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계변무(宗系辨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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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 초기부터 선조대까지 200여 년 동안 명나라의 『대명회전(大明會典)』 등에 잘못 기록된 태조이성계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고 주청한 사건.

개설

종계변무는 명의 『대명회전』과 『명태조실록』에 조선태조이성계가 고려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들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내용을 시정하기 위한 외교 교섭이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왕실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중대 사안이었으나, 명은 태조홍무제(洪武帝)의 유훈을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명분을 들어 조선의 요구를 신속하게 처리해 주지 않았다. 조선의 종계변무 노력은 중종대 『대명회전』이 전래되면서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마침내 결실을 맺기에 이르렀다.

역사적 배경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으나, 조선으로서는 단순한 오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화이론(華夷論)에 입각한 조공 질서 속에서 충과 효를 체제의 기본 이념으로 삼은 조선 왕조에게 이보다 큰 치명적 결점은 없었다. 나아가 그것이 천자의 나라 명 왕조의 기본 법전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였다.

종계변무는 “중화왕조인 명이 아니라 호족왕조 원에 협력한 친원파 이인임의 아들로 네 왕을 시해한 이성계와 그 후손이 통치하는 조선은 자신의 조상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으므로 신하들에게 충성을 강요할 명분이 없다.”는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는 사안이었던 것이다. 이에 조선은 국초부터 무려 200년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주청사를 파견하여 시정하려는 외교적 노력에 국력을 기울였다.

발단

고려말 명나라로 도망간 윤이(尹彛)와 이초(李初)가 이성계는 고려의 권신(權臣) 이인임의 후손이라고 말한 것을 명나라에서 그대로 믿고 『대명회전』에 기록해 놓았다. 조선 왕실로서는 매우 모욕적인 일이어서 수정하는 일에 적극적이었으나, 명나라는 이를 조선을 복속시켜 길들이는 수단으로 삼았다.

종계변무 문제는 1394년(태조 3) 조선에 온 명의 사신 황영기(黃永奇)가 조선인 해적 사건을 힐책할 무렵에 드러났다. 황영기가 가져온 축문(祝文) 내용에 태조이성계를 이인임의 아들로 기재해 놓았던 것이다. 명이 이성계의 정적(政敵)이었던 이인임을 그의 아버지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선 왕실의 입장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굴욕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성계가 고려말의 공민왕·우왕·창왕·공양왕 4명의 왕을 시해하였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던 것이다.

1402년(태종 2) 성절사조온(趙溫)이 가져온 「황명조훈(皇明祖訓)」 속에 조선 왕의 종계를 여전히 이인임의 후손으로 기록해 놓은 사실이 밝혀졌다. 조선으로서는 이를 바로잡아 왕조의 정통성을 회복해야만 했다.

경과

1403년(태종 3) 태종은 명에 사은사이빈(李彬)과 민무휼(閔無恤)을 파견하면서 종계변무를 위한 주본(奏本)을 보냈다. 그러나 명의 태조홍무제가 제정한 「황명조훈」 자체는 절대 개정할 수 없는 것이어서 종계변무는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1518년(중종 13) 귀국한 주청사이계맹(李繼孟)은 『대명회전』「조선국 조(朝鮮國條)」에 명나라태조의 유훈이라고 해서 왜곡된 내용이 정정되지 않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남곤(南袞)이 다시 주청사로 가서 시정을 요구하는 등 중종 시기만 해도 여러 차례 사신을 보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1584년(선조 17) 황정욱(黃廷彧) 등이 종계변무주청사로 갔을 때 정정하기로 합의를 본 후, 1588년(선조 21) 사은사유홍이 관련 내용이 수정된 만력중수본(萬曆重修本) 『대명회전』을 가지고 귀국함으로써 국초부터 시작된 종계변무의 현안은 200년 만에 해결을 보았다.

참고문헌

  • 박원호, 『명초조선관계사연구』, 일조각, 2002.
  • 권인용, 「명중기 조선의 종계변무와 대명외교」, 『명청사연구』 24, 2005.
  • 김경록, 「조선초기 종계변무의 전개양상과 대명관계」, 『국사관론총』 108, 2006.
  • 이성규, 「명·청사서의 조선 ‘곡필’과 ‘변무’」, 『오송이공범교수정년기념동양사논총』, 지식산업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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