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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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선사 체징의 비문을 보면 비문을 지은 김영(金穎)의 벼슬은 수변부사마(守邊府司馬)로 이곳 서해안 일대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던 인물인 듯하다. 그런데 조청랑(朝請郞) 사비어대(賜緋魚袋)라는 벼슬 이름으로 보면 당나라 유학생 출신으로 그곳에서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했던 인물임에 틀림없다.[1]

이 비문을 지은 사람은 헌강왕 10년(884)에 세워진 를 썼던 김영(金穎)이다. 보조선사 체징(體澄, 804∼880년)이 돌아가고 나서 헌강왕 9년(883) 3월15일에 왕명을 받들어 비문을 짓기 시작하여 그 해에 이를 끝마쳤던 듯, 비석은 그 다음해(884) 9월19일에 세워진다. 이때 그의 벼슬은 조청랑수변부사마사비어대(朝淸郞守邊府司馬賜緋魚袋)였다. 6년이 지난 뒤인 진성여왕 4년(890) 9월15일에 세워지는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에서는 조청랑수금성군태수(守金城郡太守)사비어대로 벼슬이 올라 있다. 조청랑과 사비어대는 당나라와 관계 있는 벼슬이니 변동이 없고 수변부사마에서 금성군태수로 바뀌었으니 그 동안에 승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수변부사마나 금성군태수가 모두 청해진 부근인 서남해안 지방을 다스리는 벼슬이름이라, 김영이 청해진세력과 선종세력에 밀착된 당나라 유학생 출신의 신진세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2]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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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는 -가 비문을 지었다 김영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는 -가 비문을 지었다 김영

참고문헌

  • 곽승훈, 「김영의 보조선사비명 찬술」, 『신라사학보』 제27호, 신라사학회, 2013.4, 197-232쪽.

주석

  1. 최완수, "최완수의 우리문화 바로보기 27 - 唐 유학생 출신이 빛낸 신라 塔碑미술", 『신동아』 2001년 9월호.
  2. 최완수, "최완수의 우리문화 바로보기 27 - 唐 유학생 출신이 빛낸 신라 塔碑미술", 『신동아』 2001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