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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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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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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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 for Master Cheolgam at Ssangbongsa Temple, Hwasun |
한자 | 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碑 |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산의로 459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제170호 |
문화재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찬자 | 미상 |
서자 | 미상 |
각자 | 미상 |
서체 | 전서(篆書) |
승려 | 도윤(道允) |
건립연대 | 9세기말 |
승탑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
비문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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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사(雙峯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승려 철감선사 도윤(澈鑒禪師 道允, 798-868)의 탑비.
내용
개요
전체높이 1.4m. 이 비는 비신이 없어진 채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 남아 있다. 네모난 바닥돌 위의 거북은 용의 머리를 하고 여의주를 문 채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특히 오른쪽 앞발을 살짝 올리고 있다. 이수는 용조각을 생략한 채 구름무늬만으로 채우고 있다.[1] 앞면 가운데에 제액을 만들고 비제를 음각 예서(隸書)로 새겼다.[2]
이 비는 화순 쌍봉사에 있는 철감선사 도윤(澈鑒禪師 道允)의 탑비이다. 철감선사가 71세의 나이로 쌍봉사에서 입적하니, 왕은 시호를 ‘철감(澈鑒)’이라 내리었다.[3] 1963년 보물 제170호로 지정되었다.
비신의 행방
비신의 행방에 대해서는 1786년에 세워진 쌍봉사 사적비에 ‘철감 선사의 이름마저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한 점과 ‘절의 동서 양쪽에 비석이 있는데 서쪽의 것은 신라 때의 것이고 동쪽의 것은 고려 때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한 점으로 볼 때, 서쪽의 것이 철감 선사의 비였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마을에 전해지는 구전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탑비 부근의 땅 속에 이 비를 묻었을 것이라고 한다.[4]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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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 화순 쌍봉사 | A는 B에 있다 |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 도윤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김희태,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쌍봉사철감선사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 국립문화재연구원. - ↑ 김희태,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김희태,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쌍봉사철감선사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 국립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