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사(行人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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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 황제의 성지(聖旨)를 전달하고 책봉 등의 조선에 대한 외교 업무를 담당하였던 중앙관청.

내용

행인사는 1380년(명 홍무 13)에 설치된 관청으로 정9품 행인(行人), 종9품 좌·우행인(左·右行人)을 두었는데 뒤에 행인은 사정(司正)으로, 좌·우행인은 좌·우사부(左·右司副)로 개칭되었다. 명대 행인은 상사(賞賜), 위문, 군무(軍務), 제사, 구휼, 조세징수 등 국내 업무뿐만 아니라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성지를 전달하고, 조서와 칙서를 반포하였으며, 책봉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건문제가 등극하면서 폐지되었다가 영락제가 부활시켜 명말까지 유지되었다.

행인사 관원인 행인은 사신으로 조선에 많이 파견되었다. 행인은 직급은 낮으나,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로 성장하는 부류로 환관 출신 사신과 달리 외교 업무에 충실하였다. 행인 출신 사신은 명나라 말까지 지속되었으나, 주로 명의 국내정세가 혼란하였던 태조·태종 등 조선초기에 집중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유귀지(劉貴篪)·여연(呂淵)·이관(李寬)·장근(張瑾)·고윤(高胤)·장승헌(張承憲)·소일악(簫一鶚)·구희직(甌希稷) 등이 있다. 명나라의 철저한 문서 중심의 행정 체계로 인하여 조선사행은 북경에서 외교 활동이 제한적이었다. 조선사행은 북경에서 행인사 행인을 접촉하여 명나라의 정책 결정 과정을 파악하기도 하여, 행인사가 조선사행의 주요 외교 통로가 되었다.

용례

前此爾國使臣 皆以行人司員差之 未有堂上員差往者 今朝廷以爾國事大至誠 特以如吾年老之人充使 此意傳說宰相(『성종실록』 19년 윤1월 15일)

참고문헌

  • 『대명회전(大明會典)』
  • 김경록, 「명대 공문제도와 행이체계」, 『명청사연구』 26, 2006.
  • 김경록, 「조선시대 사대문서의 생산과 전달체계」, 『한국사연구』 134, 2006.
  • 김경록, 「조선초기 대명외교와 외교절차」, 『한국사론』 4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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