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간이방
구급간이방 | |
한자명칭 | 救急簡易方 |
---|---|
로마자명칭 | Gugeubganibang |
영문명칭 | The most complet first-aid book |
작자 | 윤호 등 |
작성시기 | 1489년 |
간행시기 | 조선초기 |
소장처 |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6.6×18.6㎝ |
판본 | 목판본, 초간, 16세기 중간본 |
수량 | 1冊(권7)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목차
정의
윤호尹壕(1424~1496) 등이 성종成宗의 명을 받고 편찬한, 일반 백성들도 이 책을 활용해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방문마다 언해를 덧붙인 의학서
내용
윤호(尹壕, 1424~1496)등이 성종(成宗)의 명을 받고 편찬한 의학서이다. 일반 백성들도 이 책을 활용해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방문마다 한글로 언해를 덧붙였다. 『구급간이방』의 서문에 출간에 참여한 인물을 나열했는데, 『의방유취(醫方類聚)』의 출간에 참여했던 임원준(任元濬)과 『의방유취』의 요약판인 『의문정요(醫門精要)』를 저술한 허종(許琮, 1434~1494)이 주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실록』 20년 5월조의 “내의원 제조 영돈녕 윤호(尹壕, 1424~1496) 등이 신찬 『구급간이방』을 진상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간행하여 중외 여러 고을에 두루 반포하여 여항 소민으로 하여금 모두 얻어 볼 수 있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일반 백성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준비하여 1489년 5월에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구급방서 중에서 가장 완비된 것으로 질병을 중풍과 두통 등 127종으로 나누어 그 치료 방문을 모아 엮었다. 조선 초기의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의서 중 하나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언해 부분도 15세기 국어학 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반치음의 불규칙한 사용이나 어두의 경음화가 보이며, 약초와 관련된 독특한 어휘가 많이 보인다.[1]
구급간이방 편찬
- 편찬자들
『구급간이방』의 편찬을 총괄한 인물인 윤호는 성종의 장인이며 중종의 외할아버지이다. 그는 내의원에 있으면서 『구급간이방』의 편찬에 주력했고 고려 명장 윤관의 후손으로 성품이 검소하여 후에 우의정까지 올랐다. 임원준은 호조판서에 오른 인물로 의학에 조예가 깊어 『의방유취』, 『창진집』등을 저술했다. 또한 세조대 간행된 『구급방』도 임원준이 주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허종은 허준과 같은 집안의 사람으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의학에도 조예가 깊어 내의원 제조(提調)를 맡았다. 『향약집성방』을 언해하였고, 『의방유취』를 요약하여 『의문정요』를 저술하였다. 즉 『구급간이방』의 편찬을 주도한 인물들이 당시 사회적 명성을 지녔으면서 의학에도 조예가 깊은 자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구급간이방』를 편찬하는 일이 국가 중대사였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2]
- 편찬의도
허종이 쓴 서문에 쓰인 『구급간이방』의 편찬의도는 외딴 시골, 벽지에 있는 백성에게 생긴 병이라도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고 치료하기 위해, 부녀나 어린아이라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손쉬운 약재로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구급간이방』는 『의방유취(醫方類聚)』와 구급의서(救急醫書)인 『구급방(救急方)』을 보완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백성이 이용하기 쉽게 하기 위해 방언(방문, 약을 짓기 위해 필요한 약의 이름과 분량을 적은 글)의 형태로 기록했고 언해를 하였다. 그리고 다량으로 인쇄하여 배포하여 집집마다 이 책을 보관하게 하였다.[3] (원간본을 을해자 목판본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지방에서 복각한 것으로 보인다[4])
구급간이방의 내용과 특징
『구급간이방』는 『구급방』이나 『언해구급방』과 비교하여 2배~3배 많은 경우를 다루어 다양한 구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첫 번째 언급하는 것이 중풍(中風)인데 이는 중풍을 가장 급한 병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각 경우마다 제일 처음에는 마땅히 쓸 수 있는 처방명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증상에 따른 치료법이 나오는데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을 위주로 하였으며 모든 내용의 원문(한문) 밑에는 언해를 붙여두고 있다. 또 부녀와 어린아이에 대한 치료법을 따로 기록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를 통해 모든 연령층의 상황을 포괄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구급간이방 편찬 | 구급간이방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성종 | 구급간이방 편찬 | A는 B를 명령하였다 | 1489년 |
내의원 | 구급간이방 편찬 | A는 B를 주관하였다 | |
윤호 | 구급간이방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489년 |
윤호 | 구급간이방 편찬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윤호 | 내의원 | A는 B에 소속된다 | |
윤관 | 윤호 | A는 B의 선조이다 | |
윤호 | 정현왕후 | A는 B의 어버이다 | |
정현왕후 | 성종 | A는 B의 아내이다 | |
임원준 | 구급간이방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489년 |
임원준 | 구급간이방 편찬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임원준 | 의방유취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445년 |
임원준 | 창진집 | A는 B를 저술하였다 | 세조시기 |
임원준 | 구급방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466년 |
임원준 | 내의원 | A는 B에 소속된다 | |
허종 | 구급간이방 편찬 | A는 B에 참여하였다 | |
허종 | 구급간이방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489년 |
허종 | 내의원 | A는 B에 소속된다 | |
허종 | 의문정요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504년 |
의방유취 | 구급간이방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의방유취 | 의문정요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구급방 | 구급간이방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구급간이방 | A는 B를 소장하였다 | 현재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445년 | 임원준이 의방유취을 저술하였다 |
세조시기 | 임원준이 창진집을 저술하였다 |
1466년 | 임원준이 구급방을 저술하였다 |
1489년 | 성종이 구급간이방 편찬을 명령하였다 |
1489년 | 임원준이 구급간이방을 저술하였다 |
1466년 | 윤호가 구급간이방을 저술하였다 |
1466년 | 허종이 구급간이방을 저술하였다 |
1504년 | 허종이 의문정요를 저술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5.833435 | 128.758046 |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은 구급간이방을 소장하였다. |
시각자료
사진
- 구급간이방언해.jpg
구급간이방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86쪽.
- ↑ 김단희·김남일·안상우, 「《구급간이방》에 대한 소고」, 『한국의사학회지』23, 한국의사학회지, 2010, 50-53쪽.
- ↑ 김단희·김남일·안상우, 「《구급간이방》에 대한 소고」, 『한국의사학회지』 23, 한국의사학회지, 2010, 45-46쪽.
- ↑ 강유리, 「《구급간이방언해(救急簡易方諺解)》와《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湯液篇)》의 약재명에 대한 비교」, 공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7쪽.
- ↑ 김단희·김남일·안상우, 「《구급간이방》에 대한 소고」, 『한국의사학회지』23, 한국의사학회지, 2010, 48-49쪽.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단행본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주)구급간이방언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8.
- 논문
- 김남경, 「《구급간이방》의 국어학적 연구」,『어문학』70, 한국어문학회, 2000.
- 김현진, 「《구급방언해(救急方諺解)》의 표기법과 음운현상 연구」, 공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