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魚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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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도에서 왕실에 올린 생선 반찬.

개설

각 도에서 왕실에 올린 생선을 가리키는 말이다. 생선을 재료로 하여 만든 반찬을 가리킬 때도 썼다.

내용 및 특징

각 도에서는 월별로 보름 전과 보름 후에 선장[膳狀]이라는 문서에 어물 물목을 작성하여 왕실에 올렸다. 이 문서를 ‘어선장(魚膳狀)’이라고 불렀다. 조선초기 각 도에서 올리는 어선은 사옹방(司饔房) 내수(內竪)로 보내졌다. 1419년(세종 1)부터 어선장은 승정원(承政院)에 바치고 어선은 사옹방에 올렸다. 각 도에서 올리는 어선은 모두 제철에 잡힌 것이었다. 왕실에서는 이렇게 수집한 어선을 종묘에 천신(薦新)으로 바쳤고, 음식으로 만들어 수라상에도 올렸다.

1671년(현종 12)부터 1697년(숙종 23)까지 장원서(掌苑署)와 사포서(司圃署), 여러 도와 제주목(濟州牧)에서 올린 종묘와 각 전(殿)에 올린 천신진상(薦新進上) 관련 문서인 『천신진상등록(薦新進上謄錄)』에는 월별로 다음과 같은 어선이 진상되었다. 1월에는 어선이 진상되지 않았다. 2월에는 생합(生蛤, 생대합)·생락(生絡, 생낙지)·생복(生鰒, 생전복)·생송어(生松魚), 3월에는 눌어(訥魚, 누치)·황석수어(黃石首魚, 황석어)·석수어(石首魚, 조기)·위어(葦魚, 웅어), 4월에는 오적어(烏賊魚, 오징어)·진어(眞魚, 준치)가 진상되었고, 5월에는 어선이 진상되지 않았다. 6월에는 생은구어(生銀口魚, 은어), 7월에는 연어(鰱魚), 8월에는 생해(生蟹, 생게)·부어(鮒魚, 붕어)가 진상되었고, 9월에는 어선이 진상되지 않았다. 10월에는 은어(銀魚)·대구어(大口魚, 대구)·문어(文魚), 11월에는 과어(瓜魚, 빙어)·청어(靑魚)·백어(白魚, 뱅어), 12월에는 수어(秀魚, 숭어)가 올려졌다.

이외에도 각 도에서는 때마다 잡히는 어물을 어선으로 왕실에 올렸다. 가령 전어도 왕실의 수라에 올려졌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716년(숙종 42) 윤3월 2일에 경상감사가 다음과 같은 보고를 했다. “윤삼월 초하루에 왕실에 올릴 말린 전어를 진상하라고 했는데, 수령이 그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동부사이홍정(李弘靖), 사천현감이세복(李世復) 등을 파면하고 저도 역시 벌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숙종은 “물건을 받고 보내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 그 사정을 헤아려서 파면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한 경상부사에게도 벌을 내리지 않았다. 여기에서 윤3월은 음력 4월이다. 입하 전후에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과 사천의 삼천포 앞바다에서 전어가 잡혔고, 그곳 어부들은 이것을 말려서 한양의 왕실로 올렸다.

변천

정조 때 사옹원에서 진상 받은 어선이 모두 부패하여 사옹원 제조(提調)를 파직한 일이 있었다. 안산(安山)에서 어선을 올리면서 얼음을 채우지 않았기 때문이다[『정조실록』 즉위 5월 4일 2번째기사]. 이와 같이 어선을 올리는 과정에서 부패한다든지, 제때에 진상되지 않아서 문제가 된 일이 많았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천신진상등록(薦新進上謄錄)』
  • 한복진, 「조선시대 궁중의 천신(薦新) 식품에 대한 고찰」, 『동아시아식생활학회지』제12권 제6호,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