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은(倭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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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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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왜은 |
한글표제 | 왜은 |
한자표제 | 倭銀 |
상위어 | 은(銀), 은화(銀貨) |
하위어 | 황력은(皇曆銀), 동지은(冬至銀), 경장은(慶長銀), 원록은(元祿銀), 특주은(特鑄銀),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 정은(丁銀), 견설은(犬舌銀) |
동의어 | 일본은(日本銀), 일본은화(日本銀貨) |
관련어 | 은산(銀山), 석견은산(石見銀山), 은선(銀船), 은좌(銀座), 은주(銀主), 대은(代銀), 백사(白絲), 생사(生絲), 인삼(人蔘), 부상대고(富商大賈), 동래상고(東萊商賈), 개시(開市), 피집(被執) |
분야 | 경제/물가·화폐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일본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동철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왜은(倭銀)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영조실록』 7년 12월 12일 |
조선시대 일본에서 수입한 은.
내용
은선(銀船)에 운반되어 수입된 왜은(倭銀)은 대부분 백사·비단의 구입 대가로 중국으로 다시 수출되었다. 중국행 조선 사절의 파견에 맞추어, 대마도에서는 7·8월과 10·11월에 주로 왜은을 수출하였다. 이 은을 황력은 또는 동지은이라 부른다. 왜은은 본래 순도 80%였으나, 1695년(숙종 21) 일본의 화폐 개혁에 따라 64%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무역 마찰이 일어나자, 1710년(숙종 36) 조선 인삼 구입 대금을 위한 순도 80%의 특주은을 만들기도 하였다.
용례
兩國通貨 事至重也 而倭銀之前後變改 亦見狡詐 恐貽後弊(『영조실록』 7년 12월 12일)
참고문헌
- 정성일, 『조선 후기 대일무역』, 신서원, 2000.
- 한명기, 「17세기 초 은의 유통과 그 영향」, 『규장각』15, 1992.
- 田代和生, 『近世日朝通交貿易史の硏究』, 創文社,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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