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 |
한자명칭 |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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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명칭 | Daebanggwang wongaksudarayouigyeong |
영문명칭 | Sutra of Perfect Enlightenment |
간행시기 | 1465년 |
소장처 | 장서각 |
청구기호 | C4-139A |
문화재지정사항 | 보물 제1514호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7.3×18.2㎝ |
판본 | 금속활자본(을유자) |
수량 | 1책 |
표기문자 | 한자, 한글 |
목차
정의
당나라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역(漢譯)하고 종밀(宗密)이 풀이한 원각묘심(圓覺妙心)의 수행 방법을 설명한 불교 경전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당나라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역(漢譯)하고 종밀(宗密)이 풀이한 원각묘심(圓覺妙心)의 수행 방법을 설명한 불교 경전이다. 대방광원각경, 원각 수다라요의경, 원각요의경, 원각경, 요의경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려 우왕 대에 원각경이 간행되었으나, 본 경전은 1465년(세조 11) 원각사를 준공한 시점에 간행된 것이다. 이 경전은 고려 시대부터 널리 유통되었는데, 특히 장서각 소장본은 간경도감의 국역본을 저본으로 삼아 경문과 주석의 한글 구결 부분만 편집해 인출한 금속활자본이다. 여기 사용된 활자는 을유년(1465)에 주조한 을유자(乙酉字)로, 이 활자는 불경을 간행할 목적으로 주조되었다. 조선이 불교 억제책을 시행했으므로 을유자는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하였다. 이후 갑진자(甲辰字)를 주조할 당시 을유자를 녹여 재사용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을유자로 간행된 자료가 희귀한 실정이며, 장서각 소장본은 국어학 및 서지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1]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의 내용 및 한반도 전래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풀이하면 '크고, 방정하고 광대한 원각(圓覺)을 설명함이 모든 불타다라 중에서 으뜸이 되는 경' 이라는 뜻이다. 줄여서 『원각경』, 『대방광원각경』, 『원각수다라요의경』, 『원각요의경』이라고도 한다. [2]
원각경은 불타다라가 693년 한역하였으며, 석가여래가 문수ㆍ보현ㆍ금강장ㆍ미륵ㆍ청정혜ㆍ위덕자재ㆍ변음ㆍ정제업장ㆍ보각ㆍ원각ㆍ현선수 등 12보살과의 문답을 통해 원각묘심(圓覺妙心)을 깨닫기 위한 수행방법에 대하여 설명한 경전이다. 원각경 에서 설명하는 교리에 대한 이해는 당나라 때의 선종과 화엄종의 교섭 경향과 관련된다. 화엄의 4대조인 징관은 수행자의 현실을 중시하여, 화엄학의 일면과 선종을 융통하는 교선일치적인 경향을 드러냈다. 이러한 징관의 사상에서 발전하여 화엄 5대조 종밀(宗密, 780~841)은 교와 선을 대등한 위치로 보았으며, 보다 철저한 교선일치설을 내세웠다. 종밀은 원각경의 교설을 단순히 사상 뿐 아니라 실천 행위로 파악하려 하였다. 이러한 결과, 종밀은 원각경의 교설을 관행하는 『원각경도량수증의(圓覺道場修證儀)』, 『원각경소(圓覺經疏)』 를 저술하여 행자가 실제 수행해야 할 법과 좌선관법의 순서를 밝혔으며, 나아가 불교를 바탕으로 유교, 도교, 불교를 통합하였다. [3]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본의 간행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이 한반도로 전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 승려인 혜거(惠居)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강의했다는 내용이 그의 전기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는 이미 전해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간행이 시작되었다. 조선에서는 세조 연간에 간경도감의 설치를 기점으로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간행되었다. [4] 세조는 호불군주(好佛君主)를 자처하여 불사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불교 경전에 대한 이해도 높아 『석보상절(釋譜詳節)』 , 『월인강천지곡(月印千江之曲)』 간행에 동참하였다. 이러한 편찬 사업 경험은 즉위 후 간경도감을 설치하는 근간이 되었다. 세조는 재위 말기인 1465년 직접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을 언해하고 간경도감에서 간행하도록 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도성 내에 원각사를 창건하고 1467년 십층탑을 세워 탑 안에 원각경 언해본과 불사리를 봉인하였다. [5]
현재 남아있는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크게 네 가지 계통으로 나눌 수 있는데 1462년 교정도감 번각본, 1464년 함허특봉 주석본 및 번각본, 1465년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본 및 번각본이다. 이 자료는 1465년 간행한 초판본이다.[6]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불타다라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 A는 B를 한역하였다 | |
종밀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 A는 B를 주석하였다 | |
종밀 | 원각경소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종밀 | 원각경도량수증의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원각경도량수증의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원각경소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 A는 B로 언해되었다 | 1454년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 을유자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세조 | 원각사수다라요의경 언해 편찬 | A는 B를 명령하였다 | |
세조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 A는 B를 언해하였다 | 1465년 |
간경도감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 A는 B를 간행하였다 | 1465년 |
간경도감 | 원각사수다라요의경 언해 편찬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 원각사지 10층 석탑 | A는 B에 보관되었다 | |
원각사 | 원각사지 10층 석탑 | A는 B가 있는 곳이다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 A는 B를 소장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465년 | 세조의 명으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가 간행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71530 | 126.988168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를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봉인했다 |
37.392258 | 127.054364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있다 |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35쪽. 해설문 속의 각종 링크 정보는 기록유산스토리사업팀에서 추가.
- ↑ '원각경',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 ↑ 심인영, 「원각사지 10층석탑 4층 부조상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논문, 2012
- ↑ 김미경, 『《圓覺經》 版本의 系統과 書誌的 特徵에 관한 硏究』, 한성대학교, 2010
- ↑ 심인영, 위의 논문
- ↑ 김미경, 위의 논문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김형광, 『(이야기)조선야사』, 서울 : 시아, 2000
- 서울시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문화재』 4 (서울: 서울특별시, 2003)
- 남희근, 『원각경강의』, 마하연,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