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고(義成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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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초까지 왕실에 필요한 재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창고.

개설

고려 충렬왕 이후 왕실의 사적 용도가 많아지면서 그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의성고를 설치하였다. 조선이 건국한 이후에도 고려의 제도를 따라 설치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가 원(元)나라를 섬기면서 대대로 원의 공주를 맞이하자 궁중의 지출이 많아졌다. 또 연경(燕京)에 친조(親朝)하거나 그곳에 머무를 때 드는 재물도 고려가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이에 의성고와 덕천고(德泉庫) 등의 창고를 설치하여 이 같은 용도에 대비토록 하였다.

조직 및 역할

조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1395년(태조 4)에 이색(李穡)을 의성고 등 5고(五庫) 도제조(都提調)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의성고를 담당하는 제조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태조실록』 4년 12월 22일). 또한 실무를 담당하는 별감(別監)이 있었다.

변천

조선초에 설치된 의성고는 1403년(태종 3) 쓸데없는 관원을 없애고 관제를 고칠 때 관아와 그 관원이 내자시(內資寺)에 병합되면서 소멸하였다(『태종실록』 3년 6월 29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삼봉집(三峰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최정환, 『역주 『고려사』 백관지』, 경인문화사, 2006.
  • 한충희, 『조선초기의 정치제도와 정치』, 계명대학교출판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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