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손위종사(世孫衛從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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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왕세손(王世孫)의 호위를 맡았던 종6품의 서반(西班) 관청.

개설

조선시대에 왕세손을 위한 강학(講學) 기구와 시위(侍衛)를 맡은 호위 기구가 설치된 것은 세종 때 한 차례, 인조 때 한 차례, 영조 때 두 차례, 순조 때 한 차례 등 모두 다섯 차례였다. 강학 기구는 강서원(講書院), 호위 기구는 위종사(衛從司)라 하였는데, 두 기구는 항상 함께 설치되었다. 그 가운데 영조 때의 두 번째 사례의 경우, 1789년(영조 35)에 새로 왕세손으로 책봉된 뒷날의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죽임을 당함으로써 왕위 계승 후보자가 됨에 따라 종래의 왕세손과는 격을 달리하여 강학 기구와 호위 기구를 운영하게 되었고, 이때의 내용이 정조 때 편찬한 법전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수록되었다. 또한 순조 때도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사망함에 따라 왕세손이 왕위 계승자로 선정되어, 정조의 전례를 따르게 되었다.

설치 경위

조선시대에 세손위종사가 처음 설치된 것은 1448년(세종 30)의 일이었다. 이때 후일 단종으로 즉위하는 왕세손의 관속으로 강서원(講書院)과 함께 위종사를 설치하였다. 소속 관원으로는 종7품의 좌·우장사(左·右長史)를 각 1명씩 두되, 다른 관청의 관원이 겸임하게 하였다. 이때의 세손위종사는 2년 뒤 문종이 즉위하여 왕세손이 왕세자가 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그 뒤 1648년(인조 26)에는 뒷날 현종으로 즉위한 왕세손의 책봉 의례를 의논하는 과정에서 위종사 설치가 논의되어, 종6품의 좌·우장사 각 1명, 종7품의 좌·우종사(左·右從史) 각 1명 등 총 4명을 겸임직으로 두도록 하였다. 이때의 세손위종사는 강서원과 함께 창경궁에 설치되었는데, 이듬해 효종이 즉위함에 따라 폐지되었다.

영조 때의 첫 번째 세손위종사는 1751년(영조 27)에 효장세자(孝章世子)의 아들 의소세손(懿昭世孫)을 책봉하는 과정에서 인조 때와 같은 직제로 설치되었으나, 이듬해에 의소세손이 사망함으로써 폐지되었다. 이어서 1759년(영조 35)에는 후일 정조가 되는 왕세손을 위해 위종사를 설치하였는데, 이때의 관원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대전통편(大典通編)』에 규정된 세손위종사의 직제가 인조 때와 같은 것으로 볼 때, 인조 때의 예에 따라 설치한 것으로 짐작된다. 영조는 1761년(영조 37)에 장헌세자(莊獻世子) 곧 사도세자가 죽자, 이듬해에 명(明)나라의 태조홍무제(洪武帝)가 황태손(皇太孫)을 저궁(儲宮)으로 책봉한 예에 따라 왕세손을 동궁(東宮)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강서원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별칭인 춘방(春坊)으로, 위종사를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별칭인 계방(桂坊)으로 부르도록 하였다. 그에 따라 세손위종사의 위상은 이전보다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마지막으로 세손위종사가 설치된 것은 1829년(순조 29)으로, 관원의 구성은 인조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순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던 효명세자가 1830년(순조 30) 봄에 사망하자 순조는 그해 가을에 영조 때의 전례를 따라 왕세손은 동궁으로, 세손위종사는 계방으로 부르도록 하였다. 이때의 세손위종사는 왕세손이 1834년 헌종으로 즉위할 때까지 유지되어, 가장 오래 지속되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도 세손위종사는 장사 2명, 종사 2명으로 구성된다는 내용이 재확인되었는데, 이때도 좌‧우로 구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후 세손위종사가 설치된 일은 없었다.

조직 및 임무

인조 때 이후 세손위종사의 관원으로는 항상 종6품의 좌·우장사 각 1명, 종7품의 좌·우종사 각 1명 등 총 4명을 두었다. 이들은 서반의 직책이었으나, 왕세손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일을 맡았으므로 학문과 덕행을 중시하여 선발하였다. 이속(吏屬)으로 서리(書吏) 2명, 청지기 1명과 도예(徒隸)로 사령(使令) 5명, 수공(水工) 1명이 배정되었고, 병조에서 군사 2명을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세손위종사의 관원은 4명이 번갈아가며 매일 1명씩 입직(入直)하여 강서원의 시강(侍講)에 참여하였다. 왕세손이 하례(賀禮)를 받을 때와 세손사(世孫師)·세손부(世孫傅) 등 스승과 상견례를 할 때, 장사는 흑단령(黑團領)을 입고 검(劒)을 차고서, 종사는 융복(戎服)을 입고 활과 화살을 차고서 좌우로 나뉘어 당상(堂上)에서 왕세손을 호위하였다. 왕세손이 궁궐 밖으로 거동할 때면 장사는 왕세손이 타는 수레인 ‘연(輦)’을 양옆에서 호위하였으며, 좌종사는 인신(印信)을 받들고 앞에서 가고, 우종사는 강서원 행렬의 뒤를 따라가며 호위하였다. 왕세손이 거동할 때 호위하는 군사와 의장(儀仗)은 우장사가 관할하여 지휘하였다.

참고문헌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육전조례(六典條例)』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민현구, 「세손위종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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