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어(松魚)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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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송어 |
한글표제 | 송어 |
한자표제 | 松魚 |
관련어 | 시마연어, 열목어(熱目魚)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식재료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양미경 |
생산지 | 함경도, 강원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송어(松魚)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12년 8월 8일, 『세조실록』 9년 11월 12일, 『인조실록』 25년 3월 18일, 『세조실록』 14년 7월 10일, 『성종실록』 8년 8월 17일 |
연어과의 바닷물고기.
개설
시마연어라고도 한다. 송어(松魚)는 함경도와 강원도에서 많이 생산되었다. 종묘 제사에 천신(薦新)용으로 생송어를 봉진하였고, 송어젓은 중국에 조공하거나 중국 사신에게 선물로 나눠 주었다. 이외에 회를 쳐 먹거나 찌개를 끓여 먹기도 하였다.
원산지 및 유통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을 보면, 송어는 함경도·강원도·경상도 지역에서 생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함경도 지역이 가장 주요 산지였다. 허균(許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함경도와 강원도에서 많이 나는데, 바다에서 잡은 것은 좋지 않다고 하였다.
연원 및 용도
송어는 연어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시마연어라고도 한다. 생김새는 연어보다 몸이 굵고 둥글며 납작하다. 회귀성 어류로, 바다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치어 때 살던 강으로 다시 돌아오는 습성이 있다. 대개 5~6월경에 무리를 지어 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9~10월경에 강 상류에 산란을 한 다음 모두 죽는다.
송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다음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몸에서 소나무 향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둘째, 살이 붉고 선명한 것이 마치 소나무 마디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서유구(徐有榘)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모양은 연어와 비슷하나 더 살지고 맛있다고 평하였다. 또 송어 알은 그 맛이 진미(珍味)이고, 동해의 어류 중 가장 좋다고 하였다.
송어는 구하기가 쉽지 않아 매우 고급스런 생선으로 인식되었고, 종묘제사에 천신하였다. 태종대에는 4월에 천신하였으나, 세조대의 기록이나 숙종 때 쓰인 『종묘의궤(宗廟儀軌)』「천신(薦新)」편에는 2월의 천신 물품으로 적혀 있다(『태종실록』 12년 8월 8일)(『세조실록』 9년 11월 12일). 천신 시기가 왜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종대의 『오례의(五禮儀)』에서 신물(神物)이 익는 것이 혹 일찍 익는 것과 늦게 익는 것이 있으니, 그 익는 시기에 따라 천신하고 월령(月令)에 구애할 필요는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천신 시기가 유동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천신용으로 쓰인 송어는 생어(生魚)로 봉진하였는데, 도중에 부패하는 바람에 수송 책임자가 문책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인조실록』 25년 3월 18일).
송어는 주로 회를 치거나 찌개를 끓여 먹었고, 송어 알로는 젓갈을 담아 먹었다. 붉은 빛깔의 송어회는 달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난다. 1927년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보감록(寶鑑錄)』에 의하면, 송어는 끓여 먹으면 맛이 아주 좋고 알은 그 맛과 빛깔이 젓갈 중에 최고이며 고원 지대에서 난다고 하였다. 특히 송어로 만든 젓갈은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송어젓은 중국에 조공으로 바쳤으며, 조선에 온 사신들에게 선물로 나눠 주기도 했다(『세조실록』 14년 7월 10일)(『성종실록』 8년 8월 17일).
참고문헌
-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종묘의궤(宗廟儀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