 묶었다기 보다는 1709년에 함께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6] 마지막 형태는 오로지 『화포식언해』만 있는 경우이다. 이 형태는 오로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판본의 간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추측한다면 『신전자취염초방언해』가 소용없게 된 시점인 18세기 초 무렵에 이루어진 것 같다.[7]

『화포식언해』는 화기 운용의 대상을 군관에만 한정한 것이 아니라, 일반 병사까지도 습득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예컨대 중국에서도 화기 사용법에 대한 설명서인 『무비지』가 있었으나, 당시 일반 사람들이 구입하기도 어려웠고, 또한 일반 병사들은 문맹률이 높아 책을 구한다 하더라도 실제 습득하는 것이 어려웠다.[8]

동양무기체계의 특징

조선의 화기는 중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화차(火車) 기술의 비중이나 발달 정도가 크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겠으나 연구자들은 보편적으로 화포의 명중률과 실효성 때문에 차이가 벌어진 것이라 보고 있다.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의 경우, 화약 연료인 염초가 내지에서 생산되고 다양한 조공 루트를 통하여 유황이 수입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수량의 화약을 제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대량의 화기를 만들어, 엄청나게 많은 수의 화기인 총포(銃砲)를 이용하여 대량의 포탄 세례를 퍼붓는 방식으로 적을 제압했던 것이 전투에 있어서 중국의 특징이었다. 이로 인해 중국 입장에서는 화차가 등장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조선의 경우는 염초 생산량이 제한되어 있었고, 유황의 수입 루트도 제한적이었다. 많은 수량의 화약을 만들 수 없었고 중국처럼 대량의 포로 포탄을 쏘아 올려 탄막을 만드는 비효율 적인 일 또한 할 수 없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대량의 포탄 세례를 추구하기 보다는 넓은 범위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화차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조총(鳥銃)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전국시대(1460년대~1600년대) 당시 이 무기가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 일본의 군대는 특유의 평야지역으로 기병과 보병으로 양분화 되었는데, 여기서 도입된 조총이 집중된 전근대 회전(會戰) 방식에서 큰 효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도 조선처럼 화약이 많이 생산되는 나라는 아니었다. 화약 재료인 유황만 생산되었지, 지나치게 습한 기후 때문에 염초 자체도 생산이 불가능 하였다.[9] [10] [11] [12]

화차의 발달 과정

화차의 발달 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수레 위에 여러 개의 총통(銃筒)을 얹는 방식으로 문종(1450~1452) 대에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를 사전총통이라 하는데 대부분 화살형 발사체인 세전총통 안에 넣고 화약 폭발력으로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50문에 4발의 세전을 발사 할 수 있으니 약 200발이 동시에 나가는 화력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세전 발사체뿐만 아니라 중형 신기전(神機箭)을 탑재하여 발사하는 방식의 화차도 있었다. 이후 화차는 세전이나 신기전 발사 방식에서 벗어나 승자총통 40문을 화차에 탑재하고 발사체도 탄환으로 바꾸는 형태가 된다. 바로 이 화차가 임진왜란 시기에 나온 망암화차 이다.[13]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이서 화포식언해 A는 B를 저술하였다 1635년
화포식언해 화약병기 용약법 A는 B를 언급하였다
화포식언해 화약병기 발사물 A는 B를 언급하였다
화포식언해 신전자취염초방언해 A는 B를 포함한다
화포식언해 최명길 발문 A는 B를 포함한다
화포식언해 신전자초방 A는 B를 포함한다
화포식언해 매화법 A는 B를 포함한다
화포식언해 무비지 A는 B와 관련이 있다
화포식언해 중신기화차 A는 B를 언급하였다
화포식언해 신기전 A는 B를 언급하였다
화포식언해 총통 A는 B를 언급하였다
화포식언해 화차 A는 B를 언급하였다
총통 승자총통 A는 B를 포함한다
화차 중신기화차 A는 B를 포함한다
화차 사전총통 A는 B를 포함한다
화차 망암화차 A는 B를 포함한다
사전총통 세전 A는 B와 관련이 있다
황해병영 화포식언해 A는 B를 소장한다 1685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화포식언해 A는 B를 소장한다
서강대학교 화포식언해 A는 B를 소장한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화포식언해 A는 B를 소장한다
국립중앙도서관 화포식언해 A는 B를 소장한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635년 화포식언해는 간행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화포식언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었다
37.551388 126.940731 화포식언해은 서강대학교에 소장되었다
35.857418 128.485539 화포식언해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었다.
37.497757 127.003681 화포식언해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98쪽.
  2.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8쪽.
  3.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4.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5.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6.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7.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100쪽.
  8. 王兆春, 『中國火器史』, 軍事科學出版社, 1991, 1~34쪽.
  9. 王兆春, 『中國火器史』, 軍事科學出版社, 1991.
  10. 이창섭, 「明朝 硫黃의 관리와 需給體系의 변화」,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11. 정지연, 「朝鮮前期 對日 私貿易 硏究-太祖~成宗代를 中心으로」, 『한일관계사연구』, Vol 24, 2006, 27~68쪽.
  12. 김병륜, 「망함 火車의 구조적 특성과 실효성」, 『孔子學』, Vol 21, 2011, 65~105쪽.
  13. 김병륜, 「망함 火車의 구조적 특성과 실효성」, 『孔子學』, Vol 21, 2011, 69~77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王兆春, 『中國火器史』, 軍事科學出版社, 1991.
  • 논문
    •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총 571쪽.
    • 許善道, 「朝鮮中期 火器의 發達-상-」, 『歷史學報』, 30, 1966, 47~107쪽.
    • 許善道, 「朝鮮中期 火器의 發達-하-」, 『歷史學報』, 31, 1966, 67~127쪽.
    • 김병륜, 「망함 火車의 구조적 특성과 실효성」, 『孔子學』, Vol 21, 2011, 65~105쪽.
    • 이창섭, 「明朝 硫黃의 관리와 需給體系의 변화」,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 정지연, 「朝鮮前期 對日 私貿易 硏究-太祖~成宗代를 中心으로」, 『한일관계사연구』, Vol 24, 2006, 27~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