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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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康津 月南寺址 眞覺國師碑)
대표명칭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영문명칭 Stele for
한자 康津 月南寺址 眞覺國師碑
주소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6-1(월남리) 월남사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313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찬자 비문: 이규보(李奎報), 음기: 최자(崔滋)
서자 비문: 김효인(金孝印), 음기: 탁연(卓然)
각자 미상
서체 해서(楷書)
승려 혜심(慧諶)
비문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문


정의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지(月南寺址)에 있는 고려시대의 승려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1178-1234)의 탑비.

내용

개요

전체 높이 3.58m, 비신 높이 2.6m, 너비 2.3m. 탑비는 대석(臺石), 귀부(龜趺),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비는 혜심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탑비의 건립 연대는 1234년(고종 21) 혜심이 입적한 이후인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1]

비문은 이규보(李奎報)가 짓고 김효인(金孝印)이 썼으며, 뒷면의 음기(陰記)는 혜심의 입적 후 16년이 지난 1250년(고종 37)에 최자(崔滋)가 짓고 탁연(卓然)이 썼다.[2]

여의주를 머금고 있는 귀부는 사실적 조각 기술을 보이는 조형이며, 비좌(碑座)에는 간결하게 구름무늬를 새겼다.[3] 비신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4]

비문

탑비는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을 판독하기 어려운 상태이며, 『동국이상국집』, 『동문선』, 『조선금석총람』 등에 수록된 글을 통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5]

비문은 수선사(修禪社)의 제2세 사주(社主)인 진각국사가 향공진사의 아들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한 후 보조국사 지눌에게 출가하여 간화선을 수행하고 지눌에 이어 수선사의 사주가 되어 강종(康宗)의 지원으로 수선사를 확장하고 집정자 최우(崔瑀)는 두 아들을 국사에 출가시키는 등 연관을 맺고 월등사(月燈寺)에서 입적한 생애를 기술하였다. 음기는 음기 건립 사실과 승려와 재가 문도들을 열거하였다.[6]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문화재청
  2. "월남사지진각국사비",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3.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두산백과
  4.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문화재청
  5. 김위석, "혜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월남사지진각국사비",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