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배(白磁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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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유와 백자토로 제작된 술잔.

개설

조선시대에 제작된 백자질의 잔을 백자배(白磁杯)라고 부른다. 백자배는 대부분 왕실과 지방관아의 의례용으로 쓰였다. 조선시대에 배(杯)는 백자 외에도 분청사기나 청화백자, 도기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연원 및 변천

성종 연간의 백자 제작은 초기에 비해 매우 안정적이고 생산량 또한 상당히 증가하였다. 특히 성종 연간에는 사치 풍조가 만연해지면서 백자와 청화백자의 수요량이 급증하고,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청화백자의 양도 만만치 않았을 정도로 백자 전반의 소비가 증가하였다. 1491년(성종 22)에는 성종이 승정원에 백자배를 하사하고 “이 술잔은 맑고 티가 없어서, 술을 따르면 티끌이나 찌꺼기가 다 보인다. 이를 사람에게 비유하건대, 마치 대공지정(大公至正)하여 한 점의 허물도 없게 되면 선(善)하지 못한 일들이 용납될 수 없는 것과 같다.”라고 전교하였다(『성종실록』 22년 12월 7일). 이 기록은 당시 분원의 백자 생산과 수요 상황을 잘 보여주며, 특히 백자의 품질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형태

백자배는 의례용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주로 고족배(高足杯)가 많았으며, 크기는 대·중·소로 나뉠 만큼 다양했다. 굽다리가 있는 배는 조선전기에 집중 생산되었으며, 이후는 다양한 기형의 백자배가 생산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전해지는 백자배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물이 없어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서 성종이 백자배의 아름다움을 극찬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 시기에 제작된 백자들은 이미 최상품임을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강경숙, 『한국 도자사의 연구』, 시공사, 2000.
  • 김영원, 『朝鮮前期 陶磁의 硏究―分院의 設置를 中心으로』, 학연문화사, 1995.
  • 김영원, 『조선시대 도자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 방병선,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