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연곡사
구례 연곡사 (求禮 鷰谷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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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구례 연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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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求禮 鷰谷寺 |
주소 |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
교구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
건립시기 | 543년 |
창건자 | 연기 |
경내문화재 | 구례 연곡사 동 승탑, 구례 연곡사 북 승탑,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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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지리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1]
내용
역사
연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연기(緣起)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남아있는 역사적 자료는 전해지지 않으며 일제시대 만우 정병헌 스님이 기록한 『지리산화엄사』말미에 '연곡사 사적'을 기술하고 있어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연곡사는 현재 남아있는 유적의 모양새나 명문 등을 살펴볼 때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는 수선도량(修禪道場)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2]그 뒤 연곡사는 임진왜란 때에 왜병에 의하여 전소된 뒤 태능(太能)이 중창하였다. 1907년에는 의병장 고광순(高光洵)이 의병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그 뒤 1942년에 다시 중건을 하였으나, 6·25전쟁 때 피아골 전투로 다시 폐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1981년 새 대웅전을 짓는 공사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시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3]
사찰이름의 유래
연기가 처음 이곳에 와서 풍수지리를 보고있을 때 현재의 법당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가운데 부분에서 물이 소용돌이 치더니 제비 한마리가 날아간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4]
지리
연곡사는 피아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직전리 조금 못미처 자리잡고있다. 피아골은 한국전쟁 직후 빨치산의 아지트였기에, 이들을 토벌하려는 군경과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 곳이었다. 피아골의 이름도 그렇게 죽어간 이들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기에 붙여진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옛날 이곳에서 오곡의 하나인 식용 피[稷]를 많이 가꾸었기 때문에 피밭골이라 하였다가 바뀐 이름이라고 한다.[5]
특징
연곡사는 1745년(영조 21)에 밤나무로 만드는 왕실의 신주목(神主木, 위패를 만드는 나무)을 봉납하는 곳으로 선정되었다. 이때 연곡사 주지가 도제조都提調로 임명되어 비로소 지방관 향리들의 경제적 침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6] 1895년쯤에도 여전히 왕가에 신주목을 봉납하였는데, 밤나무 남용으로 문제가 생겨 망할지경에 이르자 승려들이 절을 떠나 결국 절이 폐쇄되기에 이르기까지 했다고 한다.[7]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구례 연곡사 동 승탑 | 구례 연곡사 | A는 B에 있다 | |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 | 구례 연곡사 | A는 B에 있다 | |
구례 연곡사 북 승탑 | 구례 연곡사 | A는 B에 있다 | |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 구례 연곡사 | A는 B에 있다 | |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 | 구례 연곡사 | A는 B에 있다 | |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 구례 연곡사 | A는 B에 있다 | |
현각 | 구례 연곡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 현각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 태능 |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 |
구례 연곡사 | 피아골 | A는 B와 관련있다 | |
구례 연곡사 | 고광순 | A는 B와 관련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543년 | 연기가 구례 연곡사를 창건했다. |
1745년 | 구례 연곡사가 왕실의 신주목을 봉납하는 곳으로 선정되었다. |
1907년 | 구례 연곡사가 의병장 고광순이 일본과 싸우는 과정에서 불타버렸다. |
1950년 | 구례 연곡사가 한국전쟁 중 피아골 전투로 폐사되었다. |
1981년 | 구례 연곡사의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
주석
- ↑ 김위석, "연곡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이태호, 황호균, 『월간 해인』, 통권 173호, 1993. 온라인 참조: 고찰의 명보를 찾아서 - 지리산 연곡사 불교 유적 - 선사의 묘탑을 지고 비상하려는 극락조,
『월간 해인』online . - ↑ 김위석, "연곡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연곡사", 관광지정보,
『대한민국 구석구석』online , 한국관광공사. -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연곡사",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이태호, 황호균, 『월간 해인』, 통권 173호, 1993. 온라인 참조: 고찰의 명보를 찾아서 - 지리산 연곡사 불교 유적 - 선사의 묘탑을 지고 비상하려는 극락조,
『월간 해인』online . - ↑ 김위석, "연곡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김위석, "연곡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태호, 황호균, 『월간 해인』, 통권 173호, 1993. 온라인 참조: 고찰의 명보를 찾아서 - 지리산 연곡사 불교 유적 - 선사의 묘탑을 지고 비상하려는 극락조,
『월간 해인』online . - "연곡사", 관광지정보,
『대한민국 구석구석』online , 한국관광공사.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돌배게, 2009. 온라인 참조: "연곡사", 답사여행의 길잡이6 - 지리산 자락,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