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술옥사(壬戌獄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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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년(숙종 8) 10월 김환·김중하·김익훈이 허새·허영 등의 복평군 옹립 역모를 각각 세 차례 고변(告變)한 사건.

개설

임술옥사(壬戌獄事)는 김석주(金錫冑) 등 보사공신(保社功臣)들이 허새(許璽)·허영(許瑛) 등 남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서 고변한 사건이다. 그런데 고변이 허위로 판명나자, 이를 두고 조지겸 등 젊은 대간(臺諫)과 송시열 등 대신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또한 임술옥사의 배후 조정자로 김석주가 드러나자, 보사공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속히 약해졌다.

배경

1681년(숙종 7) 8월 21일 감시(監試)에서 남인이 역모(逆謀)에 관련되었다는 익명서(匿名書)가 나타났다[『숙종실록』 7년 8월 21일]. 이에 김석주는 김환(金煥)에게 허새·허영의 모반을 부추기도록 하고, 전익대에게는 유명견·이덕주를 감시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김석주가 사행(使行)을 가게 되자 어영대장김익훈(金益勳)이 그 일을 대신했다. 이때 김익훈은 이광한(李光漢) 등과 더불어 정찰을 강화했다. 김환에게는 공금(公金)을 주어 김중하(金重夏)와 공모케 하고, 한수만에게는 화약(火藥)을 주어 이회와 공모하여 허새를 정탐케 했다.

발단

김익훈이 주도한 정찰 과정에서 도리어 김환이 역모를 꾀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불안을 느낀 김익훈은 재빨리 고변하도록 김환을 다그쳤다. 이에 김환은 전익대와 함께 허새의 역모를 고변하려 했으나 전익대가 거절하자, 그를 감금하고 10월 21일에 이회·한수만(韓壽萬)과 함께 허새·허영·이덕주(李德周)의 역모 관련 문건을 바치며 고변했다(『숙종실록』 8년 10월 21일).

경과

허새는 모역 사실은 자복했으나 복평군(福平君) 추대에 대해서는 자백하지 않았고, 허영은 허새의 권유에 따라 역모에 참여했다고 진술했다. 이덕주는 모주(謀主)로 지목되어 물고(物故)를 당했다.

그런데 10월 23일, 이번에는 김중하가 민암(閔黯)·심삼원(沈三元) 등을 재차 고변했다. 그는 심삼원·민암과 접촉하여 낙서령(洛西令) 이수윤(李秀胤)의 부운계(浮雲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고변했다. 그러나 김중하의 고변이 거짓이라고 탄로나자 심삼원·민암 등은 석방되고 김중하는 정배(定配)되었다[『숙종실록』 8년 10월 21일].

10월 27일에는 김익훈이 아방(兒房)에서 밀갑(蜜匣)으로 세 번째로 고변했다(『숙종실록』 8년 10월 27일). 그는 김환이 고변하기 전에 핵심 증인인 전익대를 어영청에 가두었으나 추국청에서는 전익대에 대해 아무런 조처가 없었다. 초조해진 김익훈은 직접 아방에서 밀계했으나, 전익대의 진술은 어긋났고 유명견이나 이덕주의 모역도 밝혀내지 못했다. 또한 전익대를 재신문하자, 김환의 꾐과 위협에 굴복해 무고했던 사실을 자백했다. 결국 허새·허영·이덕주는 처형되었지만, 유명견·민암은 처벌 받지 않았고, 오히려 김환·김중하가 유배되고 전익대는 처형되었다.

이후 김익훈·김환의 행위와 처리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1682년 10월에 죄수들을 석방했는데 여기에는 김환도 포함되었다. 이에 조지겸(趙持謙) 등은 김환과 전익대 간의 처벌이 불공평하다고 비판했다. 남구만(南九萬)도 허새를 제외한 단순 불만 표출 세력마저도 고변한 김환과 김중하의 행위는 무고(誣告)라고 주장했다.

김석주·김만기(金萬基) 등은 김익훈을 옹호한 반면에 조지겸·한태동(韓泰東) 등은 무고임을 주장하고 보사공신 추록까지 거론하며 비판했다. 심지어 박태유(朴泰維)는 김익훈의 정배를 주장했고, 한태동은 김익훈의 평소 품행과 정치적 변절까지 낱낱이 거론하며 맹렬히 비난했다.

이때 송시열은 김익훈에 대해 처음에는 비판적이었으나, 김석주와 김만기 등을 만나면서 의견을 바꾸었다. 그는 이황(李滉)과 조목(趙穆)의 사례와 주자(朱子)와 유평(劉坪)·이신보(李信甫)의 관계를 거론하며 김익훈을 비호했다(『숙종실록』 9년 1월 19일). 송시열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서인(西人)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기되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했다.

참고문헌

  •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강주진, 『이조 당쟁사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71.
  • 이은순, 『조선 후기 당쟁사 연구』, 일조각, 1988.
  • 이태진, 『조선 후기의 정치와 군영제 변천』, 한국연구원, 1985.
  • 이태진·김백철 편, 『조선 후기 탕평 정치의 재조명(상)』, 태학사, 2011.
  • 이희환, 『조선 후기 당쟁 연구』, 국학자료원, 1995.
  • 홍순민, 「숙종 초기의 정치 구조와 「환국」」, 『한국사론』15,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