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하씨 단지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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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하씨 단지종택
한자명칭 晉州 丹牧理 澹山古宅
영문명칭 House of Damsan in Danmok-ri, Jinju
문화재지정사항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38호
보유문화재 -진주단목리단지하협종택소장 고문서(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7호)

-진주단목리단지하협종택소장 사마방목(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8호)
-진주단목리단지하협종택소장 정운원종공신녹권(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9호)
-진주단목리단지하협종택소장 진양하씨무인보(문화재자료 제415호)
-진주단목리담산고택소장 관포시집(문화재자료 제349호)

-진주단목리담산고택소장 창주집책판(문화재자료 제348호)
건립시기 1800년대 중반 ~ 1900년대 중반
소재지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746


정의

진양하씨 단지 하협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종택이다.

내용

진양하씨와 남명학파

진양하씨는 고려시대 이후부터 진주에 세거하였다. 다수의 과거급제자와 훌륭한 인물을 배출하면서 명문가문으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뿐만 아니라 하륜의 조선 건국과정에서의 활약과 진주정씨와의 혼인을 통해 진주지역에서 강력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하순경과 그 아들 하기룡대에 비봉산 아래를 떠나 거주지를 변경하였다. 하순경은 진주부 남쪽으로 하기룡은 진주부 북쪽의 단목리로 이주하였다. 하기룡의 후손들은 단목리를 중심으로 활발한 학문활동을 통해 사회적 기반을 유지·강화해갔다. 특히 하숙의 아들 하위보, 하진보, 하국보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하위보와 하국보는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하진보는 1554년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이들 3형제는 모두 남명 조식의 문인이었다. 하진보는 신산서원(新山書院)을 건립하여 남명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하위보도 후학 양성에 힘쓰며 남명의 학문전파에 기여한 바가 컸다. 하위보와 하진보의 남명학파내에서의 위치와 그들의 활동에 힘입어 하위보의 아들 단지 하협과 그 후손들 또한 남명학파의 핵심구성원으로서 활약하게 되었기에 17세기 이후 단목리는 진양하씨의 세거지인 동시에 남명학파의 본거지로 자리잡았다. [1]

단지종택의 건립과 구조

단지 하협이 분가할 때 터를 정해 지은 집이다. 당시 집터를 조성하고 땅을 고를 때 나무 위에 앉아 있던 학(鶴) 두마니라 앞산으로 날아갔다고 해서 이곳을 '해기터(학터:鶴基)'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2] 경상남도에서는 이 단지종택을 창주의 후손인 담산 하우식(1875~1943)의 호를 따서 담산고택으로 명명하였다. 단지종택은 가운데 솟을대문이 있는 중심채영역과 좌우에 담장으로 구획된 아래채영역, 윗채영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1864년, 사랑채는 1871년에 건립되었는데, 두 건물은 단파 하계룡(1851~1932)에 의하여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그의 아들 담산 하우식에 의하여 1923년 중수되었다. 별채는 1916년에 건립되었다.[3] 그외에 광채, 행랑채, 부속사, 정암정, 문간채 등이 있고 마당에는 효자목이라는 감나무가 있다. 광채는 내부는 고쳤으나 외형은 남아있어 지방사족의 가옥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1800년대 중엽부터 1900년대 중엽까지 차례대로 건물이 지어져서 가옥의 형태변화를 살필 수 있어 고건축 연구에도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4]

최근에 종손 순봉이 본채인 단지세장(丹池世庄)의 양쪽에 집을 지었는데 동쪽는 조부 묵재공을 위해 묵재재실이라 이름짓고, 서쪽은 목림서실이라 이름짓고 자신의 서재로 삼았다.

진양하씨 단지종택 소장 고문헌

현재 고택 내에는 행정 하진태의 효행관련문헌을 포함한 고문서 약 5000점, 고서 약 3000책 등 많은 고문헌들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이를 모아 『고문서집성』45권으로 발간하였다. 진양하씨 가문은 대부분 남명 조식의 문인이거나 그 학파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진양하씨 단지종택에 남아있는 많은 고문헌들에도 이들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호산춘주 제조법 진양하씨 단지종택 A는 B에 보관되었다
진양하씨 단지종택 하협 A는 B에서 이름을 땄다
진양하씨 단지종택 진양하씨 A는 B와 관련이 있다
진양하씨 단지종택 하기룡 A는 B와 관련이 있다 15세기 중엽
하기룡 진양하씨 A는 B에 소속된다
하기룡 하숙 A는 B의 후손이다
하숙 하위보 A는 B의 어버이다
하숙 하진보 A는 B의 어버이다
하숙 하국보 A는 B의 어버이다
하위보 조식 A는 B의 제자이다
하진보 조식 A는 B의 제자이다
하국보 조식 A는 B의 제자이다
하위보 하협 A는 B의 어버이다
하계룡 하협 A는 B의 후손이다
하계룡 하우식 A는 B의 어버이다
하계룡 진양하씨 단지종택 안채 A는 B를 건립하였다 1864년
하계룡 진양하씨 단지종택 사랑채 A는 B를 건립하였다 1871년
하계룡 진양하씨 단지종택 별채 A는 B를 건립하였다 1916년

시간 정보

시간정보 내용
15세기 중엽 하기룡이 단목리로 이거하였다.
1864년 하계룡이 진양하씨 단지종택 안채를 건립하였다
1871년 하계룡이 진양하씨 단지종택 사랑채를 건립하였다
1916년 하계룡이 진양하씨 단지종택 별채를 건립하였다

공간 정보

위도 경도 내용
35.257146 128.136781 진양하씨 단지종택은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마을에 위치한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가상 현실 - 전체 화면 보기

사진

영상

  •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석

  1. 정수환·박준호, 「晋州 晋陽河氏 丹池宗宅 所藏 典籍類의 내용과 그 성격」, 『장서각』6, 한국학중앙연구원, 2001, 211-214쪽.
  2. 진양하씨종사연구회, 단지공 하협종택『진양하씨종사연구회』online
  3. 경상남도,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문화재안내판」
  4. 진주시,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진주시청』online
  5. 허창식, 안승준,「晋州 丹牧 晋陽河氏의 사회적 지위와 家傳 고문서에 대한 고찰『한국고문서자료관』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 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명가의 고문서1 선비가의 묵향 : 진양하씨 창주후손가』,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2.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집성(47)-진주 단목 진양하씨 창주후손가(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0.
    3.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집성(48)-진주 단목 진양하씨 창주후손가(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0.
  • 논문
    1. 김학수, 「고문서를 통해 본 진양하씨 창주가의 토족적 위상 - 사회경제적 기반을 중심으로」, 『남명학연구』25,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08.
    2. 장서각, 「晉州 晉陽河氏 滄洲後孫家所藏 典籍[文集類]의 현황과 내용」, 『장서각』3, 한국학중앙연구원, 2000.
    3. 조계영, 「문중의 고문헌 관리와 보존 - 진주 진양하씨 단지종택 사례를 중심으로」, 『고문서연구』27, 한국고문서학회, 2005.
  • 웹자원
    1. 김규형, 「진주 담산 고택」,『디지털진주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