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백산자(紅白散子)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홍백산자 |
한글표제 | 홍백산자 |
한자표제 | 紅白散子 |
상위어 | 한과(漢菓) |
관련어 | 박산(薄散), 백산자(白散子), 홍산자(紅散子)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음식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차경희 |
재료 | 찹쌀, 튀김용 기름(참기름이나 콩기름), 꿀, 조청 |
계절 | 주로 겨울철이나 사계절 가능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홍백산자(紅白散子)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29년 11월 2일 |
찹쌀로 만든 산자바탕을 기름에 튀긴 후 즙청하고 튀긴 밥풀고물을 묻힌 유과류.
개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시루에 찌고, 방망이로 꽈리가 일도록 쳐서 공기를 넣은 후 얇게 밀어 3×3×0.5㎝ 정도로 잘라 말린다. 마른 산자바탕을 기름에 튀겨 네모반듯하게 하여 엿물이나 조청을 바르고 말린 밥풀을 튀긴 고물을 묻힌 한과(漢菓)이다. 유과류(油果類)의 일종이다. 흰 밥풀고물을 묻히면 백산자(白散子)요, 밥풀고물에 지치물을 들여 묻히면 홍산자(紅散子)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연희와 제사에 반드시 쓰였다.
만드는 법
『술 만드는 법』에는 찹쌀을 가루 내어 흰떡 반죽처럼 하여 보자기에 싸서 솥뚜껑을 달구어 익게 쪄서 안반에서 꽈리가 일도록 밀어 만든다. 반죽이 식으면 만들기 어려워 두서너 사람이 급히 밀어 알맞게 만든다. 반죽을 베어 말려 지질 때에 숟가락을 둘씩 가지고 눌러 지지면 매우 커진다. 1되 반을 하여도 중간 크기의 산자가 300개는 나오고, 홍백산자가 보통 1그릇은 된다. 산자밥은 찹쌀을 희고 깨끗하게 가려 부수어지지 않게 가만히 씻어 담가 3일 만에 건져 물기를 없앤다. 시루에 보자기를 깔고 건져 놓은 찹쌀을 놓은 후 술 1잔을 뿌려 잘 익게 쪄서 뚜껑이 있는 버들그릇에 쏟아 3일 만에 뜯어 말린다. 밥을 일 때 술기운을 축여서 일면 잘 일고 빛도 좋다. 지치물은 들기름에 내지 말고 참기름에 내라고 하였다.
산자나 강정 같은 유과류는 만드는 방법은 같고, 말리는 찹쌀바탕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완성된 산자는 네모반듯하게 크고, 강정은 손가락 크기 정도이다. 찹쌀은 불린 콩을 넣어 함께 빻거나 술을 넣고 반죽하기도 한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홍산자를 만들기 위한 고물은 지치를 가려 기름을 먼저 끓인 후 넣어서 알맞게 꺼내 큰 사기대접에 담고 매화 밥을 넣어 고루고루 묻히라고 하였다.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는 고물을 만드는 다른 법으로 고운 모래[細沙]를 솥에 넣고 볶다가 뜨겁게 되면 지에 쪄서 말린 것을 넣어서 잠깐 함께 볶아서 빛이 누렇게 되기 전에 튀어 오르기만 하면 철로 만든 체에 친다. 그러면 고운 모래는 빠져 나가고 쌀알만 남게 된다. 이것을 산자에 묻힌다고 하였다.
산자는 산자바탕에 묻히는 고물에 따라서 백산자·홍산자·매화산자·세반산자·깨산자 등으로 나뉘고, 반죽의 재료에 따라서 메밀산자·묘화산자·감저갱자방(甘藷粳子方) 등으로 불린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좋은 찹쌀을 가루 내어 고운체에 쳐서 엿기름물을 조금 넣고 소금물에 반죽하여 널빤지에 놓고 얇게 밀어서 패향(佩香)처럼 썬 후에 참기름에 넣어 지진다고 하였다. 고물로 묻히는 밥풀은 좋은 찹쌀을 찧어 쪄서 지에밥을 지은 다음, 밥을 말려서 기름 끓는 데 잠깐 넣었다 꺼내면 부풀게 되니 이것을 묻히면 된다. 지에밥에 지치물을 들이면 홍산자가 된다.
연원 및 용도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쌀알을 튀기면 마치 꽃처럼 부풀어 벌어지므로, 이렇게 만든 고물을 묻힌 유전병류(油煎餠類)를 산자(散子)라 한다.”고 하여 음식명이 고물이 묻은 모습에서 붙여졌다는 내용이 있다. 또 『아언각비(雅言覺非)』에도 “찰벼 낟알을 튀기면 그 쌀이 튀어 흩어지기 때문에 산(糤)이라 하고, 이 산을 묻힌 과자이므로 산자(散子, 糤子)라고 한다.” 하였다.
산자는 궁에서뿐만 아니라 사대부나 서민층에서도 가장 좋아한 대표적인 한과이다. 다만 주재료가 찹쌀이므로 특별한 날에 즐기는 귀한 음식이었다. 조선시대 궁중의 잔치와 제향에는 반드시 사용되었다. 왕족의 혼례, 왕의 사신 위로연, 제사 등 모든 왕실의 의례에서 사용되었다. 산자는 우리(于里)라는 제기에 담아 올리는데, 홍산자와 백산자를 한 그릇에 담기도 하고, 각각 따로 담아 올리기도 하였다. 특히 여러 산릉(山陵)의 사시대향(四時大享)과 정조(正朝)·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동지(冬至)·납향(臘享)의 여섯 별제(別祭), 진전(眞殿)의 제품(祭品)으로는 제탁(祭卓)의 둘째 줄에 홍백산자 5그릇씩을 올렸다(『세종실록』 29년 11월 2일).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백산자의 속명은 박산(薄散)인데, 전주(全州) 지방에서만 만든다고 하였다. 맛있는 산자를 만들기 위한 조건은 쌀이다. 호남평야의 곡창 지대에 위치한 전주는 조선시대에도 유과나 떡, 엿이 유명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규합총서(閨閤叢書)』
- 『도문대작(屠門大嚼)』
- 『성호사설(星湖僿說)』
- 『술 만드는 법』
- 『아언각비(雅言覺非)』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 『하재일기(荷齋日記)』
-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