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아월진(帖兒月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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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9년 원나라 국사인 파스파에 의해 창제되어 몽골제국 내에서 위구르진 문자와 함께 공식적으로 사용된 문자.

개설

첩아월진(帖兒月眞)은 파스파(Phags-pa) 문자를 지칭하는 몽골어 ‘두르벨진[우숙](dӧrbeljin[üsüg])’의 음역인 것으로 추정된다. 파스파 문자 모양이 사각형이기 때문에 당시 몽골에서는 흔히 그 모양을 가지고 네모 문자라는 뜻의 ‘두르벨진 우숙’이라 불렀다.

첩아월진은 파스파 문자, 팔사파 문자, 몽골 신자, 방형 몽골 문자라고도 부른다. 1269년 원의 황제 쿠빌라이는 당시 사용하고 있던 몽골 비칙 문자가 원에 복속된 여러 민족들의 언어를 표기하는 데 완벽하지 못하다 하여 티베트 고승 파스파로 하여금 새로이 문자를 만들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파스파 문자이다.

몽골인들은 이 문자 모양을 가지고 ‘방형문자(dörbeljin bičig)’라 부른다. 파스파 문자가 제정된 이래로 국가 공식문자로 채택이 되어 국가의 공문서를 이 문자로 기록하게 되었다.

내용 및 특징

몽골제국은 다양한 국가와 민족을 포함시킨 대제국이었다. 따라서 파스파 문자는 몽골어·중국어·티베트어·튀르크어 등 여러 민족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공용 문자로 고안되어 1269년에 공표되었다.

이 문자는 티베트 문자를 변형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티베트 문자와 모양도 비슷하다. 그러나 티베트 문자는 가로로 쓰는 반면 이 문자는 세로로 쓴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몽골제국 시기에는 고려에서 파스파 문자 교육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의 사역원에서도 몽골어를 가르쳤기 때문에, 이 문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몽고자학(蒙古字學)이 두 개의 모양이 있으니, 첫째는 위올진(偉兀眞)이요, 둘째는 첩아월진(帖兒月眞)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5년 2월 4일).

파스파 문자가 널리 사용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있으나, 이 문자가 처음부터 공문서만 쓰기 위한 목적으로 창제되었기 때문이 대중화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변천

파스파 문자는 몽골제국 시기에 100여 년간 공식 문서에 사용되었으나 용도의 효용성 면에서 위구르진 문자를 능가하지 못하여 원 제국의 몰락과 함께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16세기 말 몽골에 티베트 불교가 재전파되면서 달라이 라마의 인장이나 몽골 귀족들에게 수여하는 인장에 파스파 문자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파스파 문자는 한글 등 동아시아의 다른 표음문자 창제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파스파 문자가 한글의 음절 구성 원리나 글자 모양 등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설도 있다.

이 문자로 기록되어 현전하는 유물로는 원나라 때의 문서와 비문, 그리고 패자(牌子)와 인장, 화폐 등이 있으며 대부분은 원 제국 시기에 해당한다. 그 중 한국에 남아 있는 자료도 있다.

참고문헌

  • Ts. Shagdarsuren, "Correlation between Korean and Mongolian scripts", 『몽골학』제4호, 한국몽골학회, 1996.
  • Ц. Шагдарсүрэн, Монголчуудын бичиг үсгийн товчоон, Урлах эрдэм, 2001. (Ts. 샥다르수렝, 『몽골인들의 문자의 약사』, 우를라흐 에르뎀, 2001.)
  • Б. Сумьяабаатар, Монгол, солонгос туургатны угсаа гарал, хэлний холбооны асуудалд, 1975. (B. 수미야바아타르, 『몽·한 민족의 기원과 언어 관계 문제』,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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