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빈 의대 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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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빈 의대 발기
영문명칭 The list of clothes sent to three candidates of Crown Princess for Sunjong in 1882
작자 미상
간행시기 1882년
기탁처 경주김씨 직각종택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961
유형 고문서
크기(세로×가로) 24.1×93.7cm
판본 필사본
수량 1장
표기문자 한글



정의

1882년(고종19, 임오년) 왕세자 척(1874~1926, 후일 순종)의 가례 시 재간택에 선발된 3명의 후보자에게 보낸 의대발기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1882년(고종19, 임오년) 왕세자 척(1874~1926, 후일 순종)의 가례 시 재간택에 선발된 3명의 후보자에게 보낸 의대발기이다. 당시 왕세자였던 순종의 가례를 위해 1881년 11월 16일에 7세에서 11세까지의 처녀들에게 금혼령을 내리고, 1882년 1월 15일 초간택을 치렀으며, 1월 18일 재간택이 이루어졌다. 배면에 <임오쳔만셰 동궁마마 가례시재(*고한글)간택(*고한글)후보내(*고한글)오실 빈궁마누라의대(*고한글)발(*고한글)긔>라는 제목이 있어 본 의대의 용처를 확인할 수 있다. 분홍색, 청색, 연보라색 등 세 가지 색깔의 한지를 이어 붙인 후 삼간택에 들어올 처자에게 지급할 물목을 적어 놓았다. 본 발기의 특징은 삼간택에 들어올 때 착용할 수 있도록 머리 수식에서부터 겉옷, 속옷은 물론 신발에 이르기까지 완성된 의복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왕실의 복식이 일반 사가의 복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옷감이 아닌 완성된 의복을 장만하여 지급한 것으로 이해된다. [1]

발기

발기의 제작 배경에는 해당 물품을 마련하거나 인원을 배치하는 일에 대한 운용 체계가 있었다. 가례에는 상당량의 물품과 인원이 동원되었으므로 그 내역을 미리 작성해두지 않으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또 물품과 인원을 배치하는 과정에서는 변동사항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수정하지 않으면 진행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보고 문서를 작성할 때도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발기는 해당 의례를 진행하는 기간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작성되며, 작성 시기는 개별 발기에 따라 사전, 사후에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발기가 의례를 원활하게 진행하기위한 실무용 자료로서 의례가 모두 끝난 뒤에 등록이나 의궤의 기초 자료로 사용된다.[2]
가례의 각 절차에 소용된 물품의 내역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가례에 관여한 내인이나 내관들의 명단은 등록이나 의궤 등 관찬자료에서는 보기 힘든 내용으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왕실 의례의 구체적인 모습과 왕실 운영 체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한글본과 한자본 발기의 존재로 인하여 왕실의 문자 생활과 문서의 작성 및 보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3]

임오년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와 발기의 제작

당시 왕세자 가례를 위해 제작한 발기들은 간택부터 왕세자빈이 별궁에 머물고 육례를 거행한 뒤 시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례의 절차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발기의 내용은 간택에 참여하는 이들을 위한 상차림과 간택된 왕세자빈에게 하사하는 의대 내역, 왕세자빈이 별궁에 머무는 동안 마련된 복식, 패물 등 각종 기물에 대한 내역, 왕세자빈이 책봉 교명을 받는 수책례 등을 수행하는 내인들의 명단, 가례 준비에 관여했던 가례도감 관원을 비롯한 내관, 내인들에 대한 시상 내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음식, 복식, 기물, 명단으로 한정되며 해당 기록의 실상과 연계되는 기록이다. [4]

『왕세자빈 의대 발기』의 특징

이 자료의 원제는 「임오쳔만셰동궁마마가례시간후보오실빈궁마누라의긔」이며 왕세자빈 간택 과정 중 재간택과 관계가 있다. 원문을 살펴보면 재간택에 오른 후보에게 머리 수식에서부터 겉옷, 속옷은 물론 신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의복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이 발기가 쓰인 시점은 제목의 ‘보오실‘이라는 부분을 살펴볼 때 재간택 이전에 저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삼간택 이전에 이미 ’빈궁마누라‘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의대를 보낸 것으로 볼 때 「임오쳔만셰동궁마마가례시삼간시빈궁마누라의긔」와는 목록의 양과 질에서는 확연히 차이가 드러나지만 재간택부터 이미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고종 순종 A는 B의 어버이이다
순종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A는 B에 참여하였다 1882년
순명효황후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A는 B에 참여하였다 1992년
순종 순명효황후 가례 소론 A는 B와 관련이 있다
왕세자빈 의대 발기 소론 A는 B를 언급하였다
순종 왕세자빈 의대 발기 A는 B에 언급된다
순명효황후 왕세자빈 의대 발기 A는 B에 언급된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882년 순종의 가례를 위해 왕세자빈 의대 발기 저술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틀:PAHENAME가 소장되어 있다.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07쪽.
  2. 김봉좌, 「왕실 의례를 위한 발기[件記]의 제작과 특성」, 『서지학 연구』vol.65, 한국서지학회, 2016
  3. 김봉좌, 「왕실 의례를 위한 발기[件記]의 제작과 특성」, 『서지학 연구』vol.65, 한국서지학회, 2016
  4. 김봉좌, 「왕실 의례를 위한 발기[件記]의 제작과 특성」, 『서지학 연구』vol.65, 한국서지학회, 2016
  5. 김봉좌, 「왕실 의례를 위한 발기[件記]의 제작과 특성」, 『서지학 연구』vol.65, 한국서지학회,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