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 황여일 처 숙부인 이씨 유서
참의 황여일 처 숙부인 이씨 유서 | |
영문명칭 | Yi of Wansan, a wife of Hwang Yeoil, her will to her childr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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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 완산이씨 |
간행시기 | 1651년 |
기탁처 | 평해황씨 해월종택 |
소장처 | 한국국학진흥원 |
유형 | 고문서 |
크기(세로×가로) | 44.4×52.2㎝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장 |
표기문자 | 한글 |
해독문 | 참의 황여일 처 숙부인 이씨 유서(해독) |
목차
정의
황여일(黃汝一, 1556~1622)의 처 숙부인 완산이씨의 유서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황여일(黃汝一, 1556~1622)의 처 숙부인 완산이씨가 그의 아들 황중민(黃中敏)과 전처의 비첩 소생인 황석우(黃石友)가 모의하여 가문의 적통(嫡統)과 봉사권(奉祀權)을 빼앗으려 하자 계후(繼後)한 양자 황석래(黃石來)를 보호하고 가문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자녀 등 일족에게 친필로 쓴 유서이다. 공조 참의(參議)를 지낸 황여일은 평생 세 번의 장가를 갔다. 첫 번째 부인은 안동 내앞(川前)의 의성김씨 귀봉(龜峯) 김수일(金守一)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서울출신 최병사(兵使)의 딸이다. 셋째 부인이 이 유서의 주인공 이씨이다. 이씨는 본관이 완산(完山)이며 성종의 5세손 덕원도정 이추(李樞)의 딸이다. 숙부인은 정3품 당상관 처에게 내리는 작호(爵號)이며 황여일이 공조참의를 역임했기 때문이다. 김씨부인은 첫째 아들 중윤(中允, 1577~?)만을, 이씨부인은 중민(中敏), 중헌(中憲), 중순(中順), 중원(中遠)의 네 아들을 두었다. 승지를 지낸 황중윤은 적처(嫡妻) 밀양박씨에게 자식을 보지 못하고 비첩 소생인 황석우(黃石友)만을 두었다. 이에 이씨부인을 비롯하여 황중윤의 처 박씨 등이 황중헌의 다섯째 아들 황석래(黃石來)를 적통을 잇는 계후자이자 봉사자로 삼았다. 이에 대하여 황중윤의 비첩(婢妾) 분개의 소생 황석우와 이씨부인 소생 황중민이 모의(謀議)하여 적통과 봉사권을 두고 이씨부인을 비롯한 종중과 다툼을 벌였다. 이들의 모의는 이씨부인의 맏아들인 중민이 종손이 되어 대종의 봉사를 맡고 황석우는 황중윤의 봉제사(奉祭祀)권과 재산상속권을 갖자는 것이었다. 이 문서는 이씨부인이 서손(庶孫) 황석우와 아들 황중민의 종통 다툼에 대하여 양자인 손자 황석래를 보호하고 황여일-황중윤으로 이어지는 대종(大宗)을 보호하기 위한 유서(遺書)이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양자는 ‘적첩구무자(嫡妾俱無子)’ 즉 적처와 첩에게 모두 아들을 두지 못했을 경우에 행 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이 규정대로라면 황중윤의 서얼(庶孼) 황석우에게 적통의 계승권이 있다. 하지만 조선중기 이후에는 관행적으로 첩의 자식이 있더라도 계후(繼後) 즉 양자를 하였다. 이 유서 작성의 배경에는 이같은 관행과 법의 해석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 조선시대 가족관계에서 계후와 봉사권, 재산상속 그리고 적서의 사회적 위상과 그 변화상을 가늠하는데 중요한 사례이다. [1]
황여일에 대해서
황여일은 조선시기 문신으로, 본관은 평해이며, 자는 회원(會元) 호는 해월헌(海月軒), 매월헌(梅月軒)이다. 황세충(黃世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연(黃璉)이며, 아버지는 유학(幼學) 황응징(黃應澄)이다. 1576년(선조 9)에 진사가 되고 1585년 개종계별시문과(改宗系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88년 검열이 되었는데, 하번사관(下番史官)임에도 불구하고 출입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시기에 1594년 형조정랑이 되고 곧 도원수 권율(權慄)의 종사관으로 내려갔는데, 얼마 뒤 도원수의 허락을 받고 일시 귀가하여 도원수와 함께 추고(推考)당하였다. 1598년 사서에 이어 장령이 되고, 이듬해 장악원정을 역임하였다. 1601년 예천군수가 되고 1606년 전적을 역임, 1611년(광해군 3) 길주목사, 1617년 동래진병마첨절제사가 되었다. 사후에 평해의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조천록(朝天錄)』, 『해월집(海月集)』 이 있다. [2]
