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번(退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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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 서울로 번상 근무를 마치고 근무처에서 나오는 것.

개설

1628년(인조 6) 9월 병조(兵曹)에서는 번상(番上) 군인의 무예 훈련에 대하여 “상번(上番)한 군사들 중에서 힘이 세고 용감한 자를 따로 뽑아 편성하고 훈련도감(訓鍊都監)포수(砲手) 중 기예가 이루어진 자로 30명을 뽑아 교사를 정해 준 다음 검술을 가르치게 하여 정해진 기일 안에 입격(入格)한 자에 대해서는 한가한 시간을 주어 더욱 기예를 익히게 하는 한편, 월등하게 뛰어난 자에 대해서는 본조에서 별시(別試)를 보여 시상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을 격려시킵니다. 그리고 퇴번(退番)할 때에는 따로 상첩(賞帖)을 지급하여 거주하는 고을로 하여금 호역(戶役)을 헤아려 덜어 주게 하고, 상번할 때에 본조에서 다시 그 검술을 시험하여 그동안의 숙련도를 고과(考課)하여 상벌을 실시하면 될 것입니다.” 하고 건의하였다(『인조실록』 6년 9월 29일). 이 가운데 상번과 퇴번을 각각 대비시켜 말하고 있다. 즉, 상번은 군인들이 고향에서 근무처로 올라오거나 근무처에 있는 것을 말하고, 퇴번은 군인들이 근무처에서 나오거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의 중앙군은 임진왜란 이후 등장한 훈련도감 군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번상제의 형태로 군역을 치렀다. 훈련도감 군인은 장번(長番) 병으로서 서울에 상주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군인들은 번상제의 형태로 군역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조선전기 중앙군의 대표적 병종(兵種)인 갑사(甲士)정병(正兵), 조선후기 어영청(御營廳)·금위영(禁衛營) 등 군영의 번상병들 모두 번상제의 형태로 군역의 의무를 수행하였다. 즉, 이들 군인들은 번상제에 의하여 당번(當番)이 되면 고향에서 근무처로 이동하여 일정 기간 상번을 서고, 근무 기간이 끝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번을 되풀이하였다.

변천

상번이나 퇴번의 과정은 매우 힘들었다. 강원도나 전라도, 경상도의 연해·산간벽지에 거주하는 군인들은 서울로 올라오는 데만 8~9일이 걸렸다. 또 상번이나 퇴번 과정에서 강물에 빠져 죽거나 산을 넘다가 다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 이러한 상번과 퇴번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는 대립제(代立制)가 등장하고, 군인들은 군역을 지는 대신 포(布)를 납부하는 납포군(納布軍)화 경향이 심화되었다.

참고문헌

  • 김종수, 『조선 후기 중앙 군제 연구: 훈련도감의 설립과 사회 변동』, 혜안, 200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