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영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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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영통사
(開城 靈通寺)
대표명칭 개성 영통사
한자 開城 靈通寺
주소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용흥리
건립시기 1027년
경내문화재 개성 영통사 대각국사비



정의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용흥리 오관산 기슭의 영통동(靈通洞)에 있는 절.[1]


내용

영통사는 1027년(현종 18)에 건립되었다. 고려 태조가 세운 승복원 자리에 세워졌기 때문에 영통사는 고려 왕실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어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참배하였던 대찰이었다.[2] 1036년(정종 2)에 왕이 자식 넷이 있을 경우에는 한 자식의 출가를 허락한다는 법을 제정한 뒤 이 절에 계단(戒壇)을 설치하고 경률(經律)을 익히는 한편 시험을 치르는 장소로 만들었다.[3] 왕실이 주관하는 재(齋)나 기신도량(忌辰道場)[4]을 많이 봉행하였고, 당시에는 인연이 있는 왕들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진영각(眞影閣)도 있었다고 한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이곳에서 출가하여 교관(敎觀)을 배우고 천태종을 열었으며, 입적한 후 1125년에는 대각국사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영통사는 16세기 무렵 화재로 소실되어 오래도록 폐사지로 남아 있었다. 1998년 북한이 3년여에 걸쳐 발굴 작업을 시행하였고, 2002년 11월부터는 대한불교천태종과 함께 복원 사업을 시작해 2005년 10월에 29개의 전각을 복원하였다.[5][6]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고려 태조 승복원 A는 B를 창건하였다
승복원 개성 영통사 A는 B에 있었다
의천 개성 영통사 A는 B에서 출가하였다
개성 영통사 대각국사비 개성 영통사 A는 B에 있다
개성 영통사 대각국사비 의천 A는 B를 위한 비이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027년 개성 영통사가 건립되었다
1065년 의천개성 영통사에서 출가하였다
1125년 개성 영통사대각국사비가 건립되었다
1998년 북한에서 개성 영통사 발굴작업을 시작하였다
2005년 대한불교천태종 교단과 북한의 조선경제협력위원회가 개성 영통사의 29개의 전각을 복원하였다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영통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5년 8월 26일.
  2.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북한의 전통사찰』, 도서출판 양사재, 2011. 온라인 참조:"영통사", 북한의 전통사찰,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영통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5년 8월 26일.
  4. 왕실에서 국왕이나 선왕후의 기일에 제사 지내는 불교의식법회,"기신도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북한의 전통사찰』, 도서출판 양사재, 2011. 온라인 참조:"영통사", 북한의 전통사찰,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6. 김용태, "영통사(靈通寺)",『조선왕조실록사전』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평화문제연구소, 「남북이 함께 복원한 개성 영통사」, 『통일한국』264권 0호, 평화문제연구소, 2005.
  • 박대남, 「고려시대 대표 사찰, 영통사」, 『북한』통권 536호, 북한연구소, 2016.
  • 김용태, "영통사(靈通寺)",『조선왕조실록사전』online,한국학중앙연구원.
  •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북한의 전통사찰』, 도서출판 양사재, 2011. "영통사", 북한의 전통사찰,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영통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