황여일의 여인들과 재산분쟁
황여일 에게는 3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 번째 부인은 안동 내앞(川前)의 의성김씨 귀봉(龜峯) 김수일(金守一,1528∼1583)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서울출신 최 병사(兵使)의 딸이다. 셋째 부인이 본 유서의 주인공 이씨 부인이다. 이씨는 본관이 완산(完山)이며 성종의 5세손 덕원도정 이추(李樞)의 딸이다. 첫째 김씨 부인은 아들 중윤(中允,1577~1648)만을 낳았고, 완산 이씨은 중민(中敏), 중헌(中憲), 중순(中順), 중원(中遠) 네 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승지를 지낸 황중윤은 적처(嫡妻) 밀양박씨에게서 자식을 보지 못하고 비첩(婢妾) 분개 소생인 황석우(黃石友)만을 두었다. 이에 이씨부인을 비롯하여 황중윤의 처 박씨 등이 참여하여 이씨 부인 소생으로서 중헌의 제 5남 황석래(黃石來)를 적통을 잇는 계후자이자 봉사자로 삼았다. 이에 대하여 서열상 황중윤의 피를 받은 비첩의 소생 황석우와 이씨 본인 아들 맏이인 황중민이 모의(謀議)하여 적통과 봉사권을 두고 이씨 부인을 비롯한 종중과 다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3]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완산 이씨 | 참의 황여일 처 숙부인 이씨 유서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651년 |
황여일 | 완산 이씨 | A는 B의 남편이다 | |
황여일 | 김씨 부인 | A는 B의 남편이다 | |
황중윤 | 김씨 부인 | A는 B의 자식이다 | |
황중민 | 완산 이씨 | A는 B의 자식이다 | |
황중헌 | 완산 이씨 | A는 B의 자식이다 | |
황중순 | 완산 이씨 | A는 B의 자식이다 | |
황중원 | 완산 이씨 | A는 B의 자식이다 | |
황여일 | 분개 | A는 B의 남편이다 | |
황석우 | 분개 | A는 B의 자식이다 | |
황석래 | 황중헌 | A는 B의 자식이다 | |
황중윤 | 밀양박씨 | A는 B의 남편이다 | |
참의 황여일 처 숙부인 이씨 유서 | 한국국학진흥원 | A는 B에 소장되어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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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1년 | 참의 황여일 처 숙부인 이씨 유서는 간행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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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29987 | 129.439673 | 참의 황여일 처 숙부인 이씨 유서은 평해황씨 해월헌에 소장되어있다 |
36.70183 | 128.810925 | 참의 황여일 처 숙부인 이씨 유서은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있다 |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60쪽.
- ↑ 이원근, 황여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30일 - ↑ 안승준, 「嫡庶 사이 名分과 利害의 分岐와 아우성」, 『장서각소리 금요강독회』,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2016, 3~4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노혜경, 「黃胤錫의 《平海黃氏世系》 편찬 배경과 특징」, 『장서각』, Vol-2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27-52쪽.
- 김성우, 「조선후기의 신분제 : 해체국면 혹은 변화과정」, 『역사와 현실』, Vol-48, 한국역사연구회, 2003, 3-29쪽.
- 김인규, 「조선후기 신분제 개혁론의 새로운 지평 : 身分主義에서 職分主義로의 패러다임의 전환」, 『동양고전연구』, Vol-30, 동양고전학회, 2008, 133-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