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이 막내동생에게 보낸 편지
임영이 막내동생에게 보낸 편지 | |
영문명칭 | Yim Yeong's Korean letter to his si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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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 임영 |
간행시기 | 1683~1686년 |
소장처 | 나주임씨 창계후손가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45.2×33.5cm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첩 |
표기문자 | 한글 |
해독문 | 임영이 막내동생에게 보낸 편지(해독) |
목차
정의
창계(滄溪) 임영(林泳, 1649~1696)이 조형보(趙衡輔, 1659~1697)에게 시집간 막내 여동생(1660~1734)에게 보낸 편지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창계(滄溪) 임영(林泳, 1649~1696)이 조형보(趙衡輔, 1659~1697)에게 시집간 막내 여동생(1660~1734)에게 보낸 편지이다. 『임창계선생묵보국자내간(林滄溪先生墨寶國字內間)』에 수록된 임영의 편지가 총 18건인데 그중 막내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가 15건이며, 이 편지는 아홉 번째 편지이다. 임영은 연이어 부모의 상을 치르면서 막내 여동생에게 보내는 일련의 편지에 이와 관련된 내용을 상세히 적고 있는데 이 편지도 그중 하나이다. 특히 이 편지에서는 상례를 치르고 상여가 나가는 모습과 당시 상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17세기에 실제로 행해졌던 조선시대 상례의 모습을 보여주는 생활사 자료일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오빠가 여동생에게 사용한 언어 양상을 보여주는 국어사 자료여서 그 가치가 남다르다. 그 내용을 보면, 임영이 상을 당하자 장례 때 감사(監司)가 상여꾼 이외에도 일꾼들과 그들이 먹을 양식을 각 관에 넉넉하게 나누어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였고, 부의(賻儀)를 내리기도 하였다. 감사(監司)는 영미(營米) 석 섬을, 그 고을들도 각 한 섬씩 보내고, 다른 데서도 쌀 열한 섬을 부조(扶助)한 것으로 보인다. 상여(喪輿)가 나갈 때에는 감사가 삼례로 나와서 기다리다가 조상(弔喪)과 치전(致奠)을 하였고, 각 관의 수령들도 거의 다 와서 상여를 맞아 그 뒤를 따랐다. 또 길가 쪽에 있지 않던 수령도 길로 나와서 상여가 나가는 것을 보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상여꾼은 100여 명에 이르렀고 다들 엄숙하고 조심히 행렬을 이어 나가 상여를 매우 평안하게, 요동치지 않게 모시니 이와 같이 매우 극진하게 행상(行喪)을 했다고 하였으며, 상여꾼이 1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또 감사와 각 관의 수령들이 모두 나와 상여를 맞아 그 뒤를 따랐다고 하니 임영 집안의 세 또한 짐작할 수 있다. [1]
임영에 대해서
임영(1659-1696),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함(德涵), 호는 창계(滄溪)이다. 아버지는 군수 일유(一儒)이며,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석형(錫馨)의 딸이다. 이단상(李端相), 박세채(朴世采)의 문인이다. 1665년(현종 6) 사마시에 장원하였고, 1671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湖堂)에 뽑혀 사가독서하였다. 그 뒤 이조정랑, 검상, 부제학, 대사헌,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694년(숙종 20)에 대사간, 개성부유수 등을 역임, 이듬해 부제학으로 있을 때 병이 들어 약물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이후 참판에까지 이르렀다. 나주의 창계서원(滄溪書院), 함평의 수산사(水山祠)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창계집』 27권이 있다. [2]
임영의 가계도
임영의 아버지 임일유(1611-1684)는 1633년 식년시에서 진사로 합격한 사람이다. 관직은 한성부서윤에 이르렀으며, 4명의 아들 2명의 딸을 두었다. 첫째는 임환, 둘째는 임정(林淀), 셋째는 임영, 넷째는 임정(林凈), 다섯째는 양대의 처 나주임씨, 여섯째 막내가 조형보의 처 나주임씨이다. [3]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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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 | 임영이 막내동생에게 보낸 편지 | A는 B를 저술했다 | 1683년-1686년 |
임영이 막내동생에게 보낸 편지 | 조형보의 처 나주임씨 | A는 B를 언급하였다 | |
조형보 | 조형보의 처 나주임씨 | A는 B의 남편이다 | |
임영 | 임일유 | A는 B의 자식이다 | |
조형보의 처 나주임씨 | 임일유 | A는 B의 자식이다 | |
임정(林淀) | 임일유 | A는 B의 자식이다 | |
임정(林凈) | 임일유 | A는 B의 자식이다 | |
양대의 처 나주임씨 | 임일유 | A는 B의 자식이다 | |
임영 | 임천조씨 | A는 B의 자식이다 | |
임천조씨 | 조석형 | A는 B의 자식이다 | |
임영이 막내동생에게 보낸 편지 | 나주임씨 창계후손가 | A는 B에 소장되어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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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3년-1686년 | 임영이 막내동생에게 보낸 편지이 간행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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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98609 | 126.666779 | 임영이 막내동생에게 보낸 편지은 나주임씨 창계후손가에 소장되어있다 |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34쪽.
- ↑ 조준하, 임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14일 - ↑ 이원배, 임일유,
『한국역대인물종합시스템』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14일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 웹자원
- 임일유,
『한국학자료센터 인물관계정보』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14일
- 임일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