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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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언해
한자명칭 家禮諺解
영문명칭 A Korean annotation of family rites
작자 신식
간행시기 1632년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A5E-68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2.3×20.8cm
판본 목판본
수량 4책
표기문자 한글,한자



정의

1632년(인조3) 신식(申湜, 1551~1623)이 『가례(家禮)』를 언해한 책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1632년(인조3) 신식(申湜, 1551~1623)이 『가례(家禮)』를 언해한 책이다. 『가례』는 주희(朱熹)가 가정에서 행하는 예절을 모아 엮은 것으로, 통례(通禮),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장례(葬禮), 제례(祭禮) 등의 예절을 다루고 있다. 이 『가례』는 국가와 사대부가에서 행하는 모든 예식(禮式)을 해석했으며, 모든 예식이 이에 의거해 충실히 실행되어 왔다. 따라서 『가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가례언해』는 신식이 만년에 언해한 것을, 그의 아들 신득연(申得淵, 1585~1647)이 1632년 강원도관찰사 재직 당시 원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범례와 신득연의 발문을 보면, “예악에 밝았던 신식이 편찬 언해한 것인데, 이 유고가 세상에 전하지 못 하고 인멸될 것을 우려하여 3개월에 걸쳐 간행하였다.”고 하였다.[1]

『가례』에 대하여

『가례』는 송나라 학자 주희(1130~1200)가 편찬한 가정의 예법에 관한 책이다. 주희가『가례』를 저술한 동기는 예는 근본과 문(文)이 있는데, 가정에서 시행되는 것 가운데 명분을 지키고, 애경(哀敬)을 행함은 근본이며 관혼상제에 대한 의식 절차는 문식(文飾)이므로 근본과 문식을 동시에 이루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례』는 준용되어 국가와 사대부가의 생활의 근간이 되어 왔는데 풍속과 관념이 중국과 달라서 시행상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예를 지키고 의식을 잘 이행하는 것이 사대부의 명예를 유지하고 체면을 지킨다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나중에는 『가례』에 따르지 않는 천신은 인도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그 여파로 수많은 의견과 여러가지를 보충한 주석서들이 출간 되었다. 대표적으론 조호익(曺好益)의 『가례고증(家禮考證)』, 안건(安愆)가례부췌(家禮附贅), 유계(兪棨)가례원류(家禮源流) 등이 있다. 이처럼 사대부에서 다루는 중요한 책이니 널리 알리기 위해서 한글로 언해된 것이다. [2]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신식 가례언해 A는 B를 저술했다 1632년
신득연 신식 A는 B의 자식이다
가례 가례언해 A는 B를 언해하였다 1632년
주희 가례 A는 B를 저술했다
조호익 가례고증 A는 B를 저술했다
안건 가례부췌 A는 B를 저술했다
유계 가례원류 A는 B를 저술했다
가례고증 가례 A는 B의 주석본이다
가례부췌 가례 A는 B의 주석본이다
가례원류 가례 A는 B의 주석본이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632년 가례언해이 간행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가례언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있다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32쪽.
  2. 이종철, 가례언해,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08일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이문주, 「《주자가례》의 조선 시행과정과 가례주석서에 대한 연구」, 『儒敎文化硏究』, Vol-16, 2010, 37-61쪽.
    • 이혜순, 「16세기《주자가례》담론의 전개와 특성」, 『정신문화연구』, Vol-29, 2006, 5-33쪽.
    • 장동우, 「조선후기 가례 담론의 등장 배경과 지역적 특색」, 『국학연구』, Vol-13, 2008, 97-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