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곡사(亭谷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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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국가에서 공인한 36사(寺) 가운데 하나로, 황해도 은율군구월산에 위치한 절.

개설

정곡사(亭谷寺)는 황해도 은율군구월산에 있는 사찰로,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고 조선시대의 관련 기록도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1930년대까지도 황해도를 대표하는 명승지로 이름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곡사(亭穀寺) 혹은 정곡사(停穀寺)로도 쓴다.

연원

창건 시기나 창건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절 이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전설이 전한다. 고려시대 어느 왕이 이곳의 풍경을 좋아하여 수레를 멈추고 구경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고려말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수행하여 원에서 고려로 온 주태사(周太史)가 이곳에서 수레를 멈춘 데서 절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초상이나 조각상 등을 모신 사당인 영당(影堂)에 주태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었다고도 한다.

내용 및 변천

고려시대 양식으로 보이는 5층석탑이 있어 늦어도 고려시대에는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곡사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부터 확인되는데, 1424년(세종 6) 7개의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통폐합하고, 36개의 사찰만을 공인하면서 황해도 은율의 정곡사를 선종 사찰로 지정하였다는 것이 가장 이른 기록이다. 선종 사찰로 공인된 것으로 보아 정곡사는 조선초에도 명찰로 이름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공인 당시 정곡사의 원속전은 60결이었는데 이때 90결을 더 주었으며, 절에 거주하는 승려는 70명이었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그러나 6개월 뒤 순천송광사(松廣寺)는 공정대왕(恭靖大王) 즉 정종(定宗)이 중창한 수륙사이고, 개성의 흥교사(興敎寺)는 정종과 정종비 정안왕후(定安王后)의 능인 후릉(厚陵)재궁(齋宮)임에도 선·교 양종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그리하여 송광사와 흥교사가 선종 18사에 들어가는 대신 선종에 속해 있던 정곡사와 화엄사(華嚴寺)가 혁파되었다(『세종실록』 6년 10월 25일).

정곡사는 선종 18사에서 혁파되면서 더 이상 공인 사찰의 위상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1530년(중종 25)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김효원(金孝元)이 구월산(九月山)의 승려에게 준 시에서도 정곡사가 확인되며 1799년(정조 23) 편찬된 『범우고』에도 수록되어 있어 조선후기까지도 사세가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 중 패엽사(貝葉寺)의 말사였다. 한편 1904년 7월과 9월 유인석(柳麟錫)이 정곡사에 머물렀고, 1930년대에는 황해도구월산의 명승지로 신문에 소개되고 있어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정곡사는 명찰로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 전까지 대웅전(大雄殿), 청풍루(淸風樓), 영당(影堂), 요사채 등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성암집(省菴集)』
  • 『의암집(懿菴集)』
  • 『범우고(梵宇攷)』
  • 국립문화재연구소, 『북한문화재해설집Ⅰ』, 1997.
  • 이정, 『한국불교사찰사전』, 불교시대사, 1991.
  • 『동아일보』, 1934. 7. 16, 「檀君聖蹟 九月山登覽誌(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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