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승(加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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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전세를 징수할 때 뒤에 축날 것을 예상하여 1섬에 3되씩 더 받는 일을 가리켰으나 대동이나 환곡을 징수할 때 추가로 징수하는 것도 함께 이름.

내용

조선후기에 화폐가 유통되었지만 부세 징수에서는 쌀과 콩 그리고 면포로 징수하는 비중이 화폐로 징수하는 분량보다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현물경제 체제로 부를 만하였다. 현물로 부세를 징수할 때에는 규정된 액수만을 징수할 수는 없었다. 전세에 있어서 1결에 4두를 징수한다는 규정은 서울에 납부하는 액수였다. 부세를 거두어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운반 비용과 곡식의 품질 검사 비용, 지방관아 및 서울에서 말질을 하여 확인하는 작업 비용 등은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지방관아에서는 전세를 거둘 때 규정된 액수 이외에 추가로 징수하여만 하였다. 『속대전』에는 운반비를 제외하고 1섬당 가승 3되, 곡상(斛上) 3되, 창역가(倉役價) 6되를 추가로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관은 부세 징수 과정에서 『속대전』에 규정된 명목을 징수하면서 3되가 아니라 6되를 징수하는 경우도 있었고, 규정된 명목 이외에도 색락(色落)·정미(情米)·산곡(散穀) 등 다양한 명목으로 부가 징수를 하고 있었다.

환곡의 경우 원칙적으로 봄에 곡물을 빌려주고 가을에 회수할 때에 모곡(耗穀)의 명목으로 1/10을 추가로 징수하고 있었다. 이 모곡으로 환곡의 관리 과정에서 축난 것을 보충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모곡이 국가 재정으로 활용되는 ‘회록법(會錄法)’이 시행됨으로써 지방관이 환곡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곡물의 양은 축소되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지방관은 모곡의 징수 이외에 전세를 징수할 때에 추가로 징수하는 가승의 명목을 환곡에도 적용하여 1/10의 모곡 이외에 추가 징수를 하였다. 환곡 징수에서 가승은 지방관아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규정 이외의 추가 징수 명목을 열어 놓은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추가 징수의 명목은 증가되었다.

용례

至於捧糴時 或有加升名色 以此補用於民庫 此等之弊 決不可襲謬 故以更卽釐正之意, 往復矣 (『정조실록』 23년 5월 22일).

참고문헌

  • 『속대전(續大典)』
  • 『반계수록(磻溪隧錄)』
  • 『목민심서(牧民心書)』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