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슬(왕실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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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슬(蔽膝) | |
복식구분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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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신분 | 왕실 |
착용성별 | 남성 |
관련복식 | 대례복(大禮服) |
정의
무릎 가리개이다.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착용상황
국가 의례, 혼례 등의 대례복을 입을 때 착용 한다.
기본 형태
위의 너비 1척, 아래의 너비 2척, 길이 3척으로,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형태로, 1은 하늘, 2는 땅, 3은 삼재를 상징한다.[1]
25px | 붉은 슬갑 넓적다리에 있고 행전이 아래에 있도다. 【불(芾)은 태고 때 무릎 가리개의 모습이다. 면복을 불(芾)이라 하고 기타의 의복은 필(韠}라고 하는데 가죽으로써 만든다. 그 제도에 있어 위의 너비는 1척이고 아래의 너비는 2척이며 길이는 3척이다. 그 목 부분은 5촌이고 어깨[肩]와 혁대는 너비가 2촌이다.】(赤芾在股,邪幅在下【箋云: 芾,大古蔽膝之象也。冕服謂之芾,其他服謂之韠。以韋爲之,其製上廣一尺,下廣二尺,長三尺,其頸五寸,肩革帶, 博二寸.】) | 25px |
출처: 『詩經』, 「小雅」, '采菽'. |
면복에서 폐슬의 색은 하상을 따르기 때문에 붉은색이며, 하상과 동일한 문양 배치했다.[2]
대한제국의 황제는 용(龍), 화(火) 문양을 사용 했다. 조선의 왕, 왕세자는 조(藻), 분미(粉米), 보(黼), 불(黻) 문양을 사용 했다. 조선의 왕세손은 보(黼), 불(黻) 문양을 사용 했다.
- 8폐슬오례의서례.jpg
『國朝五禮儀序例』
- 궁중기록화 복식 폐슬 04.JPG
『正祖國葬都監儀軌』
기타
기원 사람은 먼저 앞을 가리는 것을 알고 후에 뒤를 가림을 알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폐슬은 앞을 가리던 역할을 하였다가, 후에 예복에 달린 무릎가리개가 되고 앞과 뒤에 두르는 상(裳)이라는 형태의 옷이 생겨났다.[3]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
황제 | 폐슬(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한다 |
황태자 | 폐슬(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한다 |
왕 | 폐슬(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한다 |
왕세자 | 폐슬(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한다 |
왕세손 | 폐슬(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한다 |
폐슬(왕실남성) | 대례복 | A는 B의 일습이다 |
폐슬(왕실남성) | 면복각 | A는 B에서 소장한다 |
참고문헌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 권현주, 「접섭대(䪓韘帶)에 관한 연구」, 『中央아시아硏究』, V.11, 중앙아시아학회, 2005.
-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名選-下』,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 류희경,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1.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역사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문화재청, 2007.
- 석주선, 『한국복식사』, 보진재, 1971.
- 이강칠 외, 『역사인물초상화대사전』, 현암사, 2003.
- 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周錫保, 『中國古代服飾史』, 中國戱劇出版社, 1983.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최규순, 「이 시대의 진정한 ‘紳士’를 위하여」, 『전통 의생활 연구』, 제 2집, 단국대학교 전통복식연구소, 2008.
- 최영선, 「朝鮮時代 文武百官 祭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