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운룡백자주해(靑花雲龍白磁酒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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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청화 안료로 구름과 용을 그린 청화백자 술 항아리.

개설

1430년(세종 12) 7월에 명나라 선덕제가 환관 창성(昌盛)과 윤봉(尹鳳)을 보내어 여러 가지 물품을 전했는데, 그중에 청화사자백자 3탁과 청화운룡백자주해(靑花雲龍白磁酒海) 3개가 있었다(『세종실록』 12년 7월 17일). 『세종실록』「오례」에 청화운룡백자주해의 도해가 실려있어 대략의 형태와 문양을 추정할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주해(酒海)라는 이름은 일찍이 주왕(紂王)이 달기(妲己)를 위해 궁궐 안에 판 술연못에서 유래하였다. 주해는 주로 술을 담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주해의 형태는 중국의 경우 원말·명초에 새롭게 등장했다. 조선시대의 주해는 고려시대의 매병 기형과 달리 구연부가 직립하여 넓게 벌어진 형태였는데 이후 조선시대 항아리의 한 형식으로 계속 제작되었다.

형태

1430년에 명나라 황실에서 하사받은 청화운룡백자주해는 『세종실록』「오례」 도설에 그려진 청화백자주해의 본보기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청화백자주해는 구연부가 직립하고, 어깨가 풍만하게 벌어지다 저부로 내려가면서 점점 좁아지는 형태를 하고 있다. 뚜껑은 가운데에 보주형(寶珠形)의 꼭지가 있고, 완만한 곡선으로 내려오다가 저부에서 살짝 올라간 형태를 하고 있다. 문양은 호와 뚜껑 전면에 가득히 시문되었는데, 호의 구연부에는 선문을 그려 공간을 구획하고 그 사이에 간략화된 운문을 배치하였다. 견부에는 귀면문, 저부에는 연판문을 각각 시문하여 장식하였다. 그 사이에는 S자형으로 몸을 뒤틀고 있는 발톱이 세 개인 삼조룡과 십자형 구름을 시문하였다.

청화운룡백자주해의 문양과 형태를 추정할 수 있는 참고 자료로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청화백자운룡문 항아리를 들 수 있다. 기형은 구연부가 직립하고 어깨가 둥그렇게 펼쳐지면서 부드러운 S자 곡선을 이룬다. 이 유물은 명나라가 주변국에 대한 하사품으로 제작한 그릇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세종실록』「오례」에 실린 청화백자주해는 세종 연간에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중국산 청화백자운룡문 항아리를 모사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영원, 『조선시대 도자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 김영원, 『조선전기 도자사』, 일조각, 2011.
  • 방병선,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
  • 이현정, 「朝鮮 前期 白磁에 보이는 明代 磁器의 影響」,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 장기훈, 「조선시대 백자용준의 양식변천고」, 『미술사연구』 12, 미술사연구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